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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연 Mar 18. 2022

1화. 아동학대 공소시효 도과

자신의 나이가 가해자의 나이와 근접할수록 고통은 휘감기 시작한다.



사람은 살아가며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고, 경험 속에 많은 것들이 양분과 거름이 되어 삶을 지탱해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발판이 결코 될 수 없는 것이 바로 아동학대입니다.


저 역시 아동학대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말하기도 싫었고, 이처럼 흠집난 사실 그대로의 기억들과 트라우마는 영영 사라져 버리기만을 바랬습니다.


그러나 학대는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트라우마였습니다. 아무리 실체 없는 것으로 이미 뚫려 버린 상처 자국을 메우려고 해 보아도 역부족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만 13세 미만 아동에 대한 성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폐지되었습니다. 성범죄는 성에 관련된 범죄행위로써 실제 폭행이나 감금이 없었다 할지라도 강제추행을 했다면 추행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폭행에 의미됩니다. 이 모든 것은 대법원 판례에서도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반면 아동학대는 공소시효 폐지가 이뤄지지 않았고, 아직도 많은 피해자들이 어린날의 학대 트라우마로 인해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 또한 만 9세부터 학대를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도 제가 이 학대의 희생양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고 저 또한 찬란한 미래가 기다릴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새엄마의 학대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고작 만 10세의 제가 가출을 해야 하는 상황까지 도출되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힘들고 힘겨웠던 나날의 연속이었고 버티고만 산 세월이 무려 1년 6개월이었습니다. 그러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고, 폭탄 돌리기 식으로 저를 놔두었던 곳에서 저는 또 다른 폭행의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이 또한 깊은 상처였기 때문에 그 누구에게 말 못 할 사정이자 숨기고 싶은 과거였으나 이젠 모든 제 상처를 치유하고 두 딸들에게 엄연히 좋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에 형사고소를 하게 된 상태입니다.


반면 아동학대는 고소를 하고 싶어도, 상처를 치유하고자 그 사람을 용서하고 싶어도 모든 것들이 불가합니다. 저는 그 사람의 이중성으로 인해 용서를 할 기회마저 박탈당했고, 고소는 공소시효 도과로 인해 시도조차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뿐 아니라 많은 피해자 분들이 아동학대로 인한 트라우마로 힘든 세월들을 보내고 있을 것이며, 불쑥 찾아오는 급격스러운 공포와 혼돈으로 남은 삶조차 비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는 마음을 비우고 깨끗이 하면, 그 사람에 대한 용서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트라우마란 결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가해를 한 그 사람의 나이가 되어갈수록, 가해를 행한 그 사람의 입장처럼 한 사람의 엄마가 되어가면서 트라우마는 더욱 생생히 떠오르게 될 뿐이었습니다. 오히려 늦게 결혼을 했다면 이 조차도 늦게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26살에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그때까지는 여전한 상처로만 남아있던 것이 제 아이가 커갈수록 상처가 더욱 깊어지는 것이 바로 학대의 트라우마였습니다.


이제 제 나이는 서른을 지나 서른한 살로 접어들었습니다. 처음 가해자를 만난 것은 그 여자가 서른세 살이었고, 전 만 9세였습니다. 이제 저는 서른세 살이 다가오는 것조차 무섭고 치가 떨립니다. 가해자의 나이가 되어간다는 것이 몹시 소름 끼치고 피하고 싶은 현실이자 제 숙명입니다. 서른세 살을 살아남아야 하지만, 가해자의 학대 사실이 있었던 나이가 되어간다는 사실은 너무나 두렵습니다.


무엇보다 제 딸들마저 그때 가해를 당하고 홀로 속울음을 삼키기만 했던 당시의 제 나이에 근접해 가는 때이기도 합니다. 이런 극심한 고통 속에 아동학대 공소시효는 폐지되어 그 사람을 처벌하고 싶어도 처벌조차 할 수 없습니다. 물론, 한 가정을 이끌며 살아가고 계시는 아버지에게는 죄송한 일이기도 하지만, 저는 분명 아버지가 재혼한 그 여자로부터 말 못 할 정도의 학대들을 당해왔고 이로 인해 2년 뒤 마주하게 될 서른세 살이 두렵습니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아동학대 자체만으로 당시의 고통에 대해 괴롭게 여길수 있으나, 실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다 보면 그 트라우마는 훨씬 더 잔인하고 깊게 자신을 파고들어 속 뿌리마저 갉아먹는 듯한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몸 안에 있는 양분마저 그 잔인한 고통으로 인해 진기는 빠지게 되고 속 없는 겉만 남게 되겠지요.


아직 이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하는 피해자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정형화되어 있지 않겠지만 적어도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가해의 고통이 가해자의 나이뿐 아니라,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 더 깊숙한 곳에서부터 상처가 파고들어 간다는 사실을 아직 인지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이러한 사실을 알았을 때는 공소시효 도과가 되어 그 어떤 기회마저 박탈당한 때 이겠지요. 저처럼 말입니다. 아동학대만큼은 부디 공소시효 폐지가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고, 그때 새엄마도 비교적 나이가 젊었기 때문에 작년에서야 이 사실을 더욱 뼈저리게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더 큰 고통들에 맞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2년 뒤 도래할 서른세 살, 부디 아프지 않기만을 바라며 버티고 또 버티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에 비추어 아동학대만큼은 부디 공소시효가 폐지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남은 인생을 보다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적어도 미련 없이 한 없이 남은 인생, 괴로워하지 않고 살 수 있도록 만 13세 미만 아동에 대한 공소시효만큼은 폐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작은 소리에 불과하지만, 꼭 학대 피해자들이 계시다면 이런 이야기 해주고 싶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상처의 흔적이 남아버려 볼 때마다 괴로워진다.'

'상처가 발생한 비슷한 때가 도래하면 걷잡을 수 없는 고통이 나를 잡아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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