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앞둔 공무원의 마지막 경험들 - 회식

안 되는 회사는 회의를 많이 하고 잘되는 회사는 회식을 많이 한다고 하네

by 벽우 김영래

한마디로 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술을 못하기 때문이다. 회식은 밥을 먹는 것이 아니다. 술을 마시는 것이 회식이다. 밥은 끝날 즈음에 돌아오는 선택옵션이다. 내게 술은 늘 걸림돌이 되었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게 내 잘못은 아니지만 회식은 언제나 나를 위축시켰다. 누군가는 우스갯소리로 내가 음주가무에 능통했더라면 더 높은 자리까지 승진했을 거라고도 했다.


젊었을 땐 억지로라도 마셨다. 마셔야만 했다. 경직된 조직문화 탓도 있었다. 상사들이 한 순배를 돌며 술을 따라주었고, 준 잔을 돌려받기 위해 마시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다 기어코 받아갔기 때문이다. 강제가 아닌 듯한 강제였다. 사약처럼 쓴 술을 넘기고 돌려주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아픈 머리를 움켜잡고, 화장실에서 속을 비워내곤 했다.

그만큼 회식은 좋은 기억보다 악몽에 가까운 나쁜 기억들로 가득했다.


세월이 흐르며 회식에 대한 문화도 바뀌고, 몇 차례 승진도 하면서 나의 체질에 대한 호소가 약간은 먹혀 갔으며, 거절과 회피 그리고 절제가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

회식에서 술을 거부할 수 있는 이런 세월이 오다니. 새삼스럽다.

소맥을 한 잔 마시면 딱 맞게 시원하고 좋다. 그다음부터는 일명 꿀 주라고 부르는 소주잔에다 소맥으로 만든 술을 따라 다른 사람들과 구색에 맞춰 건배를 한다.


술이 강제되지 않으니 회식이 두렵지만은 않다. 좋은 소통의 시간이 될 수 있고, 긴장과 부담을 덜어 놓고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평소 하지 못했던 말을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얄궂게도 회식이 즐거워지니 이제는 체력이 달려 오랫동안 앉아 있는 게 힘겨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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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날이 아니었지만 어쩌다 잡힌 어제의 회식은 좋은 기억으로 남을 듯하다.

시내와 아주 가까운 외각에 마치 캠핑장에 온 듯 텐트 안에서 오붓하게 우리들만 있는 공간에서 회식을 했다. 고기를 굽고, 술을 마시며,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노래를 불렀다.

통기타를 잘 치는 직원이 있어 장비를 긴급 공수해 왔고, 감성충만한 통기타 소리에 맞춰 큰 소리로 합창을 했다. 옆에 있는 텐트에서도 함께 호응하고 손뼉 치는 소리까지 들렸다.


안 되는 회사는 회의를 많이 하고, 되는 회사는 회식을 많이 한다는 누군가의 건배사가 마음에 와닿는다.

직장생활이란 각자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역량을 펼치는 곳이기도 하다. 잘못하고 싶은 사람 없고, 싫은 소리 듣고 기분 좋을 사람 없다.


모진 시집살이를 한 사람이 모진 시어머니가 된다고 했나. 난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꽤 많이 되뇌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부서장을 맡고 있는 지금까지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해 본 적이 없다. 내 역할을 충실히 하려고 노력했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우리 부서의 업무가 잘못되거나 타 부서보다 뒤처지지 않았다.


내가 선한지 것인지 스스로 판단할 수 없지만 선하다고 믿는 그 방식으로 내가 믿는 그 선한 영향력이 사람들에게도 조금은 통하도록 하고 싶다. 그래서 또 다른 선한 영향력이 더 나은 분위기로 발전할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믿어 본다.

몇 번 남지 않았을 공무원 생활 중의 회식이 온통 즐겁기만 했으면.

내가 있는 한 우리는 즐거워야 한다는 명제가 옳다는 것을 계속 증명해 보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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