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문명이 조화로운 광안리와 해운대

by 벽우 김영래

망망대해의 어느 중간쯤을 한 움큼 들어내고, 육지와 맞닿은 해안선을 따라 길게 늘어선 바다의 어느 허리를 한 움큼 쥐어내도 똑같은 바다일 뿐인데,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많이 다른데 부산이 유독 그렇다.

다른 바닷가 풍경과 달리 광안리와 해운대에는 뭔가 모를 우주의 묘한 기운이 스며 있는 듯 조화롭다. 강원도의 바다가 자연 친화적이라면 부산의 바다는 문명 친화적이다.

고층건물이 즐비하게 늘어선 해운대 풍경에서 바다를 삭제하면 밋밋한 그냥 도시뿐일 테고, 고층 건물이 삭제된 해변도 심심하긴 마찬가지다. 그만큼 광안리와 해운대는 다른 어느 곳 보다 자연과 문명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곳이다.

그런 부산으로 겨울여행을 떠나게 된 건 친구의 초대가 있었지만, 내면에는 젊은 날을 함께한 친구와의 우정을 다지고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기 위한 의도가 숨어 있었다. 정확하게 친구들 간의 우정에 금이 간 건 아니지만, 관계의 복잡성으로 얽혀있는 알 수 없는 곳에서 균열이 생기려는 찰나에 있다는 처지로 위기의식을 느끼는 터에, 설상가상으로 은퇴를 코 앞에 두고 있으니 위기의식은 더욱 고조될 수밖에 없었다.


많을 필요는 없지만 친한 친구 몇 명은 행복한 삶의 필요충분조건이다. 바라는 것도 없고, 마주 보며 존재하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고, 같은 얘기를 몇 번이고 반복해도 싫증 내지 않고 들어주고, 말없이 눈 감고 있어도 같은 것을 볼 수 있는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사람이 친구니까.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예전엔 친구 하나의 존재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했는데 지금은 그 친구 옆에 아내와 자녀가 있고, 직장과 가정의 문제가 얽혀있어 자유롭지 못하다.

오래전부터 돈을 모아 여행도 다니고 밥도 함께 먹곤 했는데, 한 친구에게서 삐그덕 거리는 소음이 들리고 급기야 모임 해체라는 극단적 처방에 이르게 되었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냥 젊었을 때의 추억을 나누며 우정으로 뭉치고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지금은 부자연스러워졌다.



제천에서 탄 itx열차는 4시간을 부지런히 달려 부전역에 닿았다. 빠른 속도로 달렸음에도 4시간이나 걸리다니, 지도로 보는 것과는 달리 한반도의 땅이 생각보다 작지 않음을 알겠다. 역을 나서니 바로 앞에 부전시장이 있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시장은 어디나 비슷한 모습이지만 볼 때마다 신기하다. 작은 공간에 가득 쌓인 물건과 물건들,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의 행렬이 뒤엉키는 공간.

잘 팔리는 물건을 파는 가게는 연달아 있기 마련이고, 설마 저런 물건도 사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 가게도 있다. 상인들은 다정하게 수다를 떨다가도 손님이 오면 경쟁적으로 호객하는 이상한 경쟁관계를 유지하는 곳.


낡은 바퀴가 뒤뚱거리는 리어카에 담긴 몇몇 개의 사과를 싣고 통로를 오가는 노파는 하루에 몇 개의 사과를 팔까?

어른 허리까지 오는 비닐 자루에 한가득 담긴 땅콩과 호두, 아몬드는 언제쯤 다 팔릴까?

하루 종일 생선의 배를 갈라 손질하는 물 묻은 손은 언제쯤 마를까?

야채장수 아주머니와 빼빼한 여자 손님이 흥정하다 붙은 말싸움은 언제쯤 끝나려나?

데자뷔처럼 옷 가게 옆에 또 옷 가게. 생선 가게 옆에 또 생선가게. 김밥 집 옆에 또 김 밥집. 야채가게 옆에 또 야채가게. 과일가게 옆에 또 과일 가게. 가게들의 행렬.

앉을자리도 없는 국밥 집 옆에 또 앉을자리도 없는 국밥 집. 그 국밥은 어디서 먹지?

수북하게 쌓인 물건들 틈에서 간신히 앉을자리를 마련하고 손님을 기다리는 상인들은 평안할까?


사람들이 떠나고 어둠 내린 시장 골목에 가득했던 물건들은 어디로 숨어들까?

모든 것들을 속속들이 신기하게 바라보면 무궁무진하게 신기하고 궁금한 게 전통시장이다.


시장 구경하다 늦은 점심으로 유명한 어묵집에서 튀김어묵 한 접시 먹고, 뒷골목 엔틱 카페에서 커피 한 잔으로 허기를 채운 후 광안리 숙소까지 걸어갔다.


빌딩 앞에 펼쳐진 바다의 모습은 이국적이었다. 내가 이곳에 와 봤던가?

분명 처음인데 익숙한 것 같은 풍경. 푸른 바다 위의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놓인 철교의 모습은 처음인데, 어둠 속에서 화려한 조명으로 길게 빛나는 광안대교의 모습은 왠지 익숙하다.

숙소는 광안대교와 바다가 만드는 이국적인 풍경을 품은 꼭대기 층.

아름다운 것을 보고, 좋은 것을 먹으면 늘 집에 있는 아내와 가족들을 생각한다. 겨울엔 어딜 가기도 만만찮으니 기차로 4시간 정도 걸리는 이곳이 가족여행하기엔 제격일 듯싶다.

찬 바람맞으며 어딜 다니기도 힘든데 수억짜리 열차 타고 따뜻한 실내에서 꽁냥꽁냥 얘기하고, 음악 듣고, 따뜻한 남쪽의 기온을 느끼며 시장구경하고 돌아오는 일정이 꽤 괜찮으니 다시 와야겠다.


저녁식사에 소주 한 잔 기울이며 속 깊은 얘기를 했다. 우리는 언제쯤 다시 평온한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까? 너희 부부와 우리 부부가 함께 밥 먹고 여행 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빌딩이 숲 속 나무처럼 빼곡한 거리를 따라 1층에 인형 뽑기 가게가 즐비했다. 한 개를 뽑기도 어려운데 한 번에 두 개씩 뽑혀 올라오는 우리의 행운이 거기서 끝이 아니고 시작이길 바랐고, 산타복장으로 분장하고 찍은 스티커 사진 속 웃음으로 지금을 영원히 저장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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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식사 후 동백섬으로 산책을 갔다. 누리마루부터 해변길을 따라 LCT와 주변 건물들 사이에서 하늘과 바다가 코발트로 경쟁하는 해변길을 따라 해운대의 풍경을 보며 걸었다. 날씨가 청명했고, 길은 멀지 않았고, 풍경은 너무 가깝지 않아서 좋았다.


우리는 다시 이곳에 함께 모여 이 아름다운 풍경과 마주하며 '그땐 그랬었지' 하며 추억을 얘기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사람은 사람에게 기대어> 저자 김영래, 부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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