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글을 생각한다. 내가 쓸 글의 소재를 생각한다고 하는 게 맞겠다. 매일 삶을 살아내며 겪는 모든 것이 글의 소재였고 더 깊이 있게 생각했던 어느 한 가지를 정해 고민하고 생각을 정리한다. 분명한 것은 매일 글을 생각하며 내 삶을, 감정을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감정과 함께 하루를 살아가며 겪는 모든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
# 청소
하루에도 수 십 번 스치듯 안녕하는 내 감정을 대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때론 귀찮아서 감정을 덮어버리고 타인에 의해 흘러가는 상황에 맞추려 급하게 숨기곤 했었다. 시간이 지난 후 꺼내보면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몰라 불편한 느낌만 남아있었다.
내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 온 마음에 널브러져 있는데 그건 정리할 엄두가 나질 않으니 집안 어지러운 꼴을 보기 싫었나 보다. 그래도 물건은 제 있을 곳이 있어 거기에 넣어 두기만 하면 되고 바닥은 쓸고 닦기만 하면 깨끗해지니 말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마음을 정리하지 못해 집을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집을 정리하다 보니 내 마음도 정리되는 것을 느꼈다.
아무 생각 없이 물것이 있었던 자리에 다시 갖다 놓는 그 행위는 내 감정을 있어야 할 곳에 넣는 것과 같았다. 어지른 사람에 대한 분노와 함께 청소를 시작했지만 청소를 하며 오히려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 물건이 밖으로 나와 여기에 있어야 하는 이유도 알게 되고, 그 물건과 함께 얽힌 여러 가지 추억들도 소환된다. 딱히 기억에 남아있는 않는 물건이나 이제는 의미를 잃은 물건은 버려지기도 한다. 집이 정리되기 시작하면서 내 마음도 편안해졌다. 마음도 비슷했나 보다. 불필요한 것들은 마음속에서 버려지기도 하고 추억은 더 깊숙한 곳에 넣어두기도 한다. 영화 '인사이드아웃'처럼 말이다. 파도가 출렁이던 내 마음이 잔잔해지니 여러 군데에 떠있던 감정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 감정을 옮겨 적기
어떤 감정은 바다 위에 띄워놓은 부표처럼 선명하게 보여 쉽게 건져 올릴 수 있었지만 어떤 감정은 거센 파도처럼 마음을 휘몰아쳐 잠잠해지길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내 감정이지만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한참을 생각해야 했고 그것을 글로 옮기는 과정은 실로 험난했다.
내 감정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는 단어를 선택하고 나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아는 수많은 단어 중에 내 감정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왜 그렇게 떠오르지 않는 건지. 단어를 적었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컴퓨터와 씨름했다.
‘글은 엉덩이로 쓰는 것이라고 했던가?’
그 말이 맞다. 글을 쓰는 것은 오래 앉아 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길 바라는 것이었고 끊임없이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과정이었다.
때론 완성한 문장이 너무 마음에 들 때도 있었고
정리되지 않은 마음처럼 나조차 이해하기 힘든 문장도 있었다.
때론 잘 난 체하는 문장도 있었고
때론 나조차 부끄러워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 문장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나였고 글은 나를 객관화시켜 볼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다.
# 쓰다 보니
글을 쓰면서 내 지식의 부족함을 깨달았고 갈급함에 책을 읽었다. 책에서 좋은 문장을 메모하고 곱씹으니 조금씩 내 삶으로 문장이 스며드는 것을 느낀다. 그렇게 살아보려 노력하다 보니 그것이 내 감정이 되고, 삶에 투영되는 행위가 되어 다시 내 글로 쓰이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 쓰인 글은 다시 내 삶을 내가 쓴 글과 비슷한 방향으로 이끌고 가고 있는 것을 느낀다. 내가 악한 마음을 먹을 때마다 내가 쓴 글이 떠올라 흠칫 놀라 물러 서게 되는 나를 보며 다시 한번 글의 힘을 깨닫는다.
#나를 쓰니 다른 사람도 그리 보였다
나를 쓰다 보니 내 안에 수많은 감정들이 보였다. 그 감정을 외면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글을 쓰기 위해 내 감정과 마주하고 보니 수많은 내가 보인다. 글을 쓰며 용서하고 사과하고, 때론 위로하며 나를 인정하게 되었고 사랑하게 되었다. 나를 사랑하게 되니 비로소 다른 사람이 보인다.
‘당신도 그랬구나.’
‘너도 나처럼 수많은 감정 때문에 힘들었겠구나’
나를 쓰니 다른 사람도 또 하나의 나임을 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