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山行) 다녀온 아들에게

산행이란 스스로 고행을 선택하는 일이다

by 벽우 김영래

아들아!

어제 친구 결혼식 다녀오고 늦게 들어와서 대뜸 낼 친구들이랑 소백산 산행을 한다고 해서 놀랐다.

아빠도 젊었을 땐 자주 산행을 다녔었지. 산에 갈 때마다 길에서 만나는 네 또래 젊은이를 만날 때면 대견하고 신통하단 생각을 하곤 했었단다. 편하고 재미난 일들이 손안에 거리 곳곳에 가득한데, 불편하고 힘들고 때론 고통스럽기까지 한 산행을 왜 택했을까? 이런 의문을 갖었었지.


그런 고행의 길을 네가 자발적으로 한다고 하니 한편 기특하기도 하고, 잘 다녀올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되었단다. 그렇지만 내가 길에서 만났던 다른 젊은이들같이 우리 아들도 남들 눈에 신통해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아빠 가슴 저 밑에서 뿌듯한 자부심이 밀려왔단다.

KakaoTalk_20250518_183023897_01.jpg

너희들이 아주 산엘 다니지 않은 것은 아니다.

기억하지. 초등학교 5-6학년쯤이었을걸. 제주도 놀러 간 적이 있었지. 아빠 친구들이 가족 동반으로 갔던 여행에서 음모처럼 진행했던 한라산 등반계획을 너희들에겐 비밀로 해두었지. 멋모르고 가야 따라가겠지. 세상에 힘든 일을 한 번쯤 시켜보고 싶었단다.


12시간을 올라갔던 한라산 등반을 생각해 봐. 내려올 땐 또 얼마나 힘들었어. 하지만 신기하게도 물이 고인 백록담과 깨끗한 하늘, 저 멀리 하늘 끝이 바다인 아름다운 제주의 모습을 그곳에서 오롯이 다 볼 수 있었잖아.

고행을 이겨내고, 내가 스스로 해냈다는 자부심 또한 백록담에 고인 물처럼 가슴 가득했었지. 그때 찍은 사진이 아직도 우리 가족 카페에 있단다. 가끔씩 그 사진을 보면서 빙그레 미소 짓곤 한단다.


중학교 2학년 땐 아빠와 지리산에도 다녀왔지.

중산리 방향으로 갔었단다. 밑에서 하룻밤 묵고 이른 아침 출발해서 정상에 올랐었지. 정상 막바지 가파른 오르막을 오를 땐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고, 터질 듯 가쁜 숨을 쉬면서도 마침내 정상석 앞에 섰었지. 아마도 그 기운으로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군 생활까지 무사히 마치고 지금까지 열심히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아빠의 아전인수식 해석)


산행이란 스스로 고행을 선택하고 실행하는 일이다.

지금까지는 힘들고 어려운 일들은 피하거나, 엄마, 아빠가 대신해 주었지만, 그런 일들을 스스로 마주하고 실행한다는 건 이제 어른이 되었다는 뜻이란다. 벌써 어른이 되었지만, 진짜 어른이 됐단 증거겠지.

KakaoTalk_20250518_190900944_03.jpg
KakaoTalk_20250518_190900944_02.jpg
KakaoTalk_20250518_190900944_01.jpg

앞으로 살면서 만나게 될 많은 일들은 지금까지 살면서 만났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렵고 힘든 일이 수두룩하게 더 많이 기다리고 있단다. 그럴 때마다 피하고 돌아가기보다는 만나고 부딪쳐서 마침내 헤치고 넘어가야 한단다.


가족이 생기면 내 가족에 대한 책임과 의무도 져야 하고, 자신의 삶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내기 위해 신중하고 정직한 판단도 내려야 한다.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갖기 위해 현실의 위기가 찾아와도 너의 자발적인 산행처럼 천천히 그리고 묵묵히 견디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마침내 정상에 도달할 수 있는 것처럼.

너의 산행은 스스로에게 큰 자부심과 뿌듯함이었을 게고, 아빠에게도 반갑고 고마운 일이었다.


작은 일 같지만 막히고 힘들 때마다, 어제의 산행을 생각하며, 참고 이겨내며 살아가자.

아빠는 언제나 네가 선택한 시간을 비롯한 너의 모든 삶을 을 오롯이 응원한다.

아들아! 사랑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퇴직 앞둔 공무원의 마지막 경험들 - 극기훈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