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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t Jun 05. 2019

아이의 가방에서 쓰레기를 꺼내며

쓰레기 그냥 바닥에 버릴 거야


오늘 아침, 오랜만에 아들의 보조 가방을 정리했다. 가방 안에서 아이스크림 막대, 요구르트병 등 쓰레기가 쏟아져 나온다. 작은 웃음이 지어졌다. 아들이 대견했다. 꽤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예전에 예담이가 4살 정도 되었을 때, 예섬이를 유모차에 태워 산책을 나간 적이 있었다. 유모차 아래에는 짐을 실을 수 있게 짐칸이 있었는데 산책을 가는 길 중간에 쓰레기가 떨어져 있었다.

예담이는 쓰레기를 주워 유모차 짐칸에 모으기 시작했다. 산책이 쓰레기 수거 작업으로 바뀌었다. 줍고 보니 짐칸이 금방 채워졌다. 나와 아내는 예담이를 칭찬해주었고 우리 가족은 나름 뿌듯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온 기억이 있다.

그 후, 모든 상황에서 그러지는 못했지만 엘리베이터, 놀이터 벤치 등등 주울 수 있는 상황이면 쓰레기를 주웠고 예섬이도 예담이와 부모의 모습을 보고 따라 한다. 한 번은 아이들에게 이런 얘기를 해줬던 것 같다.

“아빠가 어릴 때, 학교에서 쓰레기를 주웠던 경험이 있어서 길을 가다가 쓰레기를 주워 주머니에 넣어 갔어. 어머니께서 아빠 옷을 빨 때 주머니에서 쓰레기가 나왔나 봐. 그런데 쓰레기를 길에 버리지 않고 가지고 왔다고 칭찬을 해주셨어. 아빠는 그때부터 쓰레기를 주머니에 넣는 습관이 생겼단다. 지금도 봐봐. 주머니에서 쓰레기가 나오지?”     

만약 내 어머니께서 “더럽게 쓰레기를 왜 주머니에 넣고 다니냐”라고 꾸짖으셨다면 나는 이 습관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을까? 어머니의 교육 방식에 참 감사하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다 보니 쓰레기를 버리는 문제에 대해 지도한 적이 있다. 아이들에게도 아들에게 했던 얘기를 그대로 들려준 적이 있었는데 한 아이는 솔직하게도 부모님이 한 말을 그대로 옮겨 말했다.

“선생님, 저도 언젠가 쓰레기를 주우려고 했는데 엄마가 더럽다고 줍지 말라고 했어요.”

사실 그 말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이들에게 교육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주 학부모님께 써 보내는 학부모 편지에 이렇게 써서 보냈다.   

   


아이들과 생활하다 보면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을 봅니다. 사실 저의 모습이기도 하겠지요.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자는 내용을 배우고 실천다짐을 한 다음 시간, 책상 위의 쓰레기를 아무렇지 않게 바닥에 버리는 것도 모자라 다른 사람의 자리로 멀리 던져버리는 아이들, 청소 시간에 빗자루로 다른 사람의 자리로 쓸어 보내고 있는 아이와 눈이 마주치면 괜히 서로 민망해지기도 하고요.

 수업 시간에 학교에서라도 가다가 쓰레기가 있으면 주워서 버리자고 얘기하면 “우리 엄마 가요, 더럽다고 그런 거 줍지 말래요.”라고 얘기하면 저도 머쓱해집니다. 우리가 받은 교육과 다른 여러 상황에 노출되면서 우리는 점점 무뎌져만 갑니다. 내가 배운 것을 실천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몸을 가치 있는 일을 향해 움직이는 것은 귀찮고, 힘듦을 수반하기 때문이겠지요.

 제 꿈은 작고 아담한 전원주택에 살며 작은 텃밭도 가꾸고 봄, 가을이 되면 산으로 난 흙길도 산책하며 사는 것이지만 막상 그렇게 살려고 생각하면 마트, 병원, 편의점, 쓰레기 분리수거 등 지금의 편하고 안락한 아파트 생활을 잊어야 하지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 내면은 그렇게 전원주택에 살고 있는 제 이미지를 만들어 놓고 좋아한 것이지 실제의 전원주택 생활을 좋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부끄러운 제 고백입니다. 뜬금없지만 비슷한 맥락인 것 같아요. 그래도 그런 착한 일(복도에 떨어져 있는 쓰레기를 줍거나, 인사를 하거나, 이웃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는 등의 일)을 하면 가슴이 따뜻해지지 않더냐고 물었더니 몇몇 아이들이 그렇다고 하더군요. 상대방은 어떨까? 물었더니 그 사람도 가슴이 따뜻해질 것 같다고 얘기하고요. 그럼 우리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어보자고 했습니다.

 교사가 되어 간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하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아이들에게 말한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참 어렵네요. 제가 말한 것의 반만큼만 살면 좋겠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아이들은 더욱 그렇다. 너무나 쉽게 자기가 먹던 아이스크림 포장지를 바닥에 버리는 아이들을 두 아들과 같이 보며 말없이 가서 주워 든다.

“아빠, 왜 쓰레기를 바닥에 버릴까? 주머니에 넣으면 되는데.”라고 말하는 아들의 말에 고개만 끄덕인다.     

 

아들은 아빠가 가장 실망할 행동이 무엇인지 아나보다. 어제는 매일 아빠랑 하는 한글 공부를 안 하려고 해서 혼을 냈는데 아빠 마음을 아프게 할 생각이었는지 이렇게 얘기했다.


“나 이제 아빠 말 안 들을 거야. 쓰레기 그냥 바닥에 버릴 거야.”      


오늘 아침에 아이 가방에서 나온 쓰레기를 정리하면서 갑자기 어제 예섬이가 한 그 말이 떠올라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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