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네트는 왜 말이 많은가 - 침묵을 전달하는 역설

애매한 영화 애호가의 왜 좋냐면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 가지 모험 (1)

by Aha

에릭 로메르의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 가지 모험」(1987)


말에 대한 영화

로메르의 영화를 "말에 대한 영화"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다. 대화의 중심성, 언어와 소통의 탐구, 침묵의 가치, 그리고 말과 현실의 관계에 대한 성찰. 로메르는 "문학적 영화 감독"으로 불리며, 그의 영화는 시각적 스펙터클보다 대화와 언어의 미묘함에 초점을 맞춘다.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 가지 모험」(1987)은 두 젊은 여성의 만남과 우정을 그린 영화다. 시골에서 온 이상주의자 레네트와 도시의 실용주의자 미라벨이 네 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서로의 세계를 탐색한다. 이 영화는 로메르가 자신의 창작 철학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낸 작품이기도 하다.

레네트의 역설

레네트는 완벽한 침묵의 순간(푸른 시간)을 포착하고 그 가치를 전달하고 싶어하지만, 누구보다 말이 많다. 그녀는 이상적이고 좁고 확고한 자기 가치관을 고집하며, 순진하고 바보같고 때로 짜증나는 인물이다. 그녀의 경직된 이상주의, 도덕적 우월감, 역설적 불완전함은 그녀를 불편하면서도 진실된 캐릭터로 만든다.

레네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말로 전달하려 한다. 침묵의 아름다움을 끊임없이 설명하려 하지만, 정작 그 가치가 진정으로 전달되는 순간은 그녀가 말을 멈췄을 때다. 말할 수 없는 것을 전달하기 위해 끝없이 떠들었는데, 전달되는 순간은 말을 멈췄을 때였다.

이것은 모든 예술가의 근본적인 딜레마다. 언어로 포착할 수 없는 경험을, 언어로 전달해야 한다. 영화로 찍을 수 없는 침묵을, 영화로 보여줘야 한다. 레네트의 끊임없는 수다는 이 불가능한 과업에 대한 몸부림이다.

미라벨의 수수께끼

미라벨은 레네트를 짜증나 하지 않는 참을성 있고 애정이 있는 관찰자다. 그녀는 레네트의 불완전한 말을 모두 견디고 들어주고서, 비로소 주인공이 침묵하는 순간 곁에서 그것을 전달해주는 사람이다.

그러나 영화 전체에서 레네트에 비해 미라벨의 정보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그녀는 레네트의 편협하고 단순한 정의에 반문하고 비판하며 납득하지 못하지만, 동시에 감화된다. "모든 걸인에게 돈을 주냐"고 반문하지만, 다음 시퀀스에서는 걸인들에게 돈을 주고 다닌다.

미라벨은 레네트가 불화하는 세계에서 온 사람이다. 그러나 동시에 레네트를 초청하고, 떠나려는 것을 붙잡고, 레네트가 세계에 그림을 팔도록 침묵의 재현을 돕는다. 불화하는 세계로부터 온 조력자인 것이다.

영화 이후 곰곰히 생각해보면, 불가해한 것은 되려 미라벨이다. 드러난 모순과 사건과 특성은 모두 레네트 중심이지만, 그것은 미라벨에 의해 수용되고 관찰된다. 그러나 수용하며 관찰하는 미라벨 자신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관찰자는 관찰 대상을 통해서만 자신을 드러낸다.

로메르의 영화에 대한 영화

레네트와 미라벨은 모두 로메르 자신의 투영이다.

레네트는 예술가로서의 로메르다. 이상주의적이고, 타협하지 않으며, 자신의 예술적 원칙과 가치를 고수한다. 말을 통해 말할 수 없는 것을 전달하려는 역설적 작업을 한다. 순수한 경험을 포착하려는 욕망과 자연과의 깊은 교감을 추구한다.

미라벨은 관찰자, 감독으로서의 로메르다. 관찰자적 시선을 가지고, 인내심 있게 지켜보며, 판단하지 않고 이해하려 한다. 도시적 합리성과 실용적 지혜를 가지고, 중재자로서 예술가와 세상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한다.

이 영화는 로메르의 영화 만들기에 대한 메타적 성찰이다. 레네트(예술가)와 미라벨(감독의 시선) 사이의 관계를 통해, 로메르는 자신의 창작 철학을 드러낸다. 주인공은, 싫어도 미워도 이상해도, 레네트다. 미라벨은 그 곁에서 그것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역할이다. 감독과 감독이 보는 것이다.

푸른 시간은 진짜다

레네트는 불완전한 가치관과 시행착오를 겪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가 미라벨을 초대했던 푸른 시간은 진짜다. 미라벨은 그걸 아는 사람이다.

미라벨은 레네트의 모든 불완전함과 어설픔을 보면서도, 그 아래에 있는 진실한 가치를 알아본다. 그녀는 레네트의 모순을 보면서도 그녀가 가리키는 침묵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로메르는 우리가 불완전하고 모순된 존재라는 것, 그러나 그 불완전함 속에서도 우리가 진실한 아름다움과 가치를 경험하고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예술가는 완벽할 필요가 없다. 예술가는 진실할 필요가 있다. 레네트의 끝없는 수다와 어설픈 이상주의 너머에, 그녀가 정말로 본 침묵의 순간이 있다. 미라벨은 그것을 믿어준다. 로메르는 우리에게 그 믿음을 보여준다.

그러한 한계 위에서 나는 무엇인가. 그 답이 레네트와 미라벨이다.

다음 편에서는 로메르가 어떻게 캐릭터들을 바라보는지, 그의 시선이 왜 "담담한 악수" 같은지를 이야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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