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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왓츠인마이트립 Dec 05. 2019

다 모르겠고 일단 도망친다, 라오스로.  

라오스 자유여행, 배낭 여행, 라오스 숙소, 퇴사여행, 문라이트참파

모든 것은 밤의 지하철에서 시작되었다.

바깥 풍경이 검어지면, 지하철 창문은 풍경을 비추는 것을 멈추고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로 시선을 옮긴다.  내내 스마트폰을 보고 있던 나는 뻐근한 목을 갸웃거리다 창문에 비친 한 여자를 보았다.  동태눈에 생기라곤 없어보이는 그 여자의 얼굴이 이상하게 익숙했다. 

3,2,1  

어? 


'창문에 비친 나'의 표정은 잘못 박힌 가시처럼 일주일 내내 나를 힘들게 했다. 무료하고 지친 표정. 3년 전쯤의 나는 저런 표정으로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저런 표정을 하고 돌아다니고 있었단 말이야? 내가?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짝거리던 나 어디갔어?

다 모르겠고 일단 도망치기로 했다. 동태눈의 그녀에게서. 


친한 언니와 급하게 만나 비행기 표를 결제했다.

나 배낭여행자들의 성지, 라오스로 도망간다. 


[ 라오스 즐길거리 최저가 예약 ]




늘 여행 직전엔 그냥 집에서 쉴걸 그랬나 짐싸기 귀찮아 하며 칭얼거리지만 공항에 도착하면 심장이 먼저 알아채고 콩닥거린다.  떠날 때의 공항과 도착해서의 공항이 여행 중에 제일 설레는 것 같기도. 


비행기에 탈 때마다 이 커다란 쇳덩이가 어떠한 원리로 하늘을 날아갈 수 있는 걸까 궁금하다. 문송합니다.



밤중의 라오스 공항은 고속버스 터미널 정도의 규모였다. 

제주도와는 또 다른, 완연한 열대의 식물들이 촘촘하고 풍성하게 자리잡고 어둡고 더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기분 탓인지 향 냄새가 바람에서 나는 것 같았다. 괜시리 설레는 마음.

꼭 안아주는 것 같은 따뜻한 공기에 아침에 집어 입고 온 기모 청바지가 민망해져서 다리를 꼼지락댔다.



밤늦게 도착했는데도 근처 가게들에는 아직 활기가 가득했다.

가게 앞에 테이블을 펴고 전골같은 것을 끓이며 동네 사람들끼리 맥주잔을 부딪히는 모습에 나와 언니는 조금 흥분했다.  예상보다 깨끗한 거리에는 수도없이 많은 오토바이들이 달리고 있었다.  


"언니 근데 오늘 일요일 밤 아니야? 내일 출근 안하나? "

"일요일 그런거 없나봐 여기는"


문이랄게 없이 24시간 활짝 열려있는 게하 입구. 내이름이 윤미게 주희게? 


하룻밤만 잘 예정이라 저렴하면서도 둘이서만 잘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비엔티안 중심에 있는 문라이트 참파.  

온통 새파란색의 벽과 화려한 문양의 타일들 사이로 웃음이 맑은 스태프가 자다 일어나 눈을 비볐다. 

내 차림을 봤는지 '히어' 하고 내미는 찬 물이 반가워서 나도 배시시 웃었다.  로비에는 꼬리가 날렵하고 멋진 고양이 한 마리가 테이블 다리 밑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돌아가면 여행온 외국인들한테 꼭 친절하게 웃어줘야지. 하는 생각을 덧붙이며 방을 안내받았다. 



깔끔하고 금방 시원해지는 방



사장님이 이케아 팬이시군, 싶은 깔끔한 방에 짐을 풀고 생명수를 찾듯 에어컨부터 바쁘게 켰다.

둘이 자기 딱 좋은 트윈베드 , 깔끔한 화장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에어컨 빵빵함!

우리는 말도 안되게 저렴한 가격에 좋은 숙소에 왔다고 신나하며 방방 뛰어댔다.



땀이 좀 식으니 창밖에 여행지의 밤이 보였다. 한국이라면 있을리 없는 창밖의 야자수를 보고있자니 둘다 여지없이 맥주 생각이 날 수밖에.  슈퍼마켓으로 뛰어나가 비어라오를 왕창 샀다.

슈퍼마켓집 어린 소녀가 우리와 눈을 마주치며 부끄러워했다. 라오스 사람들은 예쁘다. 표정이 너무 예쁘다. 



파워 맥덕인 우리 입에도 훌륭하게 좋았던 비어라오.


에어컨 느님이 열일하며 습기를 없애주는 동안 음악을 틀고 맥주를 땄다.

이상하지?  꼭 여행지에 오면 나도 몰랐던 진심들이 슬그머니 입밖으로 나온단 말이야.

술기운이 나른하게 올라 반쯤 감은 눈을 하고는 언니와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생각보다 이런 시간을 더 많이 그리워하고 있었다.  이불이 포근했고, 냄새가 좋았고, 맥주가 시원했다.  



타일과 벽, 가구의 색 조화가 멋졌던 로비. 테이블 밑마다 있는 저 의자는 무슨 용도였을까?




멍하니 앉아 바라보는 바깥풍경이 저세상의 것이었다. 오, 내가 서울이 아닌 여기에 있다니.


**미리 많은 것을 알아보고 가는 여행자들도 있겠지만, 나는 귀찮음이 많은 사람이라 

모든 것을 숙소에서 해결했다.

방비엥으로 가는 버스, 근처 맥주파는 곳 등등 스태프가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숙소정보 

문라이트 참파 확인하기 




오전 일찍 일어나 방비엥으로 떠나왔다.

엉덩이가 오조 오억번정도 자리를 이탈했다. 

오프로드란 노화가 시작된 나의 몸에겐 생각보다 낭만적인 것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택시기사 아저씨들의 운전이 스무스하게 느껴질 날이 올 줄이야.

찍는 곳마다 그림같이 나오는 아름다운 날씨였지만 동시에 10분이상 서있으면 그대로 머리가 푹 젖기 시작할 것 같기도 했다.  라오스 사람들은 우리와 다르게 살만한 표정이었다. 10월의 라오스는 여름을 지나 초가을쯤이라더니.  


어딜 찍어도 엽서같았던 10월의 라오스.  당장 해먹 걸고싶은 비주얼이잖아요?


연남동만한 마을이 인적 없는 모습으로 우리를 맞았다. 얼기설기 모여있는 식당과 상점들은 소박했다. 마을은 잠이 덜 깬 듯한 모습이었다.   



비엔티엔과는 다르게 방비엥의 사람들은 조금 굳은 듯한 표정이었다.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라 일을 만나는 듯한 그들을 보며 내가 도망쳐 온 이유를 떠올렸다.  사람 사는 곳은 비슷하다.  반복되는 일상은 안전하지만 지루한 것이기도 하다.   이 동네는 제주로 치면 중문 관광단지쯤 되려나, 생각하니 방비엥 가게들의 정형화된 친절이 이해될 법도 했다. 


걷다가 만난 작은 마을같은 느낌. 낮의 방비엥




트렁크 끌고 다니는 걸 싫어하는 언니와 나는 등딱지같은 배낭을 둘러맨 채 마을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빵빵 거리지 않는 도로, 내리쬐는 햇살, 나른하게 누워있는 강아지들과 인적없는 한낮의 방비엥은 비엔티엔과도 다른 세상 같았다.  아, 그곳은 꼭 산티아고의 길 한가운데같았다.  말이 없어지고 생각이 많아지는. 

아무 생각이 안 날때까지 누워있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낮과는 달리 가득차서 북적대는 식당들.  이 집 진짜 맛있었는데




아무래도 방비엥은 나랑 비슷하게도 야행성인 듯 했다. 해가 내려앉자 마을은 방금 일어난 올빼미 눈처럼 반짝거렸다. 낮에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 있었을까?  쏟아져나온 외국인들이 소박했던 가게를 북적북적하게 만들었다.  간간히 '오, 여기 진짜 좋다' 하는 한국말이 들려왔다. 늘어선 가게 사이로 '노래방'이라는 한국어 간판이 보였다.  아. 



여행 내내 드래프트로 비어라오를 마셨던 곳은 여기가 유일. 방비엥 아이리쉬 펍.



여행지에서의 설레는 만남을 바라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어울려 놀기 좋은 펍으로 들어갔다. 즐겁고 신나게 밤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아주 좋은 곳이었지만 우리는 존재하는 모든 혼잡한 것에서 멀어지고 싶은 상태였다.  손색없는 문워크로 신속하게 멀어졌다.  만남 필요없어,  맛있는 맥주... 맥주를 내놓아라...


엄지를 분주하게 움직여 비어라오 드래프트를 파는 집을 찾아낸 우리는 전력으로 걸었다. 앉자마자 외쳤다. '투 비어라오 드래프트 플리즈!'

아, 희한하게도 방비엥에서 맥주가 가장 맛있는 펍은 '아이리시 펍'이었다.  여러분도 맛있는 맥주가 목적이라면 아이리시 펍으로 가시기를.  


[ 라오스 즐길거리 최저가 예약 ]

비엔티안 다른 숙소 실시간 예약


EDITOR 

강숑


'여행이니까 하기 싫은 건 안 할래' 라는 여행 철학을 고수.

바르셀로나에 가서 가우디를 보지 않고 온 것으로 악명높다. 

졸리면 낮잠 자고, 마음에 드는 동네 펍들을 전전하는 충동적, 즉흥적 마이웨이 여행자.
현지화 패치의 아이콘.  거리에 나가면 열에 아홉은 현지인이 길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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