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육아휴직 중
매년 이맘때면 학부모 공개수업과 학부모 총회를 준비하느라 정신없이 지냈을 시간이다. 하지만 지금은 한가롭게 커피를 마시며 학부모로서 학부모 총회에 참석한 글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이 조금은 어색하다.
아들의 학교는 공개수업을 하는 날에 학부모 총회를 같이 진행했다. 아무래도 공개수업과 학부모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연차나 반차를 써야 하는 맞벌이 부부를 배려한 듯하다. 1학년 자녀를 둔 아이의 부모는 공개수업을 참관하며 아이의 학교 적응 정도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되도록 공개수업에 참석하는 것이 좋겠다. 또한 학부모 총회에 참석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초등학교의 전반적인 운영 시스템이나 교육과정도 알 수 있기도 하지만 학부모 총회 이후 담임선생님과의 만남이 있기 때문이다.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담임선생님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학부모 총회에 참석하는 학부모가 많은 것을 알기 때문에 담임선생님과의 만남은 학부모 총회 마지막 행사로 배치한다. 여기서 눈치 싸움이 시작된다. 담임선생님을 빨리 만나 자녀의 얘기를 듣고 싶은 학부모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담임교사는 총회가 끝나기 전까지 교실로 가지 않고 연구실에 모여 있어야 하는 007 작전 비스름한 작전명령도 내려진다.
그런데 학교에선 공개수업과 학부모 총회를 같은 날 진행하는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학부모 총회 때 학급의 학부모 대표를 선정하기 때문이다. 경기도 교육청에선 학부모회 운영 매뉴얼도 만들어 배포하고 있고 학교에서도 학부모회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녹색어머니회, 마미캅, 사서도우미, 급식모니터링, 방과후 모니터링, 학부모 교육 활동 등의 여러 가지 활동이 학부모회의 주도로 운영된다. 모든 모임이 그렇듯 학부모회장이 존재하고 회장단, 그리고 학년 대표 그리고 학급대표가 있는데 학부모 회장단은 전체 학부모가 모인 총회 자리에서 정해진다. 그리고 학급 학부모 대표가 각 학급에서 정해지면 학급 학부모 대표끼리 다시 모여 학년 대표를 정하게 되는 구조이다.
이때부터는 학부모간 눈치싸움이 벌어진다. 1학년에 자녀를 처음 보낸 학부모는 담임선생님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교실에 앉아있는데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학부모 대표를 뽑아야 한다는 담임선생님의 난처한 표정이다. 이런 갑분싸 상황에서 교사는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첫 번째 방법: 모든 학급대표 선정의 과정을 학부모에게 맡기며 교사는 밖으로 나가 있기.
두 번째 방법: 아이의 이름표를 뽑아 나온 학부모님께 학급 대표를 맡기기
세 번째 방법: 학급 대표가 안 뽑히면 학급 운영을 설명할 시간이 줄어든다며 시간의 압박감에 자발적으로 학급 대표로 나오길 유도하기.
네 번째 방법: 학급 회장과 부회장의 부모님께 혈연관계의 운명적 공동체를 강조하기
예담이의 담임선생님은 첫 번째 방법과 네 번째 방법을 함께 적절히 사용하셔서 학급 회장의 부모님께 먼저 학급 대표를 맡아 달라고 부탁을 드리셨다. 하지만 학급 회장의 부모님은 전학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는 학부모님이 없어서 일을 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극구 사양을 하셨다. 그래서 다음으로 부회장으로 순서가 넘어왔는데 예담이와 함께 부회장이 된 여자 아이의 어머니께 먼저 부탁을 하셨고 그분은 순간 당황하셔서 거절할 말을 찾지 못한 채 한숨으로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셨다.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간신히 예담이 반의 학급 운영을 듣고 급하게 예섬이의 반으로 뛰어갔다.
예섬이의 반에는 이미 어둡고 차가운 기운이 엄습해있었다. 예섬이의 담임선생님은 세 번째 방법을 택하셨고 학부모님들은 “이 분위기 어떡할 거야.”하며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때 그 분위기를 못 견뎌하시던 한 학부모님이 말의 포문을 열었다.
“우선 직장맘은 힘드실 것 같은데요. 전업주부이면서 자녀가 한 분인 분이 하면 어떨까요?”
그 말을 끝내며 친분이 있는 듯한 한 분을 지목했다.
“야, 너 집에 있잖아, 네가 해”
“언니, 전 이런 거 못해요.” 하며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자.
한 분씩 지목하며 학급대표를 할 수 있는지 여쭤봤다.
“전 자녀가 세 명이예요.”
“전 쌍둥이라 힘드네요.”
“전 직장맘이라 어려울 것 같아요.”
결국 그분은 나에게도 물어보셨다.
“아버님은 어떠세요? 남자분이 한 번 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요.”
나는 살짝 당황했지만 나에겐 하지 못할 명분이 있었다.
“전 6개월만 육아휴직을 해서요.”
“아, 어쩔 수 없네요.”
그분은 다시 처음에 지목했던 학부모님을 언급했다.
“집에 있고 아이 혼자인 거 다 아는데 너 밖에 할 사람이 없네, 네가 하면 안 될까?”
결국 지목을 받았던 학부모님은 고개를 떨구고 학급 대표직을 수락했다.
그렇게 학급 대표를 선정하기 위한 폭탄 돌리기는 막을 내렸다.
학부모 총회를 참석해보니 학급대표로 뽑힐까 부담스러워 학부모 총회를 참석하지 않는 부모님도 꽤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학부모회의 활동이 학교의 교육과정 운영과 맞물려 돌아가며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주체가 부담스러워하는 것이라면 학교도 다른 방법을 찾아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매년 똑같은 일로 교사로서 어려운 부탁을 해야 했던 학부모 총회는 학부모로 입장이 바뀌어도 난처한 표정으로 마주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