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쳐야 하는 것에도 순서가 있다면

아빠는 육아휴직 중

by gt

어제는 예담이가 동생이랑 다툰 문제로 나랑 얘기를 하다가 감정이 북받쳐 올랐는지 많이 울었다. 내용인 즉, 동생이 너무 싫다는 것이다. 동생은 매일 떼를 쓰고 소리를 질러도 엄마, 아빠는 너무 쉽게 용서해주는데 자기는 용서할 수가 없다고 했다. 동생이 사랑을 다 가져가 버린 것 같다며 그 증거로 요즘 엄마가 자기를 안 재워준다는 것을 내세웠다. (아빠가 아들 둘의 가운데 누워 함께 책도 읽어주고 북패드도 보고 잠도 재워주었는데 말이다.) 아내가 대학원에 가면서 아이들과 같이 자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는데 요즘 마크라메를 배우는 것에 빠져 아이들이 스스로 잘 수 있다며 나와 아이들만 아이들 침실로 가서 자게 했던 것이 생각났다.

마음속으로 아내를 원망하고 있을 즈음, 귀가 간질거렸는지 아내의 전화가 왔다. 대학원을 가는 중에 아이들이 생각나 연락을 했을 것이다. '옳다구나' 하고 예담이를 바꿔줬다. 예담이는 엄마 목소리를 듣자마자 감정이 격해져 울면서 절규했다.

“엄만 요즘 실로 만드는 거 하느라고 나 안 재워주잖아, 안 그래도 대학원 가는 날엔 같이 못 자는데 대학원 안 가는 날도 새벽까지 그거 만드느라 아빠랑만 자라고 했잖아!!!”

듣고 보니 서운하지만 어쩔 수 없다. 엄마 아빠가 함께 집에 있는데 잠을 잘 때 둘 중 하나라도 빠지면 아이들이 느끼는 사랑의 감정은 반으로 줄어든 느낌일 것이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잠을 재우는 과정에서 우리 집은 항상 그래 왔다. 엄마, 아빠가 집에 있다면 가족이 모두 잠자리에 누웠고 아이들이 모두 잠이 들고 나면 일어나 차를 마시며 대화를 하고, 일을 하거나 각자의 취미 생활을 했다. 그런 생활이 익숙해진 아이들에겐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가족이 모두 불을 끄고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도 하고 서로 몸을 간질 거리기도 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늑한 시간이었으리라.

아직 아이들은 부모와 떨어져 잠드는 것에 대해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첫째가 3학년, 둘째가 1학년이 되어 침실을 따로 만들어 주긴 했으나 잠은 꼭 재워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그 아늑함을 더 오래도록 누려온 첫째는 상실감이 더 컸을 것이다.

“그래도 엄마는 예담이를 더 사랑하는 거 알잖아.”

“너도 그림 그리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리듯이 엄마도 하나에 빠지면 마음에 들 때까지 하는 거 알잖아”

아내는 예담이를 설득하려 했지만 나도 예담이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아이고 어른이고 사랑은 마음으로 느끼는 경험이지 표현의 숫자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침 예담이와 나는 마크라메에게 엄마와 아내를 뺏긴 상실감을 공유하고 있었다. 내심 예담이의 앙탈을 응원했다.

“그래, 미안해. 이제 엄마가 대학원 안 가는 날엔 재워줄게.”

결국 예담이는 엄마에게 사과를 받고 다시 밝아져 밖으로 놀러 나갔다.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에도 순서가 있다면 가장 먼저 사랑받는 느낌이 무엇인지 가르쳐야 한다.

예담이에겐 사랑받는 느낌이 엄마가 안아주며 잠을 재워주는 그 모든 상황에서 얻어지는 것이리라.

아늑하고,

포근한,

안아줄 때의 따스함.

그렇게 사랑받은 아이가 누군가를, 다른 무엇을 깊이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게 되리라 믿는다.


내가 학부모님들과 모임을 가질 때 가장 먼저 보여주는 시가 있다.

렴형미 시인의 <아이를 키우며>라는 시인데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새겨 두어야 할 많은 것들이 짧은 구절 안에 담겨있다고 느낀다.


아이를 키우며

렴형미

처녀시절 나 홀로 공상에 잠길 때 며는

무지개 웃는 저 하늘가에서

날개 돋쳐 나에게 날아오던 아이

그 애는 얼마나 곱고 튼튼한 사내였겠습니까.

그러나 정작 나에게 생긴 아이는

눈이 크고 가냘픈 총각 애

총 센 머리칼 탓인 듯 머리는 무거워 보여도

물푸레아지 인 양 매출한 두 다리는

어방없이 날쌘 장난꾸러기입니다.


유치원에서 돌아오기 바쁘게

고삐 없는 새끼염소마냥

산으로 강으로 내닫는 그 애를 두고

시어머니도 남편도 나를 탓 합니다.

다른 집 애들처럼 붙들어놓고

무슨 재간이든 배워줘야 하지 않는가고


그런 때면 나는 그저 못 들은 척

까맣게 탄 그 애 몸에 비누거품 일구어댑니다.


뭐랍니까 그 애 하는 대로 내버려두는데

정다운 이 땅에 축구공마냥 그 애 맘껏 딩구는데


눈 올 때면 눈사람도 되어 보고

비 올 때면 꽃잎마냥 비도 흠뻑 맞거라.

고추잠자리 메뚜기도 따라 잡고

따끔따끔 쏠쐐기에 질려도 보려무나.


푸르른 이 땅 아름다운 모든 것을

백지같이 깨끗한 네 마음속에

또렷이 소중히 새겨 넣어라.


이 엄마 너의 심장은 낳아 주었지만

그 속에서 한생 뜨거이 뛰어야 할 피는

다름 아닌 너 자신이 만들어야 한단다.


네가 바라보는 하늘

네가 마음껏 딩구는 땅이

네가 한생토록 안고 살 사랑이기에

아들아, 엄마는 그 어떤 재간보다도

사랑하는 법부터 너에게 배워주련다.

그런 심장이 가진 재능은

지구 우에 조국을 들어올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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