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 모네 prologue

by whatudomonet

도예를 처음 시작한 건 대학교 3학년 때였다. 정확하지는 않다. 왜 도예가 갑자기 하고 싶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느 순간부터 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지역 축제에서 했던, 소풍에서 했던 물레가 전부였는데. 이래서 사람들이 '운명'이라는 단어를 쓰는 걸까.


나에게 도예는 운명과 같다.

흙을 만지는 순간 손에서 느껴지는 촉감. 차가우면서 말랑한. 내 손을 타고 불어오는 흙 특유의 시원하면서 살짝 비린 향. 온전히 내 손에 의지해 형태를 잡고 집중을 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아무 생각이 안 든다. 머릿속이 텅 빈 느낌이 아니라 말끔한 느낌. 잠에 드는 순간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해방감.


그렇다.

도예는 내게 해방이다.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를 보면 해방일지를 작성하는데, 나의 해방일지는 흙 위에 그려진다.


어떤 일을 하는데 쏟는 시간과 돈이 아깝지 않다면 그게 내 인생에서 소중하고 가치가 있는 거라고 한다. 도예는 내게 그렇다. 나의 다른 취미들과 다르게 시간과 돈이 많이 소비되지만 한 번도 아까웠던 적이 없다. 한 달 식비 걱정보다 돈이 없어 도예 공방에 나가지 못하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더 크다.

도예를 처음 접했을 때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다. 도예를 갈망하는 마음에 비해 나의 실력이 부족하면 어쩌지. 도예 선생님이 보기에 내가 너무 부족해 보이면 어쩌지. 뻘 걱정이었다. 당연히 전공도 아니고, 배워보지도 않은 도예를 선생님처럼 뚝딱뚝딱 형태를 잡고 디자인을 구현해 내는 것이 가능할리 없었다. 그리고 이건 진짜 웃긴데, 도예를 하며 도구를 쓸 때 조금 부끄러웠다. 도구를 처음 사용하니 어색할 수밖에 없는데, 당연히 쓰라고 있는 게 도구인데. 도구를 쓰는 내 모습이 꼭 멋진 척을 하려는 것 같아 보일까 봐 부끄러웠다. 쓸데없는 걱정인 걸 알지만. 도예에 대한 나의 열정이 투영된 부끄러움이었다고 할까.


'정말 내가 도예를 잘 하고 싶구나.'

’욕심이 생겼구나.‘


난 잘하고 싶은 것에 대한 정도와 기준이 높고, 난 모든 잘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나의 첫 도예 선생님은 내가 도예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게 늘 칭찬을 아끼지 않는 분이셨다. 그분의 가르침 하에 도예를 입문해 참 다행이다. 그때 만들었던 식기들은 본가에서 부모님이 사용을 하고 계신다. 심플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으로 어떤 음식에도 잘 어울릴 수 있게 만들었었다. 몇몇은 이사를 하면서 깨져서 작별인사를 했지만. 내가 첫 도예공방을 좋아하는데는 공방에 있던 '고양이'도 큰 역할을 한다. 정확한 종은 모르겠지만 러시안 블루? 고양이와 비슷하게 생겼다. 고양이의 존재만으로 흙을 만질 때 더 평온했던 것 같다.


처음 도예를 배웠던 약 7~8개월간의 기간 동안 내 손을 거쳐 그릇이 탄생하는 게 재미있었다. 내가 원하는 디자인으로 제작을 해보겠다거나 작품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이끄는대로 이끌어졌다고 할까.


나의 두 번째 도예 선생님이자 현 도예 선생님은 캐롤을 좋아하신다. 11월부터 캐롤을 들으며 2달째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끼고 있다. 올해 도예를 다시 시작할 때 '제가 예전에 도예를 했던 적이 있어요'라고 선생님께 먼저 말씀을 드렸다. 첫 수업을 갔을 때 이를 알고 계셔서 그런지 선생님은 디자인 상의와 내가 질문을 할 때 외에는 별다른 말은 하지 않으셨다. 거의 2~3달째 공방을 다니고 있는데 이 점이 참 좋다. 불필요한 질문은 하지 않으시고 내가 만들어가는 작품이 완성도가 높아지도록 도와주시는 점. 내가 작품을 만들고 있을 때 조용히 선생님의 일을 하시는 점. 이 모든 게 참 완벽할 정도로 마음에 든다. 왠지 공용 작업실에서 내 작품을 만들고 있는 도예 작가가 된 기분이랄까.


나: 안녕하세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늘은 뭐 만드실 거예요?


나: 오늘은 ~~~ 만들 거예요. 먼저 이렇게 하고 그다음에 이렇게 할 건데, 가능할까요?


선생님: 네, 당연히 되죠.


이렇게 간단한 대화들만으로도 충분한, 그만큼 흙과의 대화가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은. 이렇게 계속 도예를 하고 싶다. 도예로 제작만 할 뿐 기본적인 지식은 부족할 테지만. 시간이 부족하고 돈이 없더라도 계속 도예를 하고 싶다. 도예와 나는 정말 '운명'적인 관계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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