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꿈과 희망의 컬트쇼 — IT 프로듀스 101 (1)

by Aha


한국의 IT 산업은 스스로를 꿈과 기회의 산업이라고 서술한다. 누구나 노력하면 성장하고, 새로운 무대로 이동할 수 있으며, 더 나은 조건과 미래를 스스로 쟁취할 수 있다고. 그러나 이 약속은 항상 조건부다. 멈추지 않는다면. 이 씬에서 가장 두려운 단어는 실패가 아니라 정체다. 성장 곡선 위에 고정된 인간은 안정이 아니라 무능으로 분류된다. 그렇게 ‘성장’은 목표가 아니라 감시의 기준이 된다.


겉으로 드러나는 풍경은 화려하다. 동료들은 모두 진취적이며, 사이드 프로젝트와 학습 인증, 깃허브 잔디와 링크드인 업데이트를 통해 꾸준함과 의지를 보여준다. 플랫폼은 이런 서사를 끊임없이 증폭한다. 열심히, 긍정적으로, 지치지 않는 듯한 모습만이 끊임없이 떠오른다. 그러나 그 뒤에는 보편적인 피로가 존재한다. 사람들은 공부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멈출 수 없어서 새벽까지 강의를 듣고 문서를 뒤적인다. 이 시스템은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게 만들지만, 사실은 공포에 쫓긴 선택이 많다.


이 씬은 운동장이 아니라 트레드밀이다. 달려도 제자리이고, 속도를 유지하지 못하면 바로 뒤로 밀려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것을 성장이라 부른다. 사용 가능한 인간과 더 이상 업데이트되지 않는 인간을 분리하고, 끊임없이 더 나은 대체 인력을 공급한다. 개발자 시장에는 늘 새로운 신인이 데뷔하고, 고갈된 누군가는 조용히 퇴장한다. 이 풍경은 어딘가 아이돌 산업과 닮아 있다. 누군가는 무대를 차지하지만, 그 무대 뒤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연습생과 탈락자가 존재한다.


문제는 이것이 산업의 자연스러운 소모 과정으로 정당화된다는 점이다. 열정과 성장이라는 언어가 착취의 구조를 은폐한다. “꿈을 위해 버텼다”는 성공 서사는 모든 고통을 영광으로 치환한다. 하지만 그 로맨틱한 뒤편에는 인간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 메커니즘이 있다. 사람들은 이 무대에서 빛나는 동안에도 탈진의 예감을 숨기고, 속도가 떨어지는 순간 스스로를 비난하거나 스스로를 폐기한다. 고통을 말하기 전에 이미 부적격 판정을 받은 것처럼 느낀다.


한국적 상황은 이 경향을 더 극단적으로 만든다. 취업과 생존의 부담, 사회적 계급 이동의 거의 유일한 수단으로서의 기술 노동, 그리고 불안과 비교를 증폭시키는 커뮤니티 구조. 사람들은 개발자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업데이트’해야 한다. 그런데 그 업데이트가 결국 자기 존재를 잠식하는 방식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멈출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인정하면 파국이고, 부정하면 소모다.


번아웃은 이 세계에서 가장 흔한 감정이지만, 가장 말할 수 없는 정체이다. 모두가 번아웃을 말하지만, 아무도 스스로를 번아웃이라 말하지 않는다. 그것을 고백하는 순간, 이 시스템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사람처럼 취급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번아웃은 존재하지만 부재한 것처럼 여겨지고, 소문으로만 전해진다. 결국 멀쩡해 보이는 얼굴 뒤에는 각자 지쳐가는 몸과 마음이 있다.


이 산업은 종종 자신을 혁신과 미래의 이름으로 미화하지만, 그 바닥에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열정의 소비가 자리한다. 스포트라이트의 반대편에서 조용히 쓰러진 수많은 사람들 위에 서서, 우리는 늘 다음 기춘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진짜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이렇게까지 달리며, 무엇을 지키려고 했나? 쉴 수 없는 성장이 정말 성장이었나? 기술이 사람을 살리는 시대는 언제 오는가?


한국의 IT 산업은 꿈과 희망의 쇼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과열과 소모의 예식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나는 가끔 이런 의심을 떠올린다. 정말 모두가 성장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모두가 무너지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이곳에서는 그 둘이 같은 뜻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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