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표범 Aug 17. 2024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단 말이야

통제 vs 자율성


작년에 내가 한 남자 고등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을 맡았을 때, 나의 고등학교 시절과는 매우 다른  고등학교의 생활 모습에 매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두발 규제가 매우 엄격했었다. 학생들은 머리를 짧게 잘라야 했고, 머리 길이가 조금만 길어져도 선생님들에게 지적을 받곤 했다. 그때는 어떻게든 앞머리를 남기거나, 머리를 조금이라도 길게 보이게 하려고 별짓을 다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은 이상한 머리가 되고 만다)


그런데 요즘에는 머리 길이뿐만 아니라 염색도 가능한 혁신적인(?) 두발자유가 되었다고 한다. 머리를 길게 기르든 짧게 자르든 알아서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그럼 학교에는 장발을 한 학생들이 가득하겠군' 하고 예상했다. 그런데 실제로 본 학생들은 놀랍게도 대부분 머리를 깔끔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지저분하거나 지나치게 긴 머리를 한 학생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머리를 단정하게 손질한 학생들이 많았다. 물론 그사이에 탈색을 하거나 염색은 한 학생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단정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추가로 피어싱도 가능한데 부위의 제한은 있었다. 코걸이 눈썹고리는 안된단다. 나는 귀걸이 하는 친구도 몇 명 보았다.)   


이 모습을 보며 나는 한 가지 단순한 깨달음을 얻었다. 과거에 나와 친구들이 그토록 머리 길이에 집착했던 이유는 납득이 안 되는 규제 때문이었다. 그 당시 선생님들도 머리가 짧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납득할 만한 이유를 설명해 주지 못했었다. 이전에도 그래왔고 자고로 학생의 머리는 스포츠머리여만 했다. 학생다움을 강조하는 것이 두발을 규제하는 것뿐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어이없는 이유 중의 하나는 머리가 길면 학생들의 유흥업소 출입이 너무 쉬워진다는 이유였었다. 

하지만 규제나 통제가 엄격할수록 더 반항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마련이다. 그런데 지금은 자유가 주어지니, 학생들이 스스로 단정하게 머리를 유지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심리학 실험으로, "하얀 곰 실험" 이 있다. 이 실험은 1987년에 심리학자 다니엘 웨그너(Daniel Wegner)가 진행한 실험으로 참가자들에게 5분 동안 하얀 곰을 생각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하얀 곰을 생각할 때마다 벨을 울리라고 했다. 그 결과, 참가자들은 하얀 곰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오히려 더 자주 떠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즉, 어떤 생각을 억제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 생각이 더 자주 떠오른 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학교뿐만 아니라 회사에서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더운 여름에도 정장만 입으라고 규제하면 직원들은 오히려 자유롭고 편안한 옷차림을 더 원하게 되고, 정장에 대한 불편함이나 스트레스를 더 크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휴가제도나 복지제도도 지나친 제약이나 복잡한 조건을 부여하면 오히려 이 제도를 사용하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반발심이 더 생기게 된다. 

(만약에 휴가 승인을 받는데 3-4번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면?? 끔찍하다.)


너무 꽉 조이면 오히려 반발이 생기고, 조여진 부분이 아닌 다른 어딘가 삐져나올 수밖에 없다. 자율성을 존중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고등학생들의 두발자유에서 알게 되었다. 학교에서나 회사에서나, 자율성이 주어지면 사람들은 더 창의적이 되고, 자기 일을 더 잘하려고 동기부여를 받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작가의 이전글 회사 욕 할 때 우리의 자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