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일곱 번째 이야기
#20180216
6년 차 커플이라고 하면 주변에서 묻는 게 비슷하다.
'아직도 좋아? 아직도 설레? 안 싸워?'
'어떻게 그렇게 오래 사귈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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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 세 번째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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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건 없다"
연애를 하다보면 서로 기분 상할 일도 있고,
내 앞을 지나가는 다른 이성에게 눈이 돌아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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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하면 '혼자라면 어떨까?' '내 옆에 다른 사람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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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들이 계속 쌓이다 보면 관계에 권태기가 찾아온다.
그럼 상대방이 귀찮아지고, 이유 없이 보기 싫어지고,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눈에 거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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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사랑스럽게 보이던 행동이 '너무 꼴보기 싫은' 행동이 되기도 한다.
생각이 여기까지 가면 사람들은 관계 자체를 고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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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간에게 권태라는 감정은 어쩔 수 없다.
익숙해지고, 반복되면서 크게 느껴지던 것들이 사소하게 변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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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 싫증 나고,
매일 하던 게임이 시시해지면,
다른 장난감이나 게임으로 넘어가는 아이들처럼 관계에도 권태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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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간관계는 감정이 없는 장난감이나 게임과는 다른 점이 하나 있다.
바로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쌍방향의 관계라는 것이다.
서로 시간을 보내면서 다양한 상황을 함께한 우리는, 상대방 '한 사람'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갖게 된다.
(장난감은 그저 어린 시절 함께한 좋은 친구가 될 수는 있지만,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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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여기에 권태기를 극복하는 방법이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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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은 간단하다.
연인에게 '다양한 감정을 갖게 해준 상황/사건'을 역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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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정의 대부분은 당신을 기쁘게 해준 상대방의 모습과 행동들일 것이고,
반대로 미운 정의 대부분은 당신을 화나게 만든 연인의 모습과 행동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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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 그 행동을 '누가 나한테 한다면 어떨까' 생각해보자.
그리고 '과연 다른 타인이라면 나에게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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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법이 좋은 이유는 타인과 연인으로 관계를 맺는 '나'라는 주체가 중심이 돼서 문제를 바라본다는 점이다.
그래서 '연인 관계에서 나도 모르게 하는 행동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객관화 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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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상황(1) 퇴근 후 데이트까지 마치고 집에 가는 길, A는 B를 위해서 집까지 데려다주거나,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역에서 기다려 줄 예정이다.
B도 A가 당연히 데려다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내일 아침에도 일찍 출근하는 A가 지금 바로 집으로 가면 30분이라도 더 잘 수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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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2) A는 오늘 평소보다 일찍 퇴근했다. 그런데 오늘 A와 B 모두 집에 일이 있어서 함께 오래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B가 A를 보고 싶어 했고, A는 집 반대 방향에 있는 B의 회사까지 갔다. 만약 바로 집으로 퇴근했다면 2시간은 더 일찍 집에 들어갔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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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3) A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A의 연인 B는 지금 집에 있다.
그런데 B는 A가 무엇을 하는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다. A는 B에게 연락을 남긴다. 만약 그 시간에 게임을 하거나, 노래를 몇 곡 더 부를 수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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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상황 속 'A'는 실제 우리의 연인이다.
당신이라면 저 상황에서 과연 A처럼 행동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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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든, 오래되었든, 저런 상황들은 우리의 관계 속에서 많이 벌어진다.
화장실에 간 나를 위해 짐을 들어줄 수도 있고, 나를 위해 맛있는 요리를 해줄 수도 있다.
갑자기 내가 생각났다며 선물을 해줄 수도 있고, 편지를 써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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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당신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만약 했다면, 어떤 감정을 가지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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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관계에도 '당연한 것은 없다'
권태로움에 빠진 관계의 가장 큰 문제는 모든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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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가 해주는 모든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남자친구가 해주는 모든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면서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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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하나씩 살펴보면, 그 어떤 것도 '당연한 것'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피어난다.
나와 함께해준 상대방, 그 존재 자체에 감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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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관계가 권태로워진다고 느낄 때마다 우리의 지난날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여자친구가 해준 것 중에 '당연한 것'이 하나도 없었음을 다시 깨닫고, 소중함을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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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관계에 권태로움을 느낀다.
물론 그것이 정말 마음이 떠나버려서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꽤 많은 커플들이 그저 익숙해져서 소중함을 잊고 헤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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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당신이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것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한 번 잃어버린 건 다시 찾아도 그때와 같은 빛을 가질 수 없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