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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관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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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 Aug 16. 2024

한 여름, 나 홀로 교토 - 1일 차. 첫날 밤

밤을 걷다.

호텔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침대로 다이빙했다. 물론 자려고 한 건 아니고 이럴 시간도 없긴 하지만 내 숙소 방문 루틴 같은 행동이기에 반드시 해야만 했다. 루틴은 중요한 거니까 말이다. 거짓말 없이 10초 이하로 누워있다 혼잣말을 하며 일어났다.

"이럴 시간 없다. 정신 차리자."

자취 생활을 꽤나 오래하다보니 버릇처럼 혼잣말이 늘었다. 별로 좋은 버릇은 아니라고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꽤나 유용했는데 지칠때마다 혼잣말로 에너지를 끌어올리기 아주 좋았다. 아마 이때가 그런 사용을 처음 했던 날 같다. 비즈니스 호텔답게 화장실은 적당히 좋았고 특히 비치되어 있는 바디워시,샴푸,컨디셔너는 반할정도로 좋았다. 일본어로 9. Cue(큐)라는 브랜드였는데 한국에 돌아와서도 반드시 사야지 정도였다. 만약 글을 읽는 분들이 있다면 추천한다.

씻고 나와서는 방치 된 내 캐리어를 열었다. 짐을 풀고 여기저기 흩뿌려놓는 건 내 타입이 아니라 캐리어에서 대충 입고 나갈 옷만 꺼냈다. 땀으로 잔뜩 젖은 옷을 다시 입고 나가는 것은 교토에게 매너가 아니었다. 적어도 내 여행 속 교토에게는. 그리고 무엇보다 여행의 첫 걸음을 그런 옷으로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호텔에서 나와 생각해둔 번화가, 가와라마치까지 걷기 시작했다. 거리는 구글 맵으로 도보 10분. 설래임과 함께 걷기 아주 적당한 시간이었다. 조금 걷다보니 아까 정신 없을때는 듣지 못한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가게 앞에서 가게 주인과 손님들이 대화하는소리. 교토 특유의 횡단보도에서 들리는 "삑삑삑.삑삑삑." 소리. 연인으로 보이는 한 쌍이 지나가며 웃음과 함께 걷는 소리. 교토가 나의 여행이 시작되고 있음을 소리를 통해 알려주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한껏 소리를 즐기고 풍경을 눈에 흘겨담으며 밤을 걸었다. 날씨는 분명 더웠지만 오는 길이 꽤나 한적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그만큼 주변을 둘러보는 것에 집중한 것일까. 나는 더운 줄 모르고 가와라마치역에 도착했다. 아니 정확히는 가와라마치에 도착하고 나서는 확실히 더움을 느꼈다.

'와. 사람이 무슨...이거 다 관광객이야? 아니, 현지인들도 엄청 많은 것 같은데. 여기 무슨 로데오같은데인가?'

진짜 사람이 빽빽하다는 표현이 모자를 정도로 도로에 차 있었다. 물론 번화가에서 한창 사람들이 많을 시각 8시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마치 강남을 온 것 같았다. 전 직장이 강남주변이라 몇 번 밤에 강남에서 술자리가 있었는데 그때의 길거리가 연상될 정도였다. 

'음식점부터 찾아야겠다. 이 인파 속에 있으면 진짜 쩌죽을거야.'

가와라마치에서 찍은 사진. 인파가 정말 장난아니다.

다시 급하게 구글 맵을 키고 음식점을 찾았다. 대충 눈 앞의 골목길을 조금 들어가다보면 스시집이 있다는 표시가 보였다. 제일 가까운 음식점. 그게 나에게는 최중요 요건이었다. 더군다나 이전에 오사카에서 스시를 먹었을때 감동하기까지 했으니 이번에는 교토에서 감동을 느끼기 아주 좋은 상황이었다. 마음이 급한 덕분이었을까, 걸음을 시작하고 5분도 안걸려서 스시 집을 찾을 수 있었다.

"이랏샤이마세(어서오세요)"

그래 이거지. 하며 나무로 된 빗장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가게에는 3명의 아저씨 요리사가. 알바생은 둘이 서 있었다. 멀뚱멀뚱하고 잠시 알바생과 아이 컨텍을 하고 있는데 순간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일본은 내가 알아서 자리 찾아가면 비매너였던걸로 기억하는데, 자리 안내 안해주나? 아니다. 9시인데 벌써 마감했나?'

가게 마감 시간이냐고 물어야 하는데 마감이라는 일본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어눌한 일본어와 영어로 애써보기라도 해야했다. 난 정말 배가 고픈 상태였다.

"아노...스미마셍. 미세...타임아웃 시마스카?"

지금 생각해보면 문법도 맞는 단어도 단 하나가 없었지만 어쨌든 나는 필사적이었다. 알바생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머리 위에 느낌표를 띄우듯 얼굴을 밝게하며 말했다.

"코찌라니 도죠~(이쪽으로 오세요)"

기억은 안나지만 나는 그 알바생보다 밝게 웃었을 것이다. 감사하다고 하며 세 명의 아저씨 중 제일 잘해보이는 아저씨 앞자리에 앉았다. 확실히 관광객이 많은지 가게에서는 영어로 된 메뉴판을 주었다. 사실 영어나 일어나 읽지 못하는건 매한가지인지라 나는 상관없었지만 이것도 나름의 친절. 나는 메뉴판을 받고 파파고 사진 번역으로 몇 개의 스시를 시켰다.

"우니하고 광어하고 참치 하나씩 부탁드립니다. 아, 생맥주도요."

스포일러를 조금 하자면, 나는 여행에서 모든 끼니에 생맥주를 마셨다. 사실 맥주는 배가 더부룩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기피하는 편에 가까운데, 일본의 생맥주는 뭔가 다르다. 거북하지도 않고 그 맛은...나에게 일본하면 떠오르는 맛이 되어버렸다.

어쨌든 나는 꽤 많은 스시를 먹었다. 가격이 조금 비싼 건 봤지만 허기에 눈이 돌아간 나에게는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가게에서는 특별한 일은 없었다. 중간에 술에 거나하게 취한 일본 아저씨들이 나에게 관심을 주더니 자기랑 마시러 나가자고 한 것 빼곤 말이다. 그 아저씨들은 물론 3명의 요리사분들이 처리해주셨다. 솔직히 말하면 10피스는 더 먹을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한끼에 돈을 더 태우기는 부담스러워 번역기를 통해 '교토에 와서 첫 식사인데 너무 잘 먹었다.' 정도를 보여줬다. 요리사분은 살짝 입고리만 올리면서 웃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그분도 정말 만화같이 웃었던 것 같다.


스시집에서 계산을 마치고 나와 부족한 배의 용량을 채울 곳을 찾기 시작했다. 이전 글에서 말한 것 처럼 이자카야나 타치노미에 가서 술 한잔 하는 게 목적이어서 그런 곳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구글 맵에서 바로 옆에 그런 가게가 있다고 보여주고 있었다.

'아니 가게가 바로 옆이라는데 왜 다 문 닫은데 밖에 안보이는거야. 어디로 가라고 구글맵 이 싸가지야. 분명히 이 골목 근처인데...'

핸드폰을 잡고 미아 아닌 미아 상태로 해매길 5분 정도. 구글이 정보 업데이트를 안했나 의심하던 그때 구세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여기에서 나오는게..."

정확히는 한국어가 들렸다. 남자 두 분이 유리창인 줄 알았던 문을 열고 한국어로 떠들며 나오고 있었다. 슬슬 더위를 느끼고 있던 나에게는 두 분의 술기운으로 인해 붉어진 얼굴이 그리 반가울 수 가 없었다. 그래도 너무 티내면 이상하게 느끼실테니까 반가움은 살짝 숨기며 먼저 말을 걸었다.

"혹시 여기 먹을만 해요?"

"어...네...!"

대답해주신 분은 갑작스레 나온 한국어에 당황하신 듯 눈을 크게 뜨며 답해주셨다. 꼴에 한 5시간 정도 한국어를 안했다고 한국어가 반가웠다. 아까 스시집에 들어갈때 일본어랑 영어를 외계어처럼 한 행동. 그것을 만회하고 싶었던 듯 난 더 말을 붙였다.

"아, 사실 타치노미나 이자카야를를 찾고 있는데 어디로 가야될지를 몰라서요. 여기 괜찮으면 그냥 들어가려고 하는데"(물론 거짓말이다. 이 가게를 찾고있었는데 유리창을 문으로 생각하질 못했다.)

두 분은 서로를 한 번씩 바라보시더니 웃으며 대답해주셨다.

"여기 괜찮아요. 니혼슈하고 꼬치파는데...어 네. 꼬치가 특히 괜찮아요. 닭날개 꼬치요."

"아 정말요? 감사합니다."

친절함에 더 기대고 싶어지기 전에 인사하고 들어가려는데 다른 한 분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여행오셨어요?". "네". "혼자?". "네. 같이 올 친구도 없고 해서요."."대단하시네요."

택시에서 했던 그런 스몰토크를 나누고 두 분은 골목속으로 사라지셨다. 난 두 분이 여행객인 줄 알았는데, 사실 두 분은 유학생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자연스러운 바이브가 있었나.'

생각하며 가게 안으로 들어가 한 명입니다. 하고 안내를 받았다. 가게는 타치노미로 보였다. 타치노미가 뭔지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서서 먹고 마시는 이자카야다. 대신 비교적 값이 싸다는 평균적 장점이 있고 가게 주인은 서 있기 싫은 손님들이 빨리 나간다는 장점이 있다. 이해상충으로 만들어진 술집의 모습같은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나는 꼬치를 굽는 주인장의 정면 쪽으로 안내 받았다. 드디어 타치노미를 왔구나 하고 메뉴판을 받는 순간

"아이고, 왜 서서 드세요. 안쪽에 자리 있는데."

문 앞에서 만난 남자분이 가게 문을 열고 다시 들어오셨다. 저런 걱정어린 말을 한 번 해주더니 옆에 좁은 문을 넘으면 방이 있다며, 자신들이 마시고 나온 자리가 있으니 거기로 안내해달라고 하겠다 말을 했다. 그리곤 유창한 일본어로 가게 주인에게 나를 부탁해주기까지. 해외 나가면 한국인의 정을 느낀다던데 아마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었을까.

"옆에 알바분이 안내해주실거에요. 혼자 여행 대단하세요. 재밌게 놀고 가요!"

멋들어진 멘트와 함께 내 어깨를 두번 탁탁 치더니, 그대로 구세주는 문을 나갔다. 감사하다는 말이 들리긴 했겠지.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운동하시는 분이였나 싶다. 문을 향해 나가는 뒷 모습이 '남자는 등으로 말한다.' 의 이미지 그대로였다.

어찌됐는 나는 그분 덕분에 가게의 좀 더 안쪽 앉은 자리로 이동할 수 있었다. 자리를 안내해주는 아르바이트생이 나간 분과 친구냐고 물었지만 나는 '같은 한국인이니까...'정도로밖에 대답할 수 없었다. 아르바이트생은 끄덕끄덕 하며 웃었다. 자리에 앉자 아르바이트 생은 메뉴판을 건네며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나는 오히려 영어를 듣고 해석하기 어려워서 부족한 일본어로 "일본어를 듣는 건...어느 정도...됩니다. 일본어로 해주세요." 하고 말했다. 발음이 이상해서 일까 알바생은 아기를 보듯이 웃으며 "그럼 일본어로 하겠습니다~" 하고 메뉴판을 건냈다.

가게에는 생맥주나 칵테일도 있었지만 메인은 따로 있었다. 쌀 함유량과 도수로 구분 된 10가지 종류의 니혼슈를 마셔볼 수 있었는데 나는 이런 종류의 술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기에 시작부터 중간 도수의 니혼슈를 시켰다. 주문을 받은 알바생이 이 술은 도수가 높다고 경고하길래 나는 괜찮다고 하며 원치 않는 술부심을 부리고 주문을 시킬 수 있었다. 이후에 가게에서 마시는 일은 정말 즐거웠었다. 오늘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며 마셨던 여러 종류의 니혼슈들은 감탄을 줄 수 있었고, 추천받은 닭날개 꼬치나 타다끼같은 안주들도 행복할정도로 맛있었다. 

한국인이냐며 먼저 말을 걸어주고 내 부족한 일본어와 영어로도 대화를 해준 알바생분들은 즐거움을 주셨다. 참고로 일본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게장이 유행이라고 한다. 나는 그 말에 놀라 '요즘 한국에서는 젊은 애들이 찾아먹지는 않는다. 대부분 아저씨,아주머니들이 드신다.' 라고 말했더니. 역으로 충격이라고.


그렇게 부족한 회화능력으로도 열심히 수다를 떨며 마신후, 가게가 마감 시간이 된 후에야 가게를 나왔다. 꽤나 취기가 올라온 상태라 바로 호텔로 가야겠다 싶어 앞에 보이는 편의점에서 맥주 한캔을 사고 이전에 왔던 길을 돌아가려 했다. 그때 대로변을 보니 엄청난 인파가 다시 보였다.

'이상하다...? 가게들 대부분 마감하고 이 시간에는 사람 없다고 그랬는데?'

자세히 보니 경찰들이 도로를 통제하고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그 통제된 도로를 향해 대포 카메라들을 들이밀고 있기도 했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나는 통제되고 있는 도로를 조금 따라 걷다가 멈춰섰다. 어떤 분에게 물어야 할까 하고 잠시 고민한 뒤 조금 더 앞에 보이는 중년 부부에게 다가가 물었다.

"여기 무슨 축제나 행사가 있나요?"

내 물음을 들은 아저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뒤로 몸을 빼셨다.

'아, 내 일본어 발음이 많이 별로인가보네. 못알아들으셨나보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번역기 어플을 아예 화면째로 보여드렸다. 아저씨는 그래도 몸을 빼셨는데, 그때 옆에 계시던 아주머니가 갑자기 능숙한 한국어로 말을 하셨다.

"오늘 여기 축제 있어서 그래요."

깜짝 놀란 나는 관광 오신 한국인 부부신줄 알고 자연스럽게 한국어로 말했다.

"아, 한국인이세요?"

"아니에요."

"그럼 일본인이세요?"

"아니 중국인이에요. 한국어는 따로 공부했고."

"???"

일본 교토에서 한국어를 배운 중국인에게 길을 묻다니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당황스럽긴 했지만 친절한 두 중년 부부에게 감사를 전하고 축제 행렬이 오고 있다는 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조금 걸어가자 멀리서 '요우!요우!요우!'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리와 함께 저 멀리서 도로에서도, 옆에 인도에서도 사람들이 걸어오고 있는것도 보였다.

선두에 있는 사람들은 하얀 행사복을 입고 우산과 호롱불, 리어카 등을 끌고 가고 있었다. 그분들은 선봉대의 역할에 충실하듯 길을 찾아가고 있었고 자신들이 맡은 물건. 우산과 호롱불들을 바라보며 길거리 행진을 하고 있었다. 그분들이 어느정도 지나고 나서야 "요우!"기합 소리에 가려진 짤랑거리는 작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자리를 조금 더 지키고 있었더니 거대한 가마를 볼 수 있었다. 알고보니 이건 가마를 옮기는 행사였으며 이 행사는 가마에 옮겨져 일하고 온 신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그런 행사였다. 잔뜩 취해있었기 때문일까. 뭔가 가슴이 이들을 따라가기를 원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지만 그냥 저 대열을 따라가보고 싶었다. 

'어차피 혼자 온 여행이니까.'

나는 저 흰색 옷가지의 사람들을 따라 계속 걷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었는지는 딱히 생각하지 않았다. 10분정도 넉넉한 걸음으로 걷자 눈 앞에 거대한 신사. 야사카 신사의 토리이(문)와 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축제 때문인지 신사에는 온갖 호롱불과 등, 조명들이 켜져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나니 내 마음에게 감사를 표할 수 밖에 없었다. 밤에 보는 빛나는 신사라니. 여행 시작부터 너무 감사한 관경아닌가.

가마는 다른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굳이 가마를 들썩이는 모습을 더 보고싶지는 않아서 신사의 계단을 올라가려하는데 꽤나 재밌는 관경을 볼 수 있었다. 계단에 앉아있는 여자들에게 다른 남자가 헌팅을 시도하고 있었다. '어딜가든 똑같구나.' 하고 그들의 용기에 응원을 보내며 신사의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일본의 신사 계단은 모두 턱은 낮고 편이다. 올라가는 힘은 들지 않지만 시간이 걸리는 편인데 나름 느리게 올라가는 계단의 맛이 있다. 그렇게 계단을 오르자 아래에서 헌팅을 하던 남자들이 이해가 됐다. 축제를 하고 있는 밤의 신사란 나름 성공률이 높을만한 장소였던 것이었다. 토리이에 빽빽히 걸린 등. 빛나는 등들로 이루어진 신사의 길들. 중앙에서 가마를 기다리고 있는 멋들어진 제단까지. 밤을 이용해 등으로 만들어낸 이 모호한 열기는 어떤 방식으로든 가슴떨리는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야사카 신사의 축제 밤 풍경. 따뜻하고 선선한 열기가 있었다.

그렇게 신사를 구경하다가 가마가 들어오는 것 까지 보자 그제야 마음이 채워진 기분이 들었다. 이런 축제의 특성상 조금 미리 나가지 않으면 엄청난 인파에 휩쓸리게 되는 것을 나는 너무 잘 알고있었다. 행렬을 따라 걸었더니 술도 조금 깬 기분이어서 아까 사둔 맥주 한 캔을 가방에서 꺼내 빠르게 비워냈다.

아직 취기가 깨지 않았으면 했다. 야사카 신사의 밤 축제 풍경이 준 선선한 열기를 몽롱한 기분으로 좀 더 즐기고 싶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을 구글맵으로 보면서도 그렇게 소망했다. 구글 맵이 그 마음을 알아줬는 지 집에 가는 길을 꽤나 유명한 산책로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폰토쵸 거리라고 불리는 곳들이었는데, 한 쪽은 큰 강이, 한 쪽은 작은 물줄기가 고즈넉하게 흐르는 아름다운 장소였다.


거리에는 약한 느낌의 불빛들만 빛나고 있었다. 12시가 다 되가는 시간이다보니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비치는 빛은 가정집과 호텔들에서 새어나오는 빛들. 그리고 가로등들 밖에 없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나는 축제 지역에서 멀어졌고 사람들의 소리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에 반비례해 내 옆에 같이 걷는 물줄기의 소리는 점점 더 내 귀를 채워갔다.

걸어야하는 길은 약 20분 정도였다. 인적이 많이 드물어졌다고 느끼고 오랜만에 가방에서 에어팟을 꺼냈다. 일본에 입국한 이후로부터는 에어팟은 최대한 빼고 살기로 마음 먹었는데, 듣고 싶은 노래가 갑자기 생각나서 참기가 싫었다. 


유우리의 여름소리를 재생했다. 가사에서는 여름이 끝나는 소리가 들린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여름이 시작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물소리로.

밤을 걷던 도중 흐르는 물 위로 세워진 작은 다리가 보였다. 구글 맵은 직진하라고 하지만 그 다리를 본 순간 나는 다리를 건널 수 밖에 없었다. 이유를 설명하기는 조금 어려웠다. 그냥 건너가서 더 걸어보고 싶었다. 물을 따라 반대에서 걸어보면 지금 여기와는 또 다르게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 예감은 정확했다. 반대쪽은 또 다른 감흥을 줬다. 닫힌 가게들과 물이 흐르는 길에 살짝 앉아 발로 물장구치는 커플들. 그리고 걷다보니 나온 꽃 나무 한그루와 사거리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를 울리려고 작정한 것 같았다.


마음이 너무 떨려서 위험했다. 행복감이 차오르다 못해 넘쳐서 수습이 안되는 기분. 난생 처음 느껴보는 기분을 생전 처음 와보는 이 낯선 거리에서 느끼고 있었다. 눈물이 날정도로 행복하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나는 어디로든 떠나고 싶어서 이 곳을 찾아왔고, 막상 찾아온 곳에서는 기분에 따라 경로를 벗어났다. 그럼에도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게 너무나 절절히 체험되서 내 감정이 직격타를 맞았나 싶었다. 그런 기분으로 걷다보니 어느새 호텔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여러 마음을 담아 혼잣말을 했다. "행복하네."

행복했던 폰토쵸 거리

  


1일차 저녁의 내용입니다. 내용이 너무 기네요. 그래도 마음을 정리하는 데 길이를 줄이고 싶지는 않아 욕심을 내봤습니다.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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