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마주친 콘서트

30여 년 전 어느 시간대에 살았었던 기억을 깨워

by 벽우 김영래

흘러간 시간을 추억하는 것은 나이 먹는 이들의 공통된 감정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시간의 흐름을 아쉬워하고 그리워하는 게 보통의 상식적인 감정이겠지만 세월의 두께가 두꺼울수록 그 정도가 진하고 강해진다. 어쩌다 마주하는 추억에 깊은 향수를 느끼며 공감했고,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면 이미 당신은 먹은 나이를 한참은 세어야 하는 사람 된 것이다.

며칠 전 금요 음악회를 하는 장소를 지나게 되었다. 내가 사는 동네엔 곳곳에 작은 공연장을 만들어 좋은 계절에 주민들을 위한 음악회가 열린다. 알고는 있지만 귀차니즘이 만연한 나에게는 일부러 찾아서 갈 만큼의 열정은 없었다. 그런데 그날은 친구들 모임 장소를 찾아 지나는 길이었다. 귀에 익숙한 목소리의 노래와 함성이 들렸다.


이 밤 왠지 그대가 내 곁에 올 것만 같아

그대 떠나 버린 걸 나 지금 후회 안 해요

그저 지난 세월이 내리는 빗물 같아요

그렇지만 문득 그대 떠오를 때면 이 마음은 아파 올 거야

그 누구나 세월 가면 잊혀지지만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

양수경의 "사랑은 창밖의 빗물 같아요"란 노래였다. 익숙한 멜로디와 음성이 들려서 얼른 발길을 돌려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갔다. 정말 양수경이 노래를 하고 있었다. TV에서만 보던 노래를 그것도 직접 눈 앞에서 부르는 것을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켜켜이 묻혀 있던 감정이 먼지를 털고 나오는 듯 홀연한 신비감이 느껴졌다. 짧은 노래 한 소절이 젊은 시절의 추억을 깨웠다.

잠깐 동안 넋이 나간 듯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가수가 무대 밖으로 나가 관객 앞에서 한 사람 손을 잡고 무대로 이끄니 거침없이 춤을 추는 사람. 주변에서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헤치고 취중 공연을 즐기다 가수의 손 짓에 무대로 올라가 마이크를 건네받고 멋지게 노래를 부르는 중년 남성.

그들 역시도 추억 속에서 깨어난 듯 환호하고 다시 돌려받은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발을 구르며 박수를 치며 노래를 두어 곡 더 듣고 자리를 떴다.


우리는 세상에 떠다니는 수많은 우연들을 꾸준히 만나고 있다. 내가 인지하고 있을 때도 있고 느끼지 못할 때도 있다. 어찌 보면 이미 예정되어 있는 것도 사실은 우연일 수 있다. 어쩌다 마주친 콘서트처럼 내 마음속에 들어와 자리 잡고, 감정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며칠이 지났는데도 잊혀지지 않는 우연. 바람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아는 듯 모르는 듯 그냥 지나치는 우연.

노래에 얽힌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다. 그런데 무엇이 내 발길을 끌어당겨 손뼉 치게 했고, 설레고, 흥겹고, 즐겁게 했던 걸까?

잊고 있던 30여 년 전 어느 시간대에 내가 살았었던 기억을 깨워줘서 그런 건 아니었을까. 추억의 두께가 두꺼워져 아주 작은 우연에도 격하게 공감하고, 때론 느닷없이 흐르는 눈물에 당황하는 이유가 나이 먹어 감이 아니라 그런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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