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외로웠나 봅니다

나 여기서 잘 지내요.

by gt

요즘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가장 많이 듣는 말은 한결같다.


“이제 얼마 안 남았네?”


다들 나 몰래 만나서 나에게 무슨 말을 할지 정한 것도 아닐 텐데 그리 똑같은 말을 하는지 신기하다.

사실 육아휴직을 하고 3개월이 지난 후, 몇 가지 이유로 나의 육아휴직 생활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이유는 경제적 쪼들림이었다.

3개월까지만 해도 아빠 보너스 제도로 인해 지난 월급에 비해 부족하긴 했지만 나름 비슷한 경제 활동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4개월 차로 접어들자 휴직 수당이 50만 원 대로 줄어 경제 살림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고마워할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이들은 학원 욕심이 없었고 돈을 써야 하는 놀이공간보다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노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육아 휴직 전 급하게 집을 사게 되고 인테리어를 하며 든 빚은 잊지 않고 우리 부부의 통장에서 돈을 인출해갔다. 그렇게 남은 돈으로 4인 가족이 전처럼 윤택한 생활을 지속할 가능성은 적어 보였고 실생활도 그러했다. 경제적 쪼들림은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과의 나의 관계를 더 깊이 되돌아보게 했고 선뜻 ‘오늘은 내가 살게.’하며 나서길 주저하게 되어 사람을 만나는 횟수도 줄어갔다. 그러다 보니 일주일에 한 번 사회인 야구를 같이 하는 동료 선생님들의 대화의 주제에도 쉽게 끼지 못하고 겉도는 듯한 느낌도 든다.


두 번째 이유는 불어난 뱃살이다.

육아휴직을 하며 살이 쪘다. 물론 일을 하지 않아 큰 스트레스도 없고 그만큼 행동반경도 줄어든 만큼의 지방이 내 몸에 축적된 결과다. 살이 찌면서 여러 가지 이상 증상이 발견되었다. 식탁에 앉을 때 뱃살이 접히지 못해 배 앞 쪽에 뭔가 보호대를 찬 느낌이라던지, 세수를 할 때 가슴이 출렁이는 께름칙한 느낌이 들기 시작한 거다.

‘그래도 집안 살림을 위해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널고 하는데 왜 집안일은 뱃살을 빼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거야?’

아내가 오늘 나에게 이런 말로 직격탄을 날리고 출근을 했다.

“당신은 출근할 때 멋졌던 것 같아.”

그 과거형의 말이 내 묵직한 뱃살을 때리고 지나갔다.

‘육아휴직을 시작하며 호기롭게 계획한 영어 공부, 운동 등이 내 뱃살에 파묻히는 동안 나는 뭘 했던가?’ 그나마 독서와 글쓰기는 꾸준히 하며 내면을 가꾸고 있었지만 많은 사람이 그렇듯 내면은 쉽게 보려 하지 않는다. 이미 뚱뚱해진 내 외면을 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그 걸 말해주고 있다.


세 번째 이유는

'그래서 외롭다.'

사실 난 외로움을 잘 견디는 편이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크게 즐기지 않고 관심받는 것도 싫어 조용히 지내는 것을 좋아한다.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것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잡생각도 많아졌다. 그중 가장 강하고 지속적으로 내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은 ‘내가 있던 공간에서, 함께 하던 직장 동료들이 내가 세상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가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직장에 있던 시절에는 나를 좀 가만히 놔두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는데 막상 가만히 놔두니 ‘이젠 나를 좀 기억해줘. 나 여기 있다.’고 하는 나의 이중성에 대해서 생각한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보았던 이효리의 ‘모순된 삶’이라는 글이 떠올랐다. 그중에서 ‘조용히 살고 싶지만 잊혀지긴 싫다.’는 구절에 요즈음의 내 마음이 비친다.

처음 육아휴직을 하고 며칠 뒤 어느 날, 우리 집 창문으로 맞은편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봤다. 그가 아이들과 지지고, 볶고, 웃는 그 시간이 내가 지금 쉬는 시간이라는 생각에 괜히 전지적 작가의 시점의 우월함으로 봤었다. 하지만 근래 그 운동장에서 교사와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내 심장도 조금씩 두근거리고 있다는 것을 느낀 어느 날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나도 이제 학교에 돌아가야 할 때가 왔구나!’

tv를 보고, 책을 읽고, 아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세상에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 세 가지 이유가 육아휴직의 가치를 결코 훼손할 수 없음을 안다. 육아휴직은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이유보다 훨씬 많은 이유로 나의 삶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으며 내 삶에 큰 전환점이 되고 있는 중이다. 다만 존재의 부재를 느끼니 존재함이 더 간절해졌을 뿐이다. 그래서 남은 육아휴직 기간 동안 이 공간에서 나의 존재의 존재함을 위한 시간을 더 가지길 소망하게 되었다. 물론 뱃살의 존재는 부재함으로 만들어야 할 듯 하지만 말이다.




때마침 교감 선생님의 연락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교감 선생님”

“잘 쉬시고 계신지요?”

“네~~~ 잘 쉬고 있는 중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복직 확인 차 연락드렸습니다. 9월에 복직하실 거죠?”

“네!! 복직하겠습니다.”

“복직을 간절히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호호호”


내 마음을 들킨 것 같다.

누군가에게 내 존재가 분명해진 것 같아 좋은 이 기분은 뭘까?

난 너무 이중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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