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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자 A씨 Mar 17. 2022

따뜻한 온정과 보살핌이 쏟아졌어

코로나 앓는 독거 청년 이야기 2. 그나저나 누가 내 목 사포로 문댔니

코로나 확진 이틀차. 막 점심을 먹고 치우려던 찰나 누가 현관문을 노크했다. 똑똑, 노크 소리를 듣자마자 직감이 왔다. '이것은 배달이다'. 문제는 난 아무것도 시킨 게 없다는 것이었다. 현관문 앞에는 커다란 음식 봉투가 덜렁. 뭔진 모르지만 일단 갖고 들어와야지. 오미크론 새나갈라. 

코로나 격리 중 갑자기 집으로 배달된 음식 꾸러미. "ㅊ채식중"이라니. 넘 귀엽잖아. 

"베이컨 빼주세요. ㅊ채식중"

"베이컨 빼주세요. ㅊ채식중"

"ㅊ채식중"

"채식중"

혹시 다른 집으로 갈 것이 우리 집으로 잘못 온 것인가 싶었지만 저 '채식중' 메모를 보니 우리 집으로 온 게 맞아보였다. 내가 채식 중인 걸 기억해주고, 아마도 코로나 걸려 몸이 아플테니 따뜻한 슾-을 먹으라고 보내준 이 천사는 누구인가 싶어 동네방네 물어봤다. 친구야, 너니? 오빠, 너니? 친구야, 너는 아닌 것 같지만 너야? 언니, 혹시 언니야? 


다 아니라고 했다. 뭐지. 날 짝사랑 하는 사람이 있나? 내 집주소는 어떻게 안 거지? 내가 코로나 걸린 사실은 어떻게 안 거지? 등등 너무 드라마적인 상상을 하던 찰나, 책 작업을 함께 했던 출판사 편집자님께 연락이 왔다. "그거, 저예요ㅎㅎ"


오마이갓. 말 안 듣는 저자에 책도 많이 팔리지도 않았는데(엉엉) 이런 사소한 온정까지. 아마 업무상 공유했던 집주소를 찾아 보내주셨나보다. 내가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까지 친히 기억해서 말이다. (10번 만나면 10번 다 물어보는 사람도 있어) 정말 맘씨 좋은 편집자님. 그런 의미에서 <라이더가 출발했습니다: 우리가 만든 어떤 편한 세상에 대하여 (후마니타스)> 라는 책을 사주세요, 여러분. (허공에 대고 외쳐본다) 

선물 받은 슾 3종과 우유 푸딩. 넘 맛있어. 

이밖에도 독거 청년에겐 너무 고맙고 감동적인 각종 따뜻한 온정이 쏟아졌다. 코로나 확진 선배로부터 받은 국물 3종 세트. 엉엉. 몸에 좋은 것들 투성이. (어? 채식? 어? 뭐라고? )  

코로나 확진 선배의 독거청년을 향한 따뜻한 온정. 

친한 언니가 코로나는 빵으로 이겨내야 한다며 (쏘 러블리) 보내준 사려깊은 식물성 빵들. 

'코로나 퇴치 빵 세트'

삼시 세끼 약을 먹어야 하니 아침 거르지 말고 건강하게 챙겨먹으라고 친구가 사다주고 간 샐러드와 요거트. 

아침상. 
편집자님이 선물해주신 슾 3종 중 하나인 트러플 슾. 아니 밥은 왜케 많이 들어가요? 

그리고 초귀여운 메시지와 함께 친구가 보내준 배달의민족 상품권까지. 


난 너를 아주 야무지게 쓸 거야. 

주는 거 없이 받기만 했다. 주변 사람들한테 잘 해야지, 잘 해야지 하지만 현실에선 잘 못 한다. 살뜰히 누굴 챙기는 것도, 꼬박꼬박 안부 연락 하는 것도 잘 못해.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코로나 때문에 집에 갇히고 또 생각지도 못한 지인들이 베풀어주는 온정을 받으며 감동 + 미안함 + 고마움 + 잘해야지 등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는 코로나 확진 이틀째였다. 절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말아야지. 


그건 그렇고, 오미크론에 여러가지 증상이 있는데 두뇌 활동이 잘 안 된다. (이것은 나만 그런 것인가? 다들 그런 것인가?) 그리고 하도 누워있었더니 엉덩이가 아프고 다리가 저려서 새벽에 자다가 계속 깬다. 그리고... 원룸에서 하루종일 하는 거라곤 아침 먹고 설거지, 점심 먹고 설거지, 약간의 일 혹은 독서 혹은 영화 감상 혹은 드라마 시청, 저녁 먹고 설거지 밖에 없어 정말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는데도 끼니 때가 되면 배가 고프다. 육신이란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생산해내는 건 고작 숨 쉴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 뿐인데 그저 살아있기만 하기 위해서 필요한 음식 자원이 이렇게나 많다니. 그리고 아무 것도 하는 게 없는데도 잠은 또 잘 온다. 


그리고

목이 정말 정말 아프다. 누가 내 목을 사포로 문댄 것 같아. 침 삼킬 때 말이야, 침이 넘어가는 목구멍의 1mm, 1mm마다 다 아프다. 박명수가 라디오에서 코로나 걸리면 과일 먹는 것도 고역이라고 하던데 정말 사실이다. 딸기를 먹는데 딸기가 상처난 목구멍을 쓸고 넘어가는 그 느낌이 아주... 근데 물 마셔도 아프고 아무튼 그냥 다 아파. 목소리는 애저녁에 갔다. 오미크론 바이러스들아 제발 내 목에서 꺼져주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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