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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수다쟁이 May 05. 2020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여성학 수업을 듣고, 21살에 가졌던 소회

<2014年 作>


작년에 대학에 입학하면서 27살의 나이에 힘겹게 취업에 성공한 친한 언니를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다. 그 언니가 이야기 해준 취업 시장의 현황은 20살이었던 내가 받아들이기에 어려웠다. 외국에서 공부를 했었고, 불가피하게 그 공부를 포기하고 한국에서 학교를 다시 다녀야 했지만 워낙 총명했기에 학교를 다니는 내내 전액 장학금을 받던 언니였다. 그렇게 나에게는 대단하다고만 느껴지던 언니가 취업시장에서 많은 절망과 좌절을 느껴야 했다는 것이 의아했다. 언니는 내게 대한민국에서 여성이 살아가기란 너무 많은 것들이 힘들다고 했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취업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현실에 씁쓸함을 많이 느꼈다고 한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업들은 왜 여성 채용을 기피하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현대 사회가 발전하면서 여성지위가 많이 나아졌다고 한들, 아직까지도 여성들에게 취업은 넘기 힘든 문턱이다. 일단 기업은 같은 스펙의 취업준비생 남녀 두 명이 있으면 남자를 우선적으로 뽑는다고 한다. 여성은 남성보다 제약이 많아 꺼려한다는 것이다. 같은 연봉을 줘야 한다면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는 남성을 뽑는 것이 기업의 입장에서 더 효율적이라는 인식이 기업가들 사이에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 언니가 많이 들었던 질문은 ‘이제 곳 결혼할 것 아닌가’하는 질문이었다. 이 대목만 보더라도 일하는 여성이 결혼을 하고 육아를 일과 함께 병행할 수 있는 것에 많은 기업들이 부담을 느끼고 있고, 동시에 여성의 사회 활동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육아를 여성의 의무로 생각하는 잘못된 사회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남성에게도 아이를 양육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여성과 같이 육아 휴직이 똑같이 주어지면 아이를 낳고도 여성은 부담 없이 회사 업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정부에서 규정해놓은 육아 휴직기간만 지켜져도 회사를 다니면서 육아를 위해 사표를 내는 여성은 줄어 들것이다. 기업에서 조차 이러한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서 결혼 적령기 여성의 취업을 꺼려하는 인식은 어불성설이다. 정부에서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아이를 무조건 많이 낳으라고 할 것이 아니라 우선 일하는 여성이 엄마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실질적 도움을 주고, 규정을 지키지 않는 기업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출산율을 높이는데 더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사회에 진출해 높은 자리에 위치해 있는 여성 기업가들은 이러한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 유명 가방 브랜드의 여성 CEO가 사내 게시판에 자신은 여성임에도 여성을 채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글을 썼다는 보도를 보았다. 그녀가 봐온 여성은 회사 내에서 동료끼리 편 가르기를 하고, 힘든 일은 남자 직원들에게 미루며, 생리휴가를 연휴와 맞춰 내는 등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그러한 여성 직원들이 있었을 것이라 인정한다. 그 CEO가 거짓을 말했을 리는 없다. 하지만 그것을 모든 여성으로 확대했을 경우에는 상당한 비약이라고 할 수 있다. 본인도 여성이면서 자신은 이 사회에 살아남기 위해 남성의 마인드를 가지고 남성처럼 일했다는 그녀의 말속에는 남성은 편 가르기를 하지 않고, 회사를 위해 야근을 마다하지 않는 아주 훌륭한 인격체이며 그런 남성을 닮기 위해 노력했다는 성 차별적 발언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러한 인식은 이미 사회에 뿌리 깊이 박혀있다. 인터넷만 하더라도 각종 포털 사이트에서 여성 혐오 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누나나 여동생, 어머니일 수 있는 여성을 왜 이렇게 혐오하는 것일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들이 느끼는 불안감이다. 여성을 혐오하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가 발전하면서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자신들의 자리를 대신한다는 불만이 있는 것 같다.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여성의 사회 진출이 지금처럼 눈에 띄지 않았고, 성별을 불구하고 실업대란이라는 불안한 일상을 경험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취업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여성과 남성의 취업률이 비등해지는 것에 대한 불안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현상이 남녀가 평등한 세상으로 가는 과도기적 상태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처럼 남성주의 사회가 안고 가야 할 문제인 것이다. 기성세대는 여성이 일하는 모습을 좋아하지 않고, 그러한 기성세대 밑에서 교육받고 자라온 우리의 의식 속에는 아니라고는 하지만 남성 위주로 사회가 돌아가야 한다는 사상이 자리 잡혀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나의 배우자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이중적인 모습도 보인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우리 아빠도 그런 기성세대의 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아빠는 남성주의 사회를 살아온, 그런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서도 내 딸은 누구보다 사회에서 알아주는 일을 했으면 한다. 그리고 맞벌이를 하는 엄마의 일은 집안 살림과 병행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지금은 예전보다 많이 괜찮아졌지만, 아빠의 이러한 인식은 엄마를 많이 힘들게 했었다. 


종종, 여성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사라지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곤 했다. 취업시장에서 이러한 차별은 무조건 일정 비율은 여성을 뽑는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에 대한 해택이라는 반발이 더 거셀 것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그대로 인정하고 나아가서는 인식의 개선이라고 생각한다. 여성과 남성은 생물학적으로 신체적 차이가 존재한다. ‘여자도 무조건 남자처럼 할 수 있어!’라는 생각은 오히려 남성처럼 하고 싶어 하는 남성 우월주의라고 생각한다. ‘남자처럼’이 아니라, 여성이 잘할 수 있는 일 그리고 남성이 잘할 수 있는 일을 그대로 인식하는 것, 동시에 여성이 잘하는 일을 남성이 도전했을 경우와 남성이 잘하는 일을 여성이 도전했을 경우, 아무 편견이나 조건 없이 그들을 격려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평등의 첫걸음일 것이다. 또한 지금의 과도기적 상황을 잘 극복해야만 나중에 온전히 여성의 사회진출을 좋은 시각으로 보는 날이 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과도기적 상황에서 멈출 것이냐, 온전한 평등의 사회로 나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앞으로의 사회를 이끌어 나아갈 우리들의 손에 달려있다. 


대학생이 되면서 여성으로서 앞으로 대한민국을 살아가야 하는 앞날에 두려움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일들이 앞으로 내가 겪어야 할 일들이라고 생각하니 걱정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그대로 잘못된 인식에 갇혀 현실에 순응한다면, 나 또한 남성주의 사회에서 힘겹게 살아남은 안타까운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다. 여성학을 들을 면서 가장 가슴에 와 닿는 부분은 나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라는 것이었다. 내가 남성이고 여성이 고의 문제보다 우위에서 내가 누구인지, 앞으로 어떠한 신념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정해졌을 때, 성별과 관계없이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고 더 나아가 고통받는 여성들을 도울 수 있는 길라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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