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을 끝까지 보지 못한 이유
아들의 연기를 보기 위하여
스포일러 없습니다. (영화를 봤지만 본 게 아니라서요ㅠㅠ)
육아휴직을 하며 내가 꼭 해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조조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었다. 바로 어제,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 그 영화, 기생충의 개봉일이 바로 어제였다.
영화를 보러 가기 전 날, 아내가 말했다.
“자기야, 우리 기생충 같이 보러 가자.”
“난 내일 개봉하면 조조로 바로 보러 가려고.”
“그냥 나랑 같이 가면 안 돼?”
“난 내일 꼭 조조 보고 싶단 말이야. 자기랑도 또 보러 가면 되지.”
아내는 내 고집을 꺾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기다려온 버킷리스트였는지 아내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자기와도 또 보러 온다는 말에 마음도 조금 풀렸나 보다.
영화를 보러 가기로 한 날, 아내에겐 커피를 주고 유치원으로 보내고 아이들에게 계란 프라이를 해주고 등교를 시켰다. 예담이에게 뽀뽀를 하려 볼을 만졌는데 살짝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지만 컨디션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학교에 보냈다.
조조 영화는 10시에 시작했다. 여유롭게 집에서 준비하고 자전거를 타고 영화관으로 가기로 했다. 주차하기도 애매하고 자전거로 가도 여유 있게 도착할 거리였기 때문이었다. 조조영화인데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이라는 유명세 때문이었는지 사람들이 많이 붐볐다.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관람석은 거의 매진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를 보러 들어갔다. 기다리던 영화를 개봉일에 가장 먼저 볼 수 있다는 이 육아휴직의 달콤함은 불 꺼진 영화관만큼이나 내 앞에 어둡게 드리운 그림자를 보지 못하게 덮어버렸다.
영화는 정말 재미있고, 잔인하고, 슬펐다. 적어도 러닝 타임의 3분의 2까지는 말이다. 영화가 클라이맥스를 치닫고 있을 때쯤, 내 휴대폰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아내였다. 잠깐 아내에게 미안한 감정이 올라오다가 화가 났다.
‘영화 보고 있는 걸 알면서 감히 전화를?’
‘영화 중’
간단히 전화 통화를 거절하고 문자를 보냈다.
다시 문자가 왔다.
‘카드 배송 때문에… 우편함에 있어요.’
집으로 가서 찾으면 되니 별 일이 아니어서 다시 영화에 집중했다.
다시 휴대폰 진동이 울린다. 휴대폰을 끄려고 했는데 예담이 학교 전화번호가 뜬다. 그때부터 스크린에서 영화는 상영되고 있었지만 내용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 너무 불안했다. 영화는 나를 제외한 이 상영관에 있는 모든 사람만을 위한 것이 되어 버렸다. 갑자기 아침에 예담이 볼을 만질 때 살짝 뜨거웠던 기억이 나를 지배했다.
‘혹시 예담이가 열감기?’
휴대폰에 진동이 멈추질 않는다. 세 번인가 전화가 오다가 잠깐 멈추었는데
아내의 문자가 왔다.
‘예담이가 팔이 아프데. 학교에 전화해보고 조퇴시키던지 해요.’
‘예담이가 팔이 아프다고? 혹시 부러진 건가?’
별의별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그런데 예담이 담임선생님의 문자가 온다.
‘아버님~ 예담이 담임입니다. 예담이가 목에 담이 걸린 모양이에요. 종일 힘들어하더니 안 되겠는지 아버님께 전화했네요. 데리러 오신다고요. 예담이 짐 챙겨놓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병원이나 한의원 진료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목을 똑바로 세우 지를 못하네요.’
‘내가 데리러 간다고 했다고? 난 그런 말 한 적이 없는데… 혹시 아내가?’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 다시 전화가 온다. 도저히 상영관에 있을 수 없어. 밖으로 나왔다. 하필이면 제일 안쪽 좌석이라 옆에 앉아 관람하던 사람들의 눈초리를 큰 엉덩이로 받아내며 밖으로 나와 전화를 받았는데 예담이었다.
“아빠, 저 예담이에요. 목이 많이 아파요.”
“목이 따끔한 거야? 아니면 목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거야?”
“목이 한쪽으로 기울었는데 제대로 못 펴겠어요. 데리러 오면 안 돼요?”
“많이 아프니?”
“네”
“근데 아빠 어디예요?”
“아빠 잠깐 밖에 나와 있어.”
“아빠, 영화 보러 갔어요?”
“응…”
엄마랑 먼저 통화를 했는데 아빠가 영화를 보러 갔다고 했나 보다.
갑자기 영화를 보러 온 내가 잘못한 것 같아 미안해진다.
선생님께선 이미 아빠가 데리러 오는 걸로 알고 짐까지 다 싸놓고 계신다는데 예담이의 목소리를 들으니 이미 영화를 끝까지 보겠다는 빵빵했던 내 욕망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쭈그렁 방탱이가 되어버렸다.
“아빠가 데리러 갈게.”
“네, 빨리 와요.”
아빠는 빨리 갈 수가 없다. 아들아, 아빠는 자전거를 가져왔단다. 열심히 페달을 밟아 집으로 돌아와서 자전거를 주차하고 예담이 학교로 갔다. 예담이는 교실에서 단원평가를 보고 있었는데 고개를 한쪽으로 치우쳐 숙이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니 안 돼 보인다.
교실문을 노크하고 살짝 문을 열어 선생님을 봤다. 아이들도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놀이터에서 나랑 놀며 안면을 익힌 남자아이들은 반갑게 손까지 흔들어 반겨주었다. 애써 아이들의 눈을 외면하며 예담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예담아, 많이 아팠어?”
“네”
‘그런데 점점 왜 목이 바르게 펴지고 있을까?’ 뭔가 께름칙한 느낌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갑자기 유주얼 서스펙트의 마지막 장면인 카이저 소제의 걸음이 떠올랐다. 살짝 웃음기가 도는 예담이를 보고 나는 깨달았다.
‘예담이가 아빠를 보고 싶었구나.’ 아니
‘예담이가 아빠의 마음을 시험해보고 싶었구나.’
그런데 어쩌나. 아빠의 마음은 이제 분노로 가득 차 버렸다.
“예담아, 목이 많이 아파서 어쩌니? 한의원에 가서 침을 좀 맞아야 되겠는걸.”
“침이요?”
“목이 아픈 건 근육이 놀라서 그런 건데, 침을 맞으면 금방 나아질 거야.(아빠 마음도 조금 나아지겠지.)”
그렇게 발걸음이 느려진 예담이를 끌다시피 하여 한의원으로 데리고 갔다. 하필이면 도착한 시간이 12시 58분이다. 간호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점심시간이라 2시부터 진료를 볼 수 있는데 잠깐 침대에 누워계시겠어요? ”
예담이가 얘기했다.
“아빠, 그럼 나 침대에 누워서 잠깐만 핸드폰 하면 안 돼요?”
“그건 안 돼. 오늘은 휴대폰 하는 날 아니잖아.(암~ 절~~ 대로 안 되지)”
그렇게 예담이는 1시간을 침대에서 기다리다 진료를 받고 침도 맞고 집으로 왔다. 집으로 와서는 책을 보다 심심하니까 밖으로 나가서 놀고 싶다고 조른다.
“아빠, 나 밖에 나가서 놀면 안 돼요?”
“오늘 목이 아파서 조퇴까지 했는데 나가서 놀면 친구들이 꾀병 부렸다고 소문내지 않을까?”
이내 고개를 숙이고 다시 책을 본다. 나도 오늘 망친 이 기분을 잠으로나마 보충해야겠다며 잠을 자고 일어나 옆을 보니 예담이는 아직도 책을 보고 있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밖에 나가 놀고 있는 예섬이를 데리고 오라며 잠깐 자전거도 타고 갔다 와도 된다고 말해줬다. 신나게 밖으로 나가는 예담이.
10시가 다 되어 퇴근한 아내에게 오늘 일련의 사건에 대한 브리핑을 했더니 아내의 말이 더 가관이다.
“난 예담이 전화받고 그런 건 줄 알았는데. 자긴 몰랐어? 영화 혼자 본다고 하더니 벌 받은 거야.”
아침에 예담이에게 뽀뽀만 안 했어도…. 오늘은 예담이와 아내가 제대로 얄미운 날이다.
어쨌든 예담이의 연기는 배우 송강호의 연기를 압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