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백만 대군-삼국지가 헛튼 소리 아니었네, 북경

만리장성과 자금성을 돌아보다

by 벽우 김영래

장가계에서 돌아와 북경 문화유적지를 관광했다. 장가계도 그렇고 사실 웬만한 관광지나 문화유적지는 책이나 인터넷 등에서 자주 보기 때문에 직접 가는 것보다 더 자세하게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여행을 고집하는 건 카메라 화각이 보여주는 것 이외의 것을 직접 보고 듣기 위함이다. 기계의 눈으로는 감동이나 현실감을 느낄 수 없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아무리 자세하게 묘사한 글이라도 한 번 체험하는 것만은 못하다. 현지인의 생활상이나 친절, 감동, 예상치 못한 풍경 등 어디서 어떻게 나타날지 모를 수많은 우연과의 조우도 여행의 묘미다.


첫날 일정의 첫 방문지는 만리장성이었다. 기다림의 미학이 필요한 곳이기에 아침 일찍 출발했다. 몇 해 전 아들과 함께 올랐던 거용관 장성을 눈으로 보며 이번엔 팔달령으로 갔다. 가이드(향숙이)가 만리장성에 얽힌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중국인들은 만리장성은 백성들이 만들었으며, 거대한 국책사업에 동원돼 살아 돌아오는 이가 거의 없었고, 죽으면 바로 그곳에 묻었기 때문에 백성들의 무덤이라 부른다고 했다. 이런 애환을 담고 있는 만리장성이 후손들에게 자긍심과 더불어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성벽을 오르내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뤄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 와중에도 계단에 앉아서 성벽 한 귀퉁이를 붙잡고 인생 샷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저 멀리 구불구불 강줄기같이 산등성을 넘어가는 성을 바라보고 있으니 인간의 위대함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오후엔 이화원에 갔다. 그곳은 금나라 때부터 있던 호수였다가 영국, 프랑스 연합군의 침략으로 소실되었는데 서태후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재건을 했다. 너무 많은 예산을 쏟아부은 후유증으로 청일전쟁 발발 후 나라가 멸망하는 단초가 된 곳이다. 호수 뒤로 보이는 만수산은 호수를 파낸 흙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니 권력의 힘이 우이 공산을 현실화시킨 것이다.

저녁식사 후 중국 전통 서커스를 관람했다. 비행기가 상상의 현실화된 문명이라면 서커스는 인간의 노력과 상상이 합작해낸 예술이다. 제프 콜린이 <재능은 어떻게 단련되는가?>에서 "훌륭한 저글러는 모든 공의 움직임을 쫓지 않는다. 시야가 제한적인 때도 각각의 공이 그리는 궤적의 정점만 볼 수 있다면 필요한 조정을 할 수 있으며, 평범한 저글러들보다 훨씬 적게 보고 더 많은 것들을 간파하고 필요한 모든 것을 이해했다"라고 갈파했다. 과연 그랬다. 보통의 사람들은 손에 다 잡을 수 없는 공(아마 10개 내외였던 것 같다)을 던졌다 잡는 묘기를 보는 순간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이 모든 차이를 결정하는데 전문가와 평범한 사람의 차이는 재능이 아니라 더 높은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해 온 기간에 좌우된다'는 주장에 절대적으로 동감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노력하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는 게으르고 두려워 답을 꺼내지 못하겠다.


아침에 눈을 뜨니, 아! 집이 그리웠다. 돌아갈 때가 된 것이다. 어느덧 4박 5일 일정을 모두 마칠 시간이 되었다. 호텔을 나설 때 짐을 모두 챙겼다. 천안문으로 가면서 십찰해에 들러 인력거 투어를 했다. 페달을 밟는 타인의 수고로 가는 자전거 위에 앉아 있으니 맘이 썩 편하지 않았다. 장가계에서 받던 마사지도 그랬다. 몇 해 전 아들과 함께 왔을 때도 그랬었다. 그때 이런 상상을 얘기했었다. "이 근처 집들이 수십억짜리잖아. 이건 비밀인데, 혼자만 알고 있어. 저 인력거꾼이 바로 그 집주인이야. 심심해서 운동삼아 하는 거라 저렇게 신나게 페달을 밟는거야." 엉터리 같은 상상으로 미안함을 달랬었다. 아내에게도 이 얘기를 해주었다.

천안문 광장에 도착하니 삼엄한 경비와 많은 인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과연 하루 만에 백만 대군을 만드는 삼국지의 서술이 허튼소리가 아니었다. 자금성으로 들어가니 구천구백 칸의 거대한 궁전이 버티고 있었다. 대국의 정서를 읽을 수 있었다.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우리의 정서와는 달리 오직 크기로 승부하는 듯했다.

쇼핑센터를 한 곳 들렀다 늦은 점심을 먹었다. 여행 내내 주로 전통 음식으로 식사를 했는데 큰 거부감은 없었다. 문화체험도 여행의 한 부분이라 될 수 있으면 음식과 술도 로컬로 하는 것을 좋아했다.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며 피곤한 몸을 최대한 뉘어 의자에 맡겼다. 손에 든 커피에서 풍기는 향기가 다정하고 감동스럽게 느껴졌다. 내내 진한 커피 한 잔이 살짝 고팠었다. 삼삼오오 앉아 일정을 회상했다. 우리 여행을 가장 즐겁고 행복하게 했던 압도적인 자연경관도 거대한 문화유적도 아닌 규만 형의 두 가지 에피소드였다.

황룡동굴 가는 날 아침이었다. 그날 일정의 마지막에 마사지가 계획되어 있었다. 동굴 입구로 데려다 줄 미니 전기차를 기다리는데 규만 형이

"양말을 잘못 가져와 짝짝을 신었다"고 뜬금없이 고백을 했다. 하지만 그 말에 누구도 심각하게 대꾸하지 않았다. 형은 마사지받을 때 들통날 것 같아 미리 얘기를 한 것이었다. 문제는 짝짝이 정도였다. 왼쪽은 발목을 겨우 올라가는데 오른쪽은 축구할 때 신는 스타킹처럼 무릎까지 올라간 것이었다. 언바란스가 기대 이상이었다. 정작 본인의 무표정까지 더해 한바탕 박장대소했다.

또 하나는 장가계로 넘어가는 국내선 탑승구에서 깜빡하고 물과 커피를 들고 있다가 검색에 걸린 것이었다. 말도 통하지 않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그 자리에서 300mm 물을 벌컥벌컥 마셨고, 텀블러에 든 커피도 반쯤 마시자 검색하던 직원이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그냥 가라고 손짓했다.

우리는 시간 날 때마다 그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다. 장가계에서 북경으로 넘어오는 비행기가 연착되는 바람에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을 눈물 날 정도로 웃으며 보낼 수 있었다.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뒤풀이 모임에 언발란스 드레스 코드를 맞추자는 제안까지 나왔다. 우리가 그렇게 웃는데도 기분 나빠하지 않고, 같이 웃어줘서 고마워 형! 그리고 미안해. 지금도 혼자 웃었어.


여행의 추억은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여 그리움이 되고, 행복한 삶의 자양분이 되어준다. 며칠 살피지 못한 우리 집 구피는 잘 있겠지? 소소한 걱정으로부터 다시 시작되는 일상을 떠올려도 새롭게 시작할 힘을 얻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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