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람들 중에 너만을 인식하는 것은
어떤 여행이건 떠나기 전에 날짜를 꼽으며 기다리는 설렘과 낯선 곳을 다니는 상상이 모든 여행의 클라이맥스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여행시간을 되돌아보건대 일상 중 아주 짧은 시간의 한 부분이며, 그 때문에 더 크게 느껴지는 아쉬움 이리라.
그럼에도 우리는 일상을 떠나는 여행을 매일 꿈꾼다. 여행에 바라는 단 하나의 목적이자 유일한 희망이 일상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 시간이 쏜 살같이 지나가 버리고 다시 아무 일 없듯이 일상 앞에 서게 될 지라도.
낯선 곳을 다닐 그때 그 시간을 떠올리는 지금 벌써 아득해지기까지 하지만 자꾸 맘속에 맴도는 아쉬움을 지워내고 그 시간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추억을 더듬어 글로 남겨놓으려 하는 것이다.
단톡 방에서 시작된 4월의 계획이었다. 훨씬 이전부터도 '시간 더 가기 전에 베트남에 한 번 오라'는 인사치레 얘기는 계속 있었다. 말만 하지 말고 한 번 해보자는 누군가의 말은 곧 실행되었다. 여권을 찍은 사진을 보내고 아득히 먼 8월 말의 한 날로 덜컹 비행기표를 예약했던 것이다. 날짜가 다가 올 수록 진짜 갈 수 있을까. 아무 일이 없어야 할 텐데 하는 걱정도 은근히 생겼다. 소소한 일들이 있었지만 여행을 가로막을 만큼의 무게는 없었다. 그렇게 해서 베트남에 있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인도에서 오고 인천에서 가고 했던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는 공항은 천정이 높아 안내 방송은 긴박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그냥 공허한 메아리 일 뿐이다. 그 울림과 사람들의 소리가 어우러진 공항은 출발이자 종착역이기도 하니 설렘과 아쉬움이 웅성거리는 곳이다.
우리 일행이 설렘으로 떠나 도착했던 베트남 노이바이 국제공항도 다르지 않았다.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고 비로소 진정한 이국땅으로 나가는 문 틈으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친구 얼굴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기다리는 그곳에 한 명인 친구만 눈에 들어왔다. 마치 뉴스에서 한 사람만 빼고 주변을 모자이크 한 것처럼.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고, 대학교 땐 함께 자취를 하며 살았다. 아주 개인적인 것들까지도 대부분 알고 지냈다. 시간이 흘러 직장을 따라 삶이 갈라지면서 뜸해지기도 했지만 언제나 가족처럼 늘 곁에 있기도 했다.
외모에서 머리칼이 듬성듬성, 희끗희끗해졌고, 몸도 제법 불어 있었지만 반복된 인식으로 축적된 기억 덕분으로 그가 어떻게 변해 있었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아주 작은 힌트 하나만으로 그와 나는 로그인될 수 있는 것이다.
63동 앞 잔디밭에서 넷이 찍은 촌스러운 사진 한 장. 20년지 지난 지금 보면 쑥스러워 감추고 싶어 지지만 그때는 그게 멋이었고, 최선이었다.
풍선 속에 갇힌 물처럼 어디로 새어나가지도 못하고 가슴속에서 지난 시간을 지키며 추억을 간직한 사람들과의 만남이었기에 여행의 즐거움이 배가되는 것이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숙소에 짐을 풀고 여행자들이 쉽게 갈 수 없는 로컬 속으로 들어가 그곳의 전통 음식 분짜(쌀국수와 비슷)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새벽 2시부터 여행 일정을 시작하느라 부산을 떨어 피곤한 몸을 풀기 위해 마사지를 받았다. 짧은 시간 잠깐 졸았던 것 같다. 와이프들 먼저 차 태워 보내고 택시를 기다리다 저녁식사 장소까지 걷던 우리는 소나기를 만났다. 작은 우산에 둘씩 머리를 넣고 서로 어깨 걸고 걸으면서도 신났다. 옷과 신발이 다 젖었는데도 말이다. 퇴근 시간과 겹쳐 혼잡한 길을 걸으면서도 얘기가 끊기지 않았다. 전통시장을 지나며 사진도 찍고, 친구의 현지 얘기도 들었다. 큰 호수를 한 시간 정도 비 맞으며 걸은 한국 여행객은 우리밖에 없을 거라는 긍정 위안이 우리의 감정을 대변할 수 있다.
베프가 온다고 제일 좋은 식당을 예약한 친구의 맘이 읽히는 그곳에서 축축하게 젖은 옷의 느낌도 잊으며 맛난 음식과 함께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친구 부부는 우리 일행을 숙소까지 안심배달 해 놓고 집으로 총총 돌아갔다.
부부라도 결코 이해하지 못해 공유 할 수 없는 우리들만의 추억이 있다. 우리들의 추억을 풀어낼 시간을 꿈꾸며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 급 피곤함이 밀려왔고, 내일을 위한 기대감에 더 포근하고 따뜻한 잠을 잤던 것 같다. '호텔에선 언제나 삶이 리셋되는 기분'이라는 김영하의 표현처럼.
다음날은 하롱베이 크루즈 여행이 계획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