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그 사람 휴대폰을 보게 됐어요...

2020년 9월 17일 오늘의 연애

by 또레이


20대 중반 남자입니다. 제게는 만난 지 7개월 된 한 살 연상의 여자친구가 있습니다.

저와 그녀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났어요. 코로나 때문에 원래 하던 일 대신 잠시 하게 된 알바였죠.

함께 일하는 동안 홀리듯 그녀에게 빠진 저는 난생처음으로 먼저 다가가서 사귀게 되었어요.


사귀는 동안 다툰 적은 한두 번 정도뿐이었을 만큼, 저희는 큰 탈 없이 잘 만나고 있었어요.

어제 여자친구의 휴대폰을 보기 전까지는요.

집에서 같이 낮잠을 자다 알람을 맞춰야겠단 생각에 잠시 눈을 떠서 여자친구의 폰을 집었는데, 친구와의 카톡창이 열리더군요. 비밀번호가 되어 있지 않아 아무 생각 없이 쓱 올리면서 읽게 됐죠.


그런데 익숙한 카톡 대화가 보였어요. 그건 한 달 전쯤 여자친구와 제가 다투고 주고받은 메시지였어요.

여자친구가 그녀의 절친에게 저희의 대화를 캡처해서 보낸 것이었죠.


여자친구 : "권태기 왔나 봐... 곧 헤어질 듯"

절친 : "무슨 저런 형식적인 대화를 하냐 ㅋㅋ"

여자친구 : "요즘 일 때문에 스트레스받아서 짜증 좀 냈더니, 저러네ㅋㅋ"

절친 : "걍 딴 사람 만나"

여자친구 : "얘 안 만나면 할 것도 없어"

절친 : "공무원 꼬셔 ㅋㅋ"

여자친구 : "다 유뷰남이야... 이 동네에는 인물이 없다 ㅠ"

절친 : "하... 코로나 때문에 헌팅도 못 하러 가고...

여자친구 : "요즘 마스크로 다 가리고 눈 밖에 안 보여서 조심해야 돼..ㅋㅋ 사기당할 수도 있어ㅋㅋ"


더 이상은 보지 못하겠더군요. 손이 떨려서 허겁지겁 폰을 내려놨어요.

저는 그 절친분을 만난 적도 있었고, 그분의 남자친구 썰을 여자친구에게 들은 적도 있었어요.

그때는 '아 여자친구들끼리는 이런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는구나'라고 생각했지,

이야기의 소재가 제가 될지, 그리고 이렇게 선을 넘어갈 줄도 몰랐어요.


모른 척하고 어제 하루를 보냈어요.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친구와의 대화니까 '허세 부리는 걸 거야'라며 스스로 최면을 걸어봤지만,

침대에 누우니 그 대화 내용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더군요.


제게 보이는 그녀의 모습이 가짜이거나, 친구 앞에서 보이는 모습이 가짜일 것일 것이고.

혹여나 내 앞의 모습이 진짜고 친구에게는 허세를 부리는 것이라고 할 지라도,

뒤에서 저렇게 말하는 모습을 보며, 그녀의 인간성을 다시 보게 됐습니다.


섬세하고 예민한 편이라 상대방이 가식인지 연기인지 웬만하면 다 알아채는 저지만,

그동안 한 번도 그런 느낌을 주지 않았던 여자친구였기에 더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 후 꼬박 이틀 동안 한숨도 못 잤습니다.


오늘은 그녀의 생일이라 데이트를 하고, 주말에는 기념일이라 함께 호캉스를 가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헤어지기 전이라 생일만큼은 기쁘게 보내도록 해주고 싶어 오늘까지는 모른 체하며 보낼 수 있다지만, 주말까지는 제가 맨 정신으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오늘 데이트가 끝나고 집에 데려다주면서 의도치 않게 카톡을 보게 됐다고 사과하고,
좋아하는 건 진심인지 아니면 정 때문에 만나고 있는 건지... 솔직하게 물어볼까 싶기도 해요.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당장 일도 그만두고 싶네요.

일 할 필요도 없었지만, 함께 좋은 시간 보내기 위한 돈을 벌고 있었던 건데...

이런 마음으로 바람피운 연인을 용서해주는 거구나 싶기도 하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한 이성적인 조언을 구해봅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녀에게 말해야 할까요? 다 잊고 다시 만나야 할까요? 아니면 헤어져야 할까요?

신뢰의 문제라 앞으로도 제가 의심하지 않을 자신이 없어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사연을 각색해서 올린 글입니다. (원글)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녀에게 말해야 할까요?

글쓴이가 말씀하신 것처럼, 연인 사이에는 '신뢰'가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러니 어떤 결정을 하던지, 사실대로 이야기하세요.

'실수로 휴대폰을 보게 됐다. 정말 미안하다.

그런데 카톡에서 이런 메시지를 봤다. 나를 정말 좋아하는지, 단순히 정 때문에 만나는지 궁금하다.'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볼 수 없게 됐는데, 그 사실을 숨기는 건 옳지 않습니다.

정말 끝을 내던지, 다시 관계를 회복하던지 간에 '모든 사실을 오픈'하는 것이 시작입니다.

신뢰란 그런 것이니까요.




다 잊고 만나야 할까요? 아니면 헤어져야 할까요?


그 사람을 얼마나 안다고 생각하세요?

7개월 만난 그녀를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한 사람을 알아가는 건, 하나의 우주를 이해하는 것과 같다'라는 말이 있어요.

한 사람을 알아가는 게 그만큼 복잡하고 어렵다는 뜻이겠죠.


입체적으로 상대방을 바라봐야 합니다.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들, 그 밖의 여러 정보들을 바탕으로 진짜 그 사람을 보기 위해 노력해야 하죠.


그렇잖아요. 우리만 해도 회사 안과 밖에서의 모습이 다르고, 여자친구 앞에서와 불X친구들 앞에서의 모습이 다릅니다. 가끔 비속어도 하고 말이죠. 그러니까 일정 부분은 이해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모습이 또 다른 매력이 되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어요.

사람이 장소와 상황에 따라서 사용하는 말과 행동이 달라질 수는 있지만, 그 사람의 진짜 모습, 태도, 가치관은 바뀌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계산적인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계산적으로 말하고 행동하고,

의리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의리를 지키면서 말하고 행동합니다.

그게 그 사람의 originality 이기 때문이죠. 그건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다시 돌아오면 그 여자친구분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눈빛으로 글쓴이를 바라보고, 어떻게 글쓴이를 대했는지 저는 모릅니다.

그래서 쉽게 이래라저래라 이야기하지 못하겠어요.




하지만 한 가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내 행동을 욕하고 비판할지라도, 나를 가볍고 쉽게 여기지 않는다는 겁니다.

나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은 친구와 내 욕을 할지언정 하찮은 존재처럼 취급하거나 말하지는 않습니다.

아직 헤어지지 않은 상대를 앞에 두고 한눈 팔지도, 다른 상대와 비교하지도 않습니다.

그게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의 originality 이기 때문이죠. 이건 팩틉니다.




관계에서 신뢰라는 건, 한 번의 말과 행동으로는 생길 수 없습니다.

오랜 시간 반복된 말과 행동이 쌓이고 쌓여 단단히 굳어졌을 때 비로소 '신뢰'라는 퇴적암이 생깁니다.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지 이해는 하지만,

부디 여자친구와의 관계를 그 메시지 하나만으로 결정해버리지는 마세요.

지금까지 만나며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겪었던 그녀의 모습과 이 메시지를 놓고 종합적으로 생각해보세요.


그리고도 신뢰가 남아있다면, 사실대로 이야기하고 관계를 이어가세요.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신뢰가 사라진다면, 헤어지세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걸 테니까요.





글쓴이. 해서 (or 설거지 잘하는 남자)

- 독립출판물 <너 진짜 축구싶냐?>를 썼습니다.

- 인스타그램 @haeseo.writing


글. 오늘의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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