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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크와콩나무 Jun 20. 2022

묵은지와 아버지

우리집 냉장고는 친정에서 온 전라도 묵은지로 가득하다. 빨간 고추가루와 젖갈로 가득 버무린 묵은지 – 이 김치로 김치찌개를 포함한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다. 이런 김치를 먹고 자란 사람들에게는 감칠맛 나는 술안주가 된다. 우리 아버지도 술안주로 김치를 좋아하셨다.


고등학생일 때 친구분과 막걸리를 드시던 아버지 심부름으로 김치를 가져다 드린 기억이 난다. 집에 김치가 거의 없어 김치 한종지를 겨우 가져다 드렸다. 술기운에 그러셨겠지만, 딱 필요한 만큼 잘 가져왔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딸에게 뭐든지 칭찬을 해주고 싶지 않으셨을까. 김치 같이 흔한 음식을 보고 아버지를 추억하는 걸 보고 사람들은 아마도 아버지와 사이가 아주 좋은 딸이라고 할 것 같다. 그런데 사실 나는 아버지가 어떤 음식을 좋아했는지도 기억이 가물거린다. 아버지는 당시 여느 아버지처럼 권위적이셨고 추억도 그다지 많지 않다. 아버지와 같이 잠깐 같이 있을 때도 참 서먹서먹해 먼산을 보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와 딸로서 그래도 가까운 시간을 보낸 것은 아버지의 마지막 6개월 동안이다. 아버지는 20여년전에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내 서울집에서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나는 학원에서 마사지를 배워 아픈 아버지의 발과 등을 마사지해드렸다. 아버지는 날마다 내가 퇴근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셨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 나는 아픈 아버지에게 최선을 다하지는 못한 못난 딸이었다. 6개월 계시는 동안 아버지 간호를 위해 휴가를 쓴 기억은 거의 없으니까. 병간호에 좀 더 헌신해야지 생각하는 사이 아버지의 병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중환자실에서 온갖 호스들을 달고 가뿐 숨을 내쉬던 아버지가 “이래 가지고 퇴원해서 집에 갈 수 있겠냐”라며 마지막까지 생에 대한 집념을 잃지 않으시던 모습이 아직도 어제 일처럼 내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렇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내 인생관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우리가 아무리 열정적으로 치열하게 살더라도 언젠가는 삶이 끝난다는 것, 그리고 그 시기를 우리 의지대로 정할 수 없다는 건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나는 현재의 삶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려고 하고, 불필요한 집착을 하고 있진 않은지 되돌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나도 몇 년이 지나면 아버지가 김치에 막걸리를 마시던 그 나이, 50대가 된다. 아버지가 느꼈던 세월의 무게 인생의 무게를 나도 감당해나가야 한다. 가족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우리 아버지..오늘 아버지가 참 그립다.



- 샘터 Vol.616(2021.6)에 실린 '묵은지와 아버지'를 수정 보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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