퇴직 앞둔 공무원의 마지막 경험들 - 극기훈련

퇴직을 앞두고 있어 모든 날들이 마지막 경험이다.

by 벽우 김영래

퇴직을 앞두고 있다. 1월 1일부터 모든 마지막을 경험하는 중이다. 1월 1일이 그랬고, 이틀, 사흘이 그랬다. 오늘도 그중 하루에 해당한다.

3월이 되면서 직장에서 맞는 마지막 봄의 계절을 맞았다. 그 봄이 쉽게 오지는 않았다.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무섭고 강렬했던 경북지역의 대형산불과 늦은 4월까지도 겨울인양 태연히 내렸던 폭설은 마치 시간을 되돌리려 붙잡고 싶은 내 마음과 같이 엉뚱하고 괴팍스럽고 때론 간절하기까지 했다.

아무리 발버둥 친들 시간은 붙잡을 수 없어서 피천득 시인은 <내 나이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고 했다.


하루하루의 평범함은 맛없는 물이나 향기 없는 공기, 돌부리도 하나 없는 깨끗하고 곧은길과 같아서 소중한데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당연함 같은 것이다. 그래서 평범한 마지막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아주 작은 하나의 이벤트이며, 거기에 옛 추억이 담긴 노랫말 같은 감정이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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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로 극기훈련을 다녀왔다. 맘만 먹으면 집에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이지만 직장 동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이제는 다시 오지 않는다는 생각이 오늘 걷기에 특별함을 얹었다. 막 돋아난 연초록 잎새들이 만든 그늘밑으로 편편한 흙길을 맨발로 걸으며, 길 옆 수로를 흐르는 맑은 물소리를 들었다.

막걸리 한 잔에 취기가 올라 맨발로 걸으면서도 아픈 줄 모르고, 홀로 걷는 게 마냥 좋아 무념무상에 무아지경으로 삼관문까지 가는 동안 너무 행복했다.


맛나게 늦은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 예전 극기훈련은 술에 만취한 사람들의 객기가 난무하고 급기야는 술이 술을 먹는 음주가무로 마무리가 되는 기억이 전부였다면, 요즘은 술은 견딜 수 있을 만큼만 마시며, 발랄한 노랫말에 아이돌같이 잘 부르는 미성의 노래에 절제미가 더해져 깔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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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변화를 작은 것에서 새삼스럽게 느꼈다.

광기 어린 뉴스들이 심심찮게 들려오는 요즘이지만 보이지 않는 절제와 스스로를 제어하는 작은 힘과 변화들이 모여서 아직 이 세상을 살만하게 하고 있다는 다소 과장된 확장성으로 비약해 본다.


곧 또 다른 계절인 유월이 온다. <움 가운데 숨어 있던 잎의 하나하나가 모두 형태를 갖추어 완전한 잎이 되는(이양하의 신록예찬)> 청춘시대의 유월이다.

<처음 태양의 세례를 받아 청신하고 발랄한 담록을 띄는> 나의 새로운 마지막 유월은 어떤 특별함으로 다가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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