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은 네발자전거부터 시작해서 그런지 나에게 두발자전거를 배운 지 2일 만에 혼자서 탔는데 예섬이는 두발자전거 대신 킥보드만 타길 고집했기에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밖에 나가서 놀 때면 또래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킥보드를 타던 예섬이 옆을 앞질러 지나갈 때 ‘조만간 아빠에게 자전거를 가르쳐달라고 하겠다.’고 생각했다.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보조 바퀴가 달린 자전거부터 시작할 거라 생각했는데 예섬이가 잡은 자전거는 형이 예전에 타다 작아서 세워두었던 두발자전거였다. 또래 친구들과의 배움의 차이가 이미 많이 벌어져있다는 것을 알아서였는지 마음이 조급해졌나 보다. 불안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던 아빠를 재촉하는 예섬이를 보며 걱정이 밀려왔다.
‘자전거를 처음 배우면 많이 넘어질 테고 앞선 욕심보다 배움의 속도가 느리면 짜증도 날 텐데 그 짜증을 받아내야 하는 상황을 잘 넘길 수 있을까?’
‘아들과 대판 싸우는 모습을 온 동네방네 보여주고 씩씩대며 집으로 돌아오게 되지는 않을까?’
하지만 막상 밖으로 나가보니 나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아들의 모습에 적지 않게 놀랐다.
몇 번이나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손잡이를 잡고 다시 페달에 발을 올리는 예섬이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는 게 지금의 너에게 가장 가치 있는 일이구나’ 하고 말이다.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몇 번이나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힘이 솟아나는 법이니까.
하지만 처음 두발자전거를 접한 아이가 혼자서 타는 게 쉽지는 않았다. 그렇게 몇십 번을 놀이터 주변을 돌고 우리는 지쳐서 다음 날에 다시 도전할 것을 약속하며 돌아왔다.
다음 날에도 학교에 갔다 오자마자 나를 끌고 나간다.
오늘은 자전거를 탈 때 핵심 운전 방법을 알려주기로 했다.
“자전거를 타면서 페달에 신경 쓰다 보면 앞을 볼 수 없으니까 위험해. 멀리 봐야 그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거야.”
“응, 멀리 볼게.”
“장애물이 있으면 핸들을 급하게 돌리거나 다리를 내려서 세우려고 하지 말고 브레이크를 잡으면 천천히 멈추니까 브레이크를 잡아.”
그렇게 몇 번을 해보더니 이내 브레이크를 익힌다.
“자전거는 기울어지는 쪽으로 더 핸들을 돌려야 쓰러지지 않는 거야.”
“아빠 그렇게 하면 속도가 더 빨라져서 무서워.”
“그 걸 이겨내야 자전거를 잘 탈 수 있어. 지금은 아빠가 잡고 있으니까 익숙해질 때까지 해봐.”
그러다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화단으로 처박혀 넘어졌다. 자전거 안장 앞부분에 똥꼬가 찔렸나 보다.
“아빠, 똥꼬가 너무 아파. 병원 가야 하는 거 아냐?”
“괜찮아, 똥꼬가 놀라서 그런 거야. 자전거가 똥집 했다고 생각해. 아빠가 주물러 줄게 ”
“이제 괜찮아졌어. 다시 타볼래.”
놀이터 주변에서 자전거를 타던 형들도, 산책을 나오셨던 할아버지도 놀이터에서 놀던 많은 아이들도 예섬이의 도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작은 꼬마의 도전을 응원해준 많은 사람들에게 힘을 얻었는지 예섬이는 넘어질 때마다 주문처럼 되뇌었다.
“다시 해 볼 거야. 나는 잘 탈 수 있어.”
그렇게 한 시간 남짓 허리가 끊어질 듯한 고통을 이겨내며 자전거를 잡고 따라다니니 나름 자전거 속도를 즐기는 듯했다. 그래서 슬며시 잡고 있는 손에 힘을 빼 봤는데. 자전거는 예섬이의 힘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이젠 손을 잡고 가다가 완전히 놓아 봤는데 처음엔 5m, 다음엔 10m, 점점 저 멀리까지 혼자서 잘 간다. 내가 손을 놓은 자리에 서 있는데 저만치 멀리 가서는 브레이크를 잡고 놀란 눈으로 돌아보는 예섬이를 보며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지켜보던 사람들도 박수를 쳐주며 같이 기뻐했다. 그 순간만큼은 온 우주가 예섬이의 두발자전거 타기 도전을 응원하는 것 같았다.
‘이제 예섬이는 혼자서 두발자전거를 탈 줄 안다.’
이 사실이 정말 기쁘면서도 혼자서 저만치 자전거를 타고 가는 예섬이를 보며 복잡한 감정이 불쑥 올라와 울컥했다.
‘이제 아빠가 아들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게 별로 남아있지 않다는 아쉬움 같은 감정이었을까?’
아들아, 멀리 보고 가면 조금은 둘러 가더라도 언젠가는 그 방향으로 가게 되더라.
때로는 네가 의도하지 않은 쪽으로 가기도 하겠지만 억지로 반대로 가려고 하다 보면 넘어질 때도 있겠지.
그땐 핸들을 그쪽으로 돌려서 가보렴.
너 자신을 잃지 않으면 다시 돌아 나올 수 있을 거야.
가끔은 삶의 속도를 느끼며 달려보기도 하고 천천히 주변의 아름다운 것도 둘러보며 천천히 속도를 줄여보렴.
때론 부딪히고 넘어져 똥꼬가 찢어질 듯 아플 때도 있겠지.
그럼 잠깐 쉬었다 가렴.
너에겐 너만의 브레이크가 있으니까.
아빠가 지금처럼 뒤에서 네가 살아갈 모든 삶을 응원하고 있을게.
어쩌면 자전거는 인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첨부 : 어제 자전거 타는 모습을 엄마에게 자랑하자고 했더니 퇴근한 아내를 예섬이가 불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