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26년 직장생활동안 매니저는 10번이 넘게 바뀌었습니다.
그중 한 매니저는 격주마다 1on1을 진행했고,
그 미팅마다 빠짐없이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 문서는 저와 매니저만 볼 수 있었고,
단순한 회의록이 아니라 그날 나눈 이야기,
제가 던진 고민과 건의했던 아이디어들이 차분히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더 인상 깊었던 건 그다음 미팅이었습니다.
제가 제안했던 내용이 어디까지 논의되었는지,
진행이 멈췄다면 왜 멈췄는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면 어떤 맥락에서 검토 중인지가
조용히 공유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경력동안 대부분의 매니저들은….
“좋은 의견이에요.” , “검토해 볼게요.”라는 말을 했지만,
기억되고, 기록되고, 진행과정을 업데이트해 주는 경험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 방식은 조직의 표준이 아니라,
그 매니저 개인의 리더십 스타일이었다는 점입니다.
말주변이 화려한 사람도 아니었고,
존재감을 크게 드러내는 타입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구성원들에게 행동으로 신뢰를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의 말은 흘려듣지 않는다.”
“당신의 생각은 이 조직 안에서 의미가 있다.”
그 메시지는 설명이 아니라, 과정 그 자체로 전달되었습니다.
그 경험 이후로 저 역시 제 방식의 문서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팀과의 대화, 고객과의 논의, 그날의 생각을 남기고 정리해
다음 만남에서 다시 꺼낼 수 있도록 기록하는 습관을요….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 기록들은 제 성장의 궤적이 되었고
신뢰를 쌓는 가장 조용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그 매니저가 제게 남겨주고 간 것은…
1on1의 형식이 아니라, 신뢰를 만드는 방법이었습니다.
신뢰는 큰 말로 쌓이지 않습니다.
기억해 주고, 기록하고,
그 이야기가 다시 돌아오는 경험 속에서 천천히 만들어집니다.
많은 사람들은 종종
말이 화려한 사람, 목소리가 큰 리더를 신뢰와 혼동합니다.
하지만 신뢰는 거창한 표현이나 제스처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당신의 말을 나는 잊지 않았다.”
“그 아이디어와 제안은 지금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
“이 대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런 조용한 일관성이 심리적 안전감을 가지게 하고, 관계를 단단하게 만듭니다.
반대로… 내 고민과 제안이 다음 미팅에서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완전히 사라져 있을 때, 사람들은 실망합니다.
그리고 그 실망은 분노가 아니라 침묵으로 바뀝니다.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더 이상 제안하지 않고,
더 이상 기대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그 매니저를 통해 크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신뢰는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남겨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기억되지 않는 대화는
사람의 입보다 먼저, 마음을 닫게 만든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