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울타리는 너로 정했다
울타리 나무는 에메랄드그린이 좋겠지?
지푸라기인지 썩은 잎사귀인지 항상 현관 앞에서 탈탈 털어내야 했던 힘없던 잔디들이 여름을 맞아 초록색 새 잎을 돋아내기 시작했다
쇠울타리만 쳐져 있어 밖에서 우리 집 풍경이 고스란히 보이던 게 못내 마음에 걸렸는데
봄부터 계획해 오던 주차장 공사가 이런저런 이유로 무산이 된 이후 집에 대한 애정을 더 갖고 싶은 마음에 이런저런 투자를 해보기로 했다
울타리 나무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측백, 블루 에인절, 사이프러스, 사철도 많이 쓰지만
동글동글한 모양이 보기에도 예쁘고 조경수로도 쑥쑥 커서 나중에 나무만 되팔아도 돈이 된다고 하니 에메랄드그린을 사보자고 얘기한 후 서울의 원예원을 찾았다
대형 나무만 취급하는 매장인지 알았는데 큰 조경수뿐만 아니라 작은 꽃나무 화분도 잔뜩 있어서 푸릇푸릇 한 계절감이 공기부터 흠뻑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에메랄드그린을 실물로 확인하고 총 20여 그루의 나무와 포인트용 소나무 블루 사파이어라고 하는 나무까지 고르고 보니 뭔가 주 경계 큰손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ㅎㅎ
더운 여름날 나무 고른다고 수고한 사람들 용이었는지 예쁜 오버올을 입은 직원들이 아이스크림도 나눠줘서 냠냠 먹으면서 예쁜 나무들을 잔뜩 골라왔다.
봄에는 휑한 우리 집
나무를 위탁해서 심으면 그루당 인건비도 무시 못 하고 스케줄도 별도로 맞춰야 해서 주저하고 있었는데, 우리 집 냥반이 본인이 직접 나무를 심을 수 있다고 밤새 유튜브를 두드려 보더니 나에게 쇠 삽 한 자루만 사달라고 했다.
쇠 삽 한 자루를 그의 손에 쥐여주고 낮 시간을 아들과 보내고 있는데 암반이 많은 우리 집의 특성상 챙챙하는 소리와 묵직한 돌들을 들고 여기저기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 몇 번, 그리고 허탈한 웃음 몇 번, 아이스커피를 부탁하는 목소리 몇 번 이후 딱 보기에도 녹초가 된 우리 남편은 나에게 새로운 삽 한 자루를 더 요청했고 바깥에 나가보니 쇠 삽 한 자루는 이미 부러져 반 토막이 나있고 시작한 건 끝을 봐야 하는 성격상 쇠 삽을 대신해 모종삽으로 땅에 박힌 커다란 돌을 파내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었다
184의 96킬로의 거구의 체격이 모종삽을 들고 돌을 파내고 있는 모습이란 ㅠ
그대로 뒀다간 병이 나든 사달이 나든 뭔 일 이 날 거 같아서 남편을 뒤로하고 큰 마트에 들러 쇠 삽 한 자루를 더 사러 급히 나섰다. 캠핑용 야전삽도 마트엔 없었고 철물점도 거의 다 닫은 주말 오후라 결국 하나도 삽을 사 오진 못하고 집으로 걸음을 돌렸다
그 새 우리 마을에 남편의 나무 심기 소식이 퍼졌는지 저 20그루의 에메랄드그린을
혼자 심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 입으로 입으로 전혀 지고 있었다.
그래도 다음날 로켓의 은총을 받아 남편은 새로운 장비로 나무 심기를 이어나갈 수 있었고
덕분에 우리 집 주변으로 아주 멋진 에메랄드그린 기지가 탄생했다.
항상 부지런하고 실행력이 좋은 사람과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무까지 심다니
역시 born to be country 출신 우리 남편
저녁 무렵 아들을 재우고 둘이서 커피 한잔 마시러 마당에 나올 때, 주마다 손님이 나올 때
항상 빠지지 않고 즐겁게 얘기하면서 떠들 수 있는 에피소드를 만들어준 남편에게 고마워하며
그렇게 우리 집에도 여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