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육아휴직 중
수요일은 방문 학습지를 하는 날이다. 수요일이 되기 이틀 전부터 나는 가슴이 조마조마한다. 요즘 부쩍 학습지를 하기 싫어하는 예섬이와 실랑이를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아빠, 학습지 안 하면 안 돼?”
“매일 한글 공부는 하기로 했잖아.”
“아빠랑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건 너무 지겨워.”
“뭐가 지겨운데?”
“계속 같은 것만 반복하잖아. 수학도 계속 1 더하기만 하고 너무 지겹단 말이야.”
“그래도 네가 하기로 한 거니까 해야 돼”
“싫어, 하기 싫다고.”
매번 반복되는 월요일과 화요일의 일상에 나도 슬슬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학습지를 신청한 것도 아니고 아이에게 학습지를 시키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내 뿔난 마음이 아내에게로 향한다.
“학습지를 시켜준 건 자긴데 왜 내가 예섬이랑 매일 실랑이를 해야 하냐고.”
아내도 할 말은 있었다.
“나도 시켜주기 싫었는데 예섬이가 형 하는 거 보고 한다고 해서 억지로 시켜 준거란 말이야.”
“나는 이제 모르겠어. 선생님께 안 하겠다고 말씀드릴 거야.”
그렇게 수요일이 되고 학습지 선생님이 오시면 예섬이는 선생님의 꼬임에 넘어가 다른 학습지를 해보겠다고 돌아섰고 나는 또다시 예섬이랑 일주일 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오늘은 어떻게 학습지를 시킬까?’
매일 예섬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시작되는 나의 고민이었다.
태권도를 마치고 나면 집으로 오기 전에 내가 데리러 가는데 월요일은 마침 집 앞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주는 날이다. ‘오늘은 간식으로 학습지를 하게 유인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예섬이에게 말했다.
“예섬아 우리 아이스크림 먹고 학습지 할까?”
“아니, 안 먹을래.”
그렇게도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앞에 두고도 너무나 쉽게 던진 한 마디에 나의 치졸한 계획은 부끄러움만 남겨두고 사라졌다.
저녁 식사를 하기 전, 예섬이에게 다시 한번 다짐을 듣기 위해 식탁으로 불렀다.
“예섬아, 정말 학습지 하기 싫어?”
“응”
“예섬아, 싫어한다고 다 안 할 수 없는 거야.”
“왜 싫은 걸 해야 하는 거야?”
난 예섬이의 한 마디에 더 이상 설득해야 할 이유를 잃었다.
‘왜 싫은 걸 해야 하는 거지?’
이 질문이 부메랑처럼 나에게 돌아와 묻고 있었다.
'지금 당장은 하기 싫겠지만 언젠가 너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걸 확신할 수 있나?'
아무리 설명을 하려 해도 내가 납득할 만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납득하지 못하니 설득의 힘을 잃는 것은 당연하다. 오히려 지금까지 누군가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 싫어하는 걸 억지로 해왔던 내가 이상해 보이기까지 하다.
‘싫은 걸 하지 않을 권리가 아이에게 없다면 어른이 되었을 때도 싫은 걸 하고 살아야 하는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교사로서 학부모와 상담을 할 때 자주 듣는 말이 ‘자기가 학원을 가고 싶어 해서 학원을 보내 놨더니 몇 달 후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를 두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말이었다. 나는 그때 “아이가 가기 싫어하면 안 보내는 게 맞다.”라고 얘기했다. 덧붙여 “아이가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부모가 할 수 있는 한 기회를 주는 것이 좋다. 하지만 실제로 해봤더니 힘들고 잘 안 맞다고 한다면 과감하게 그만두게 하는 것도 용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소한의 설득은 필요하다.”라고 얘기했다.
부모로서 내 아이를 대하는 것은 교사일 수 없었나 보다. 계속 자식이 싫다고 하는 것도 억지로 시키는 모습을 보니 말이다.
수요일에 학습지 선생님이 오셔서 과제가 되어 있지 않으니 나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셨다. 그래서 솔직하게 하기 싫다고 하는 걸 억지로 시키고 싶지 않다고, 매일 예섬이와 학습지 문제로 관계가 틀어지는 것 같아서 힘들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께서도 아빠의 말에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으셨다. 그동안 나와 예섬이를 괴롭힌 학습지를 끊고 나니 속이 후련하다.
‘싫은 걸 하지 않는 게 이렇게 후련한 걸 왜 그리도 붙잡고 있었을까?’
하고 싶은 건 별별 이유를 들며 다 하지 말라고 해놓고 왜 꿈이 없냐고 묻는 부모나 되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