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질서의 중심에서도 태연, 호안킨

오토바이와 사람들이 뒤엉킨 사거리가 절정이었다.

by 벽우 김영래

문화를 이해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직접 경험해 보거나 사람들을 통해 들을 수도 있고, 책이나 인터넷 등으로 간접경험을 할 수도 있다. 그중 가장 좋은 것은 직접 부딪쳐보는 것이다. 몸으로 익히는 것만큼 빠르고 정확하며 오래도록 간직되는 것은 없을 테니까.


친구들과 함께한 베트남 여행은 여유롭고,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나름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역시 오토바이 행렬이었다. 수년 전 호찌민에 갔을 때도 경이적인 모습이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하노이에서 하롱베이를 가는 고속도로를 뺀 길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교통수단이었다. 혼자서, 연인, 친구, 어린아이를 안은 부부, 장사 보따리 같은 짐을 가득 실고 달리는 사람들까지. 눈 돌리면 보이는 낯설고 신비한 풍경. 풍경. 풍경들.

경적은 그냥 습관이었다가 이제는 관습이 된 듯 누구나 울리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자동차가 달리다가 차선을 바꾸거나 좌회전을 하면 옆에서 달리던 오토바이에겐 위협적이고 위험할 만도 한데 경적 한 번 울리고 무심히 내 길을 달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멱살 잡고, 손가락질하며 싸우는 풍경을 보지 못했다. 한국엔 요즘 자기에게 조금만 불편하고 위협적이면 가시처럼 날카롭게 반응하는 난폭, 보복운전으로 사회적 이슈가 되는 뉴스를 많이 접하게 되는데 내가 다녔던 시간과 공간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교통량이나 도로 상황으로 봐서 그럴 확률이 꽤 높았을 법한데 한 번도 못 봤다는 건 그만큼 상대방의 행동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석하는 게 무리한 비약을 아니겠지. 우리가 저녁식사 장소로 이동하며 호숫가를 걸을 때였다. 비가 내리자 누가 멈춤 지시를 한 것처럼 일제히 오토바이가 섰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우비를 꺼내 잽 싸게 입고 다시 달리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매연 때문에 마스크를 했다. 적자생존과 용불용설의 진화론이 문득 생각났다. 다 상황에 맞춰 살아가는구나.

대중교통이 취약하고 비교적 값싼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오토바이는 관광객들에게는 명물이지만 그곳 사람들에게는 소음과 환경을 오염시키는 주범일 듯하다.


호안 킨 호수 주변 공원과 전통시장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때가 우리나라 개천절과 비슷한 건국절이었단다. 야시장이 펼쳐진 거리엔 사람과 오토바이와 노점상들로 뒤엉켜 한 치 앞도 분간하기 힘들 만큼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올 수 있을까. 그들은 늦은 시간까지 길거리 목욕탕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고, 카페 앞에선 커피를 마셨다. 우리였다면 같은 조건에선 편하게 플라스틱 팔걸이의자에 접이식 탁자라도 놓을 텐데 맞춤처럼 똑같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불편함을 즐기는 듯. 현재의 조건에 만족하는 듯 보였다.

절정은 야시장 사거리였다. 오토바이와 사람들이 뒤엉켜 꼼짝도 못 하고 서로 경적만 울려대는 상황 속에 놓이게 되었다. 누구 하나 나서서 이렇게 저렇게 뚫어 보려고 하지 않았다. 멱살잡이를 하거나 욕을 해대는 -이건 내가 베트남 말을 못 알아 들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사람도 없었다. 그냥 서서 핸드폰을 보거나 어찌어찌 돌아가려고 발을 옮기는 사람이 있을 뿐이었다. 관광객 눈에는 장관이었다. 이런 질서의 삶도 있구나!


여행 중에 한국말을 하는 사람을 세 명 만났다. 한 사람은 하롱베이 크루즈에서 한국 여행객을 위한 통역과 써빙을 하는 청년이었다. 식사와 주류 주문을 받기 위해 우리한테 왔을 때 한국말은 어디서 배웠느냐고 물었더니 부산 어느 공단에서 일하며 배웠고, 아내는 아직도 한국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또 한 사람은 한식당에서 삼겹살 먹을 때 우리를 도와줬다. 그 역시 한국에서 돈 벌어 인근에 건물을 샀고, 아내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에게서는 당당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옆 자리에 아들 또래 같은 청년이 앉았는데 입국 신고서를 보니 제법 반듯하게 한글로 대구 어디를 주소지로 적은 게 보였다. 말을 걸으니 알아듣지는 못했다. 그 역시 청운의 꿈을 안고 이국만리로 일을 찾아 떠나는 것처럼 보였다.


한식당 가는 길에 전통 복장을 하고 과일 서너 개와 우비 같은 것을 놓고 파는 할머니의 풍경이 눈에 선하다. 한국에도 폐지 줍는 노인들의 모습을 가끔 보게 된다. 잘 사는 사람이건 못 사는 사람이건 생존의 문제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크고 무겁다.

동남아 국가들이 대부분 행복지수가 높다고 하는데 현실에 만족하는 유유자적하는 민족적 특성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하나의 사람들이 생각과 행동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수많은 다양성이 있다.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도 있고, 편안한 마음으로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며 안분지족의 삶을 누리는 이도 있다.

일억 명의 인구 중에 내가 만난 사람은 겨우 세 사람이었지만 베트남 사람 중에도 이들처럼 적극적으로 현실을 개척하려 노력하는 이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와 같은 이들이 많아질수록 베트남의 발전 속도는 더 빨라지고 더 잘 사는 나라가 되지 않을까.


여행객의 눈엔 내면의 깊이 보다는 표면적인 느낌과 감성에 따라 시각이 변하고 상황이 달라진다. 여행이 아닌 내 일상의 삶이 이곳에 던져진다면 어떨까? 견뎌낼 수 있을까? 여행객으로야 충분히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테지만 말이다.

수년 전에도 오토바이 풍경이 장관이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내부적인 변화와 발전을 감지하기란 이방인에게는 어려운 과제다.

내 눈엔 무질서와 혼란으로 보였지만 그들만이 알 수 있는 질서의 중심에서 태연할 수 있는 그들의 인내를 신비하게 보았다. 내 눈에는 무척이나 가난해서 동정이 가는 삶인데도, 길거리 작은 의자에서 쌀국수 한 그릇을 놓고 행복하게 웃으며 만족하는 삶도 보았다.

생존을 위한 야생 같은 내 일상생활을 떠나려는 여행의 이유가 낯 선 삶 속에서 좋고, 희망하는 것만 볼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이번 베트남 여행에서도 이런 것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 2019년 8월 30일 인천을 출발해 9월 2일 돌아왔다. 하롱베이와 호안 킨 주변을 여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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