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목적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는 후회를 하게 될 수도 있다.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는 쉼을 위한 것일지, 경치를 즐기는 관광을 목적으로 할지를 미리 구분해서 선택해야 한다. 직장 동료들과 함께한 중국 장가계를 가기로 한 여행은 처음부터 관광을 목적으로 했다. 입사동기모임에서 몇 번 시도 했지만 계획단계, 심지어는 실행 불과 한 달여를 앞두고 취소 할 수밖에 없는 우여곡절을 겪었고, 마침내 이번 가을에 기다리던 여행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요즘은 패키지여행이 퇴조하고 자유여행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여행지의 정보가 공유되면서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스스럼없이 떠나는 사람이 늘고 있어, 공항에만 머물다 오는 한이 있더라도 자유여행을 한번 떠나보리라 맘을 먹고 있지만 아직은 실행을 못하고 있다. 두려움을 떨쳐내는 순간 떠날 수 있으리라.
패키지여행의 장점도 있다. 패키지여행의 정확한 개념을 사전에서 찾아봤더니 '여행업자가 주관하여 행하는 단체여행으로 미리 정해진 여정에 따라 각종 교통편과 숙박시설, 기타 편의시설 이용과 비용을 일괄하여 여행사가 관장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말로 하면 '한 묶음 여행'이라 부른다. 경비만 지불하면 모든 것을 해결해주기 때문에 특별히 스케줄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이번 여행은 언어 소통도 안될뿐더러 엄격한 통제 사회로 각종 금기사항이 많은 곳이기에 가이드가 안내하는 데로 따라가는 편한 여행을 선택했다. 북경을 경유해서 장가계로 갔다가 다시 북경으로 돌아와 문화유적을 관광하는 일정으로 짜여졌다.
첫날 환승을 위해 도착한 북경에서 잉여의 시간동안 천단을 방문했다.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모시는 곳으로 자금성 보다도 규모가 컸다. 경내에 있는 5백 년 된 나무들이 그곳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었다. 사실은 유적지 관광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천단으로 들어가는 길 곳곳에 삼삼오오 모인 노인들이 카드나 마작을 하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공직 등에서 은퇴한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대부분 심심풀이로 하지만 가끔은 단속을 피해 노트 등에 적어서 나중에 정산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우리의 탑골 공원 등과 비슷해 보였다. 그곳도 급격한 노령화 사회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이다. 몇 해 전 아들과 북경을 방문했을 때 왕부정 거리에서 먹자골목에 갔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없어지고 현대화된 번화가로 탈바꿈돼 있었다. 역시 빠른 발전 속도를 체감할 수 있었다.
천단 가는 길 곳곳에서 게임을 즐기고 있는 노인들.
밤 10시가 넘어 다시 비행기를 타고 장가계로 넘어갔다. 짧은 비행을 할 때는 비교적 창가 자리를 선호하는 편이다. 운 좋게 창가 자리에 앉게 되었다. 무서움을 많이 타는 편이지만 무료한 시간 경치라도 보는 게 낫기 때문이다. 무심코 비행정보를 알려주는 모니터와 창밖을 번갈아 보게 되었다. 외부 온도 -14℃, 고도 5943m, 지상 속도 650km. 간간이 도심 불빛이 보이는 고도가 이 정도인데 구름 저 위로 높이 비행할 때는 더 극한 상황일 것은 말 안 해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기내와 하늘 사이엔 몇 개의 철판과 얇은 유리 조각뿐이다. 창 밖은 절대 위험 구역이고, 유리창은 자신의 헌신도 알아주지 못하는 나를 위해 사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 덕분에 기내는 얼마나 평화로운가.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간단한 식사와 차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일단의 위험을 한 번쯤은 상상해 봤을 수 있지만 현재는 너무도 평화롭다. 그렇게 생각하니 유리창이 너무 고마운 존재가 아닌가.
비행기는 상상의 현실화이다. 상상의 한계는 끝이 없고, 그 상상의 실현 또한 아직은 어디까지 인지 알 수 없다.
장가계 관광은 극한과 감탄의 연속이었다. 숙소에 도착한 시간이 자정을 넘겼지만 추억과 낭만 위한 열정이 우리들을 양꼬치집으로 인도했다. 그래도 8시부터 시작된 일정에 한 명도 예외 없이 참여했다. 보문호 유람선과 십리화랑에 갔다. 오후엔 육삼 빌딩 2배 정도 높이의 절벽을 깎아 만든 백룡 엘리베이터를 타고 단숨에 원가계에 올랐다. 기암괴석과 봉우리가 절경이었지만 나를 경악케 했던 건 엘리베이터였고, 그런 발상이 어떻게 가능했지? 하는 의문이었다. 저녁식사 후 천문호선 공연을 보고 숙소로 돌아왔다.
웬만한 체력으로 버티기 힘든 극기훈련이었다. 이곳은 소문만 듣고 효도관광으로 부모님이나 노인들에게는 함부로 권하는 게 아니며, 중국 여행은 젊었을 해야 한다고 가이드가 귀띔해주었다. 진심 어린 충고는 장가계를 돌아보는 내내 진실임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황룡동굴을 찾았다. 내 기억엔 단양 고수동굴이 최곤데, 돌아본 결과 규모면에서는 황룡동굴을 넘을 수다는 것을 알았다. 10만 평 넓이에 4층 구조로 배를 타고, 석교를 지나 오르락내리락하며 꽤 많이 걸었다. 거대한 산의 내장을 병 진단을 위한 마이크로 칩처럼 속속들이 헤집고 다닌 것이었다. 종유석과 석순이 거대했다. 1cm 자라는데 100년 넘게 걸리다고 하니 19.2m의 정해신침(손오공의 지팡이라 뜻의 석순)은 인간의 상상으로 가늠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내 생에서 19.3m의 정해신침은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인생무상을 느겼다.
오후엔 장장 7km가 넘는 케이블카를 타고 천문산에 올랐다. 아침부터 비가 내려 유리잔도는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운무 때문에 신선처럼 평온하게 걸을 수 있었다. 고소공포증이 있어 처음부터 그곳을 밟지 않겠노라고 공언했었다. 그런데 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공포를 공포로 여기지 못한 체험이 내게는 다행스러웠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위험이 위험하지 않은 게 아닌데 조삼모사의 잔꽤에 넘어간 원숭이 마냥 낭떠러지기가 백지같은 운무에 가려진 길은 평온했고, 심지어 난간 밖으로 손을 내밀어 멋진 풍경 속의 나무들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천문산을 내려올 때는 1천5백 미터의 산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도심 쇼핑센터 같은 분위기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호사를 누렸다. 절벽의 허리를 관통하는 50m 길이의 12개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했고, 구절양장 같은 통천대로는 셔틀버스로 내려왔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갈 때 본 멋진 풍경 속의 그 길을 달리는 버스는 짜릿한 놀이기구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대로'라고 부르기에는 이름이 멋쩍게 작은 셔틀버스 두 대가 아슬아슬하게 교행 하는 좁은 길인 데다 창 밖으론 손톱만 한 노견도 보이지 않는 천 길 낭떠러지기였다. 자칫 삐끗이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절로 등골이 오싹해졌다.
장가계를 보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 일행과 헤어지지 않기 위해 빨리 걷기와 통천대로 처럼 구불구불하게 만들어진 유도 틀을 따라 순서를 기다리는 일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행 사이로 서너 명이 끼어들 만큼 모든 곳에 사람들로 넘쳐났다. 특히 천문산 케이블카 탑승은 기다리는데 서너 시간은 보통이라니 덜 기다리기 위해 아침 일찍 나서야 했고, 일행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절경 앞에서도 사진만 찍었지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장엄하고 수려한 자연경관 속에 첨단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모노레일, 케이블카, 엘리베이터 등을 설치한 걸 보면서 이게 과연 맞는 것인지, 이게 가능한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공평이나 배려의 차원에서 보면 노약자들에게도 즐길 수 있는 혜택이 돌아가는 게 맞지만 다른 한편으론 돌이킬 수 없는 자연훼손과 사고 우려도 존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