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을 맞아 동네 친구들과 함께한 베트남 여행
죽은 물고기는 강물에 순응해 떠내려 가고, 산 물고기만이 강물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말이 있지. 아직 우리에겐 별만큼 많은 추억들이 있어. 이대로 흘러가는 시간에 업혀 살아갈 수만은 없지.
아직 서너 번은 더 꿈틀 해 볼 수 있는 나이 아닌가. 그래서 도모하기 시작했지.
초등학교 동창생들과 함께 베트남 다낭으로 3박 4일 여행을 다녀왔다. 어린 시절을 함께한 친구들과의 환갑을 맞아 함께한 여행이었다. 그곳은 화려하지도 가을날씨처럼 춥지도 덥지도 않았으며, 여유롭고 한적해서 오히려 좋았다. 함께한 며칠 간의 시간 동안 깨알같이 소소한 재미가 박힌 또 하나의 스토리가 완성되었다.
시작 전엔 사람이 많다 보니 의견도 분분했고, 과연 잘 진행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어찌어찌 시작해서 끝나고 무사히 돌아왔다. 모두가 한 걸음씩 물러서서 양보하고, 귀하게 맞은 시간이란 인식을 깔고 참고 견디고 이해해 준 덕분이라 생각된다. 그게 다 세월 덕분인가 싶기도 하고.
예전엔 내일 죽을 사람처럼 술을 들이붓듯 마셨고, 하지 말라는 담배도 참 억세게 피웠었는데, 지금은 누가 말리지 않아도 스스로 절제(?)했고, 담배 피우는 사람도 두서넛 뿐이었으며, 유흥이나 일탈을 꿈꾸기보다 차분하게 옛 추억을 더 많이 얘기하는 나이가 되고 보니,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늙는 세월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고 늙음을 한탄하며 노래한 우탁 선생의 탄로가를 몸으로 마음으로 절대 공감하는 나이에 나도 모르게 내가 서 있는 것을 보고서야 세월의 비정함도 시나브로 알아 버렸다.
고민과 만용으로 점철된 흑역사가 많았던 우리의 시간이 훅하고 불혹과 지천명을 지나 이제 귀밑머리에 잔설이 내린 이순을 맞이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지만, 우리는 여전히 서로의 이름보다 짓궂은 옛 별명으로 불리는 상황을 누구 하나 이상하게 여기기는커녕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래서 어릴 적 친구가 찐친이 아닌가 싶다.
시골동네에서 한 반으로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함께했고, 시내 중,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부터 각자의 길이 갈리기는 했지만, 한 동네였기에 추억은 계속 공유되었고, 대학에 가거나 일찌감치 사회생활로 진로가 나눠지긴 했지만, 소식은 이어졌고, 그래서 무사히 환갑을 맞아 함께 여행까지 할 수 있었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여행지를 거닐며, 밥을 먹으며, 술을 마시며, 심지어 마사지를 받으며… 틈만 있으면 언제나 그 시절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그럼 여행은 언제 하는겨? 그렇게 얘기장단만 늘어놓으면.
향우반 활동으로 동네 마당을 쓸고,
운동장 정리 작업을 하느라 고사리 손들이 리어카를 끌며 흙을 실어 나르던 일,
학교 옆 문방구 개업식날 매대를 텅 비게 만들었던 일,
당번 정해 토끼풀 뜯고,
교실 난로에 넣을 고주박(썩은 나무등걸) 해 오던 일,
짝지어 주번 활동을 하고,
월림동네 누구네 밭 콩서리 했던 일
심술궂게 여자애들 고무줄놀이 훼방 놓던 일,
누구 안타깝게 죽고, 누구는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모르지.
미숙이, 순길이, 학분이, 화순이, 옥희, 원향이는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가끔은 감정이 너무 앞서 상황을 벗어나는 오버와 철 지난 유머가 썰렁해서, 조마조마하게 마음 조일 때도 있었지만, 크게 괘념치 않으려고 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금 우리에게 잘 나고, 못나고, 잘 살고, 못 살고, 아프고, 안 아프고, 젊어 보이고, 늙어 보이고 하는 따위의 외부 환경이나 조건들은 큰 의미가 없었다. 그건 그냥 현재의 자리일 뿐 내재된 추억이 중요했다.
자신이 또렷하게 기억하는 추억을 하나 열면 흐릿했던 것들이 선명하게 드러나며, 함께 공유하는 공간으로 변해버리는 신비함과 몰랐던 후일담까지 팝콘처럼 경쾌하고 고소한 풍미를 풍기며 툭툭 튀어 올랐다.
바나힐 유원지, 영흥사, 오행산을 탐방하는 시간에도 이국적인 장소를 방문한다는 것 외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아침식사 후 미케비치 해변을 산책하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동네 뒷골목으로 들어가 쪼그려 앉는 의자에서 차를 마시는 원주민 풍경 속으로 들어가 객설을 늘어놓고, 함께 웃고 떠드는 시간이 훨씬 재미나고 행복했다.
마지막 날 호이안을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비로소 진짜 여행을 온 듯 낯설고 이국적인 매력에 빠졌다. 특히 밤거리가 화려하고 아름다운 동양적인 신비를 보여줬다. 원색의 알록달록한 오색등이 빛났고, 발 디딜 틈이 없이 북적이는 여행객들이 강과 거리를 가득 메웠다. 장난감을 팔고, 환전을 하고, 소원 등을 파는 노점들 그리고 주점의 호객 이벤트가 어우러져 떠들썩했다. 이국적인 날 것의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리는 온통 한바탕 축제 같았다.
호이안 거리
모퉁이 돌아서면 나타나는 고향집처럼
갑자기 반가웠다.
과거가 현재에서 반짝이는 거리,
우리의 오늘 하루가 그랬으면 하듯
어둠이 짙어지자
빛나는 것들만 아름다워지는 호이안
어제의 소원이 침몰한 강물 위로
아무렇지 않게
새로운 다국적 소원들이 불을 밝히며
찬란히 자리 잡는 오늘
소음과 소원이 뒤엉켜
북적이는 거리
내일도 여기였으면 하는 바램이였다가
집도,
사랑하는 사람도 그리워
아쉽게 발길 돌려 슬며시 어둠에 스며들어
되돌아 나오게 되는 곳
호이안 참 좋았어.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도 휴가는 이틀이나 남았다.
여독을 풀 새도 없이 하루는 엄마 모시고 내과와 안과만 돌았는데 하루가 다 가버렸다. 더 남은 하루는 주말 동안 못 본 드라마를 ott로 몰아 보았다.
내 삶에서 드라마는 내가 살아보지 못한 세상에 대한 동경과 다양한 경험치를 제공해 주는 여행 같은 선생이기도 하다. 특히 권선징악의 대결구도에서 내가 하지 못했거나, 하고 싶었던 것들에 대한 대리만족으로 행복 도파민까지도 올려 줄 때도 있으니 드라마는 끊을 수 없는 인연 같다.
이제는 첫 장면이나 시리즈 한편만 봐도 나머지 줄거리를 예측하고, 흥행여부를 점칠 수 있을 만큼 경지(?)에 이르렀다.
친구들과 함께한 시간을 거스른 추억 여행이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작전 짜듯 모의하고, 의견이 안 맞아 싸우듯 토의하면서도 마침내 하나의 스토리를 완성했으니 말이다.
글을 쓰는 지금도 아련하게 한 컷의 사진마다 순간순간들의 숨소리와 아주 작은 감정과 스토리들이 떠올라 그 시간들이 벌써 그리워진다. 이름만 떠올려도 많은 게 보이는 친구들과 함께한 여행.
행복했었다.
<사람은 사람에게 기대어> 저자 김영래, 부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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