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의 다른 이름, 연두

by 벽우 김영래

'시작'의 느낌은 여리다. 에너지가 부족한 듯 버거워 오래 버틸 수 있을까 하여 불안하기도 하다. 색으로 치면 연두다. 연두를 생각하며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이른 봄날 무채색 줄기에서 돋아나는 잎새다. 잔 솜털도 나고 광채로 반짝인다. 여려도 마침내 삶을 이뤄내려는 희망 때문에 별처럼 반짝이는 것이다.


무채색은 침묵 같고, 신록은 풍성해서 무겁다. 연두는 가볍다. 세상에서 제일 가볍다. 모든 시작들이 다 그렇다. 용기와 신념과 성실함을 맘에 간직하고, 새롭게 이뤄야 할 꿈 때문에 희망이 풍선처럼 부풀어서 그렇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길을 그리기 때문에 그렇다.


유치원 가는 아이가 꼭 쥔 엄마 손을 놔야만 하는 아침 같은 마음, 중학교 교복을 처음 입는 딸아이의 입가에 도는 미소 같은, 짝사랑하던 사람에게 용기 내어 고백하고 드디어 첫 만남을 위해 달려가는 발걸음 같은, 수많은 세월 보내고 다시 새롭게 맞는 많은 시간 앞에서 선 은퇴자의 마음 같은, 기타 줄 튕기는 첫손가락처럼 어설프고, 시집보내는 딸을 바라보는 아비의 눈빛처럼 애잔하게 사랑스럽다가, 세찬 바람 앞에서도 향기를 날리는 4월의 라일락 같다가, 언제나 먹먹하게 슬픈 '세월'의 기억과 두 주먹 불끈 쥐고 일어 선 피 흘리는 또 다른 4월 기억들처럼, 그래서 안타깝다가 희망차고, 가녀리다가 우뚝하고, 침착하다 환호한다. 연두는.


봄꽃 뒤로 산천을 뒤덮는, 출발선을 막 떠난 아기의 웃음 머금은 잰걸음 같은 연두가 훔쳐낸 세상은 시작하려는 발걸음으로 시끄럽고 분주하지만, 마음 떠나게 시끄럽지 않고, 기분 좋게 어수선하다.

사랑을 하던, 일을 하던, 하다못해 슬픔이 가득 차오르는 이별을 하던 시작할 땐, 뭘 해도 될 것 같은 연두로 우선 가득 채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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