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기가 되어 성찰하는 삶
따뜻한 아침 햇살을 받고 일어난 나는 가볍게 아침을 먹고 요가원으로 출근한다. 30여년동안 편안한 삶을 보장해주던 직장에서 은퇴하고, 나는 20대에 꿈꾸던 실버 요기가 되었다. 나는 아침에 일주일 세 번 노인들과 관절염 환자 같이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요가를 가르치고 있다.
사실 오랫동안 직장생활에 치여 내 몸도 여기 저기 아픈 곳이 많다. 하지만, 요가는 다이어트와 날씬한 몸매를 원하는 젊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 질환을 관리하면서 마음의 평안을 추구하는 실버 세대들에게도 필요한 운동이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10여년전 미국에서 보았던 근육질의 요기 할머니처럼 근육을 자랑하며 코어요가를 가르치지는 못하지만, 나는 내 몸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천천히 힐링 요가를 가르치고 세션동안 나도 수행을 한다. 요가를 가르치기 시작한 3개월 동안은 체조 선생님이 된 듯한 기분이었지만 지금은 내 혼을 실어 가르치고 수행하고 있다. 덕분에 한 세션을 끝내고 나면 에너지 샤워를 하고 나온 기분이 된다.
최근에는 일주일에 한번은 영어로 세션을 가르치고 있어 외국인들도 내 수강생들이 되었다. 직장 생활 중에 들었던 영어 요가 클립들, 그리고 외국생활에서 들었던 영어 요가 용어들이 모두 도움이 되고 있다.
요가 수련과 상담/코칭은 마음을 다룬다는 점에서 일맥 상통하는 면이 있다. 나는 요기가 되면서 젊은이들을 위한 진로상담과 코칭도 한다. 내 수입이 많지 않지만 일부는 정기적으로 기부하고, 정기적으로 무료로 요가와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마음이 편안하고, 일을 하면서 나도 발전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요기인 것 같다. 그저 쉽다고는 할 수 없지만 월급만 기다리며 버티던 직장생활보다 더 보람을 느끼고 나도 안정감을 갖게 되어 인생 후반기에 요기가 되어 정말 기쁘다.
2) 국제기구 컨설턴트
스페인에 있는 국제기구에서 잡오퍼가 와 Engagement letter에 사인해 보내던 날, 나는 25년간의 직장 생활을 단숨에 정리해버렸다. ‘이 나이에 외국생활을?’, ‘아이들은… 가족은… 적응은 할 수 있을까.…’ 이런 당연히 해야 하는 걱정들은 이번엔 하지 않았다. 인생 한번 사는 것인데, 내 뜻을 한번 펼쳐보고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재취업도 거의 안 된다는 나이에 20대부터 꿈만 꾸던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것인데 두 번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후진국의 디지털화와 금융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 여성의 삶을 개선시키는 프로젝트를 3년간 수행하게 되었다. 그 동안 비전공자로서 까막눈으로 관여했던 IT 프로젝트, 내 개인시간을 내서 했던 블록체인과 디지털화폐 리서치들이 나를 이 자리에 오게 했다. 한국에서는 활용하기 힘들었던 내 영어 리서치들이 국제기구에서는 빛을 발했다.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것은 생각했던 것처럼 도전의 연속이었다. 언어를 배우고 익히는 걸 좋아하지만 나이의 한계가 있어 순발력은 아무래도 떨어졌다. 생각보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야망이 크고 정치적인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젊을 때보다 조직에서 산전수전 다 겪어 사람과 사안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커리어가 성숙해졌을 때 국제기구에 오게 된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느껴졌다.
나는 다양한 분야의 여러 그룹과 소통하고 협업하니 내 리서치의 결과물은 퀀텀 점프하고 있다. 영어로 소통하는 것이 도전이 되지만, 상대방도 원어민이 아닌 경우가 많아 영어로는 마음놓고 말하고 쓴다. 젊은 시절 배낭 여행할 때처럼 일단 저지르고 본다고 해야 할까?
시간이 날 때마다 나는 유럽에 있는 3년을 최대한 즐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주변 국가에도 종종 가지만, 나는 에너지를 절약해 최대한 로컬처럼 살려고 한다. 동네 축제, 동네 책방의 행사들, 이웃 동네와의 수영 대회 같은 행사들에 가족들과 놀러 다니고 있다.
지금은 유럽에 있지만 내 물리적 심리적 베이스는 한국이다. 3년 후에는 한국으로 돌아가서 은퇴할 거라 블로그에는 글, 사진, 그림으로 추억들을 기록하고 한국에 있는 지인들과 글쓰기 모임도 하고 있다. 한국에서 은퇴해서 영어를 가르치고 커리어 코칭을 가르치기를 꿈꾸며..
3) NFT 컨설턴트
나는 최근 급 성장하고 있는 NFT (non-fungible token)사업 컨설턴트다. 나는 평소 미술품 감상을 좋아했는데 NFT가 미술품을 디지털화해서 저작권, 소유권을 거래하게 한다는 걸 알고 흥미를 느끼고 공부를 시작했다. 내가 하고 있었던 디지털화폐 리서치와도 연관성이 있어 열심히 하게 되었다.
좋아하던 그림들을 원 없이 보고 예술가들을 위한 사업화를 구상하게 되니 너무 신이 난다. 고객들은 유명 화가들도 있지만 이제 그림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어린 학생들도 있다. 나는 플랫폼을 만들어 홍보하기도 하고 국내외 유명 플랫폼에 NFT를 판매하기도 한다. 전문가들과 협의해 규제의 범위 내에서 새로운 사업 아이템과 사업모델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수익은 부침이 있지만 상사가 시키는 대로만 하던 직장인에서 트렌드 리더로 변신한 것 같아 뿌듯하다.
NFT 컨설턴트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학 강의를 구상하고 정부의 워킹 그룹에 참가해 규제를 혁신시키는 데에도 기여하고 있다. 워낙 트렌디하다 보니 계속해서 공부하고 경험해야 하지만 여기저기 불러주는 곳이 많다. 최근에는 디지털로 그림 그리는 것을 배우고 있다. 내 NFT를 만들어서 경매에 참여기 위해!
4) 에필로그
요기, 국제기구, NFT 컨설턴트 이 세가지의 다른 삶을 상상해보았다. 상상만 해도 즐겁고 기분이 좋다. 이 글 초고를 쓴지 몇 개월이 지난 지금, 돈, 기회, 건강 등 모든 조건이 다 충족된다면 내가 원하는 삶은 사실 제 위에 세 인생이 아니라 그간 단어만 들어도 내 살이 깍이는 것 같아 싫어하던 ‘현모양처’이다. 요기든 국제기구든 NFT컨설팅이든 자원봉사로 모두 가능한 것이고 현실적으로 행복감이 가장 큰 것은 내가 건강하고 아이들이 남편과 건강하고 즐겁게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좀 더 행복한 인생을 위해서는 위로 위로만 향하고 있는 삶의 나침반을 현실로 좀 더 낮추어야 할 것 같다. 아이둘의 엄마로서 나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