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plugged trip

Unplugged trip in Jeongdongjin

by gt



육아휴직 중 버킷리스트 중에서 나 홀로 2박 3일의 휴가여행이 있었다. 7월 초가 아내 대학원과 유치원 업무가 대충 마무리되는 시기여서 나 홀로 여행은 7월 초로 잡았다. 육아휴직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이들은 과연 어떻게 됐을까 걱정이 들 정도로 아내는 대학원과 유치원 업무로 주중에서 3일 이상 밤늦게 들어왔다. 아이들과 함께 있음에 즐거운 날이 훨씬 많았지만 그 즐거움조차도 아빠의 인내와 고뇌, 희생의 결과물이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래서 아내도 나의 여행에 군말 없이 동의했다.

여행을 준비하며 정한 한 가지 약속이 있었으니

‘나에 대해서만 생각하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자.’였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꽂아놓은 수많은 플러그를 뽑아야 했다. 스마트폰이 나의 일상을 차지하며 카페에 가도 여행을 가도 플러그가 내 마음에 안정을 주는 불편함을 느꼈다. 모든 것이 연결된 이 세상에서 무엇과 연결되지 않으면 불안한 우리는 무엇과 끊어질까 불안한 걸까? 하루에도 수 십 번씩 울려대는 스마트폰 알람의 편리함에 우리는 차마 못 본 척할 수 없는 불편함을 지불했다. 그런 불편한 연결을 하루라도 끊고 싶었다. 그래서 이 여행의 이름은 ‘Unplugged trip in Jeongdongjin’이 되었다.

2박 3일 동안 어디를 가면 좋을까 여러 장소를 고민했는데 결국엔 사회인 야구 동호회 일정과 겹치게 되어 1박 2일로 줄게 되었다. 그래서 정한 장소는 정동진이었다. 정동진은 대학교 시절 친했던 후배(아내가 오해할까 봐 밝힌다. 그 후배는 남자였다.)와 같이 겨울 바다와 해돋이가 보고 싶어 밤기차를 타고 갔었다. 지금도 15년 전 돈이 없어 1시간을 넘게 수산시장으로 걸어가 회를 사고 궁상맞게 길바닥에서 먹던 추억이 생생한 그곳. 절벽 위에 거대하게 걸쳐있던 크루즈 호텔. 가난이 밥처럼 일상이었던 내 청춘의 언덕에선 산 위의 거대한 성처럼 보여 겨울 바닷바람처럼 차갑게만 느껴졌었다. 가난해서 해보지 못한 게 많았지만 그래도 젊음이 있어 가능한 것이 많았던 그 시절의 정동진. 그 정동진에 다시 가보기로 했다.

밤 기차였지만 오전에 짐을 챙겨 집을 나왔다. 우선 데이터를 껐다. 생각보다 간단하게 연결이 끊겼다. 사실 모든 것이 그렇다. 행위를 결정하기 전엔 많은 고민과 두려움이 막아서지만 막상 해버리고 나면 그것은 다 허상이었음을 깨닫는다.


혼자 버스를 타고, 혼자 걸으며, 혼자 밥을 먹으며 생각한다. 혼자 여행할 때는 누군가와 함께 여행하는 것과는 다른 새로움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걷는다. 내 걷는 속도를 누군가에 맞출 필요도 없이 걷다가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멈추기도 하고 빨리 걷기도 했다. 걷다가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들어가 먹으며 온전히 나를 배려할 수 있다.

그렇게 걷다가 들른 곳이 만화방이었고 서점이었으며 영화관이었다. 오랜만에 시원한 만화방에서 보고 싶었던 미생을 봤고 서점에서 책도 보고 영화관에서 영화도 보았다. 그리고 밤늦게 기차를 탔다.


기차를 타고 나서야 걱정하고 있을 아내에게 연락을 했다. 아내도 내 마음을 아는지 방해하지 않으려 연락을 하지 않았다.

“어디예요?”

“기차에 잘 탔어요. 애들은?”

“애들은 자고 있어요. 예담이랑 예섬이가 아빠는 어디로 여행 갔냐고 물어봐서 기차 타고 해 보러 간다고 했는데 예섬이가 한 말이 진짜 웃긴 거 있죠?”

“뭐라고 했는데?”

“해는 여기서도 볼 수 있는데 왜 그렇게 멀리까지 가냐고 하지 뭐예요. 그리고 잠은 어디에서 자냐고 물어보길래 기차에서 잔다고 그랬더니 기차 호텔이 있냐고 그랬어요. 그래서 그냥 기차에서 잔다고 했더니 “아빠 많이 힘들겠다.” 그래요.”

그 말을 듣고 웃다가 아빠를 걱정해주는 아들의 마음에 참 고마웠다. 잘 다녀오겠다고 하고 아내와의 전화를 끊었다.

기차에서 가져온 책을 읽다가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어느새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져 있다. 정동진에 도착하니 새벽 4시 40분이다. 오늘 일출은 5시 8분이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15년 만에 다시 만난 정동진역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 도착해서 나는 15년 후배와 같이 있었던 그곳에 대해 기억을 더듬어 해변을 걸어갔다. 15년이란 시간 동안 강산은 두 번 정도 바뀐 나머지 예전 후배와 내가 앉았던 그 자리는 찾지 못했지만 그 비슷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여전히 크루즈 호텔은 절벽 위에서 위엄을 내뿜었지만 그 시절의 위압감은 아니었다.

대상은 대상화하는 주체에 따라 달라지는 것임을 느끼게해준 크루즈호텔

다행히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지평선부터 올라오는 태양은 남김없이 바라볼 수 있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장관이었다. 이 세상에 나와 태양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듯한 설렘. 오직 나만을 위해 비춰주고 있는 듯한 나의 태양. 짧조름한 냄새와 함께 한 없이 펼쳐진 바다 끝에서 올라오는 해와 집에서 보는 해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둘째 아들은 아직 알 나이가 아닌 것이다.

나만을 위했던 바로 그 태양

근처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온 사람들과 사진을 찍고 대화하며 웃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잠시 동안 내가 혼자 있음이 외롭게 느껴져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지만 이내 내려놓았다. 모래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 예전에 후배와 같이 봤던 큰 모래시계 조형물 앞에 섰다. 15년 전과 다름없이 육중한 크기로 세월을 버텨내며 천천히 모래를 흘러내려 보내고 있었다. 달라진 건 나였다.

가난한 대학 시절 후배와 함께 왔던 이 곳에서 산 위에 성처럼 버티던 크루즈 호텔. “저기는 누가 가서 잘까?” 추위에 떨며 부러워하던 나. 이젠 마음만 먹으면 하룻밤을 편하게 묵으며 침대 위에서 해돋이를 볼 수 있는 경제적 여유를 가졌으나 그때의 희망과 불안, 가난함 속에서도 여유로울 수 있었던 젊은 시절의 부요함은 결코 가지지 못함을 안다.



해돋이를 보고 주변을 산책하고 간단히 아침을 먹은 뒤, 8시 30분에 청량리로 가는 열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지만 참 평온했다. 집으로 무사히 돌아온 나를 반겨주는 아내와 아들이 있음이 감사했다. 잠깐 동안 나에게 주어진 여행의 마침표를 찍고 삶으로 돌아가지만 글이 그렇게 써지듯 내 삶도 새로운 문장으로 써 갈 것임을 어렴풋이 생각하며 피곤한 몸을 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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