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다툼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집안일 분담(육아 포함)에 관한 것이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전통적인 가정 불화의 이유인 것은 분명하다. 집안일을 좀 더 많이 담당하는 쪽은 처음엔 좋은 의도로 시작했다.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니까 아침을 차려줘야지’
‘내가 아침잠이 없으니까 일찍 일어난 아이들 밥을 차려줘야지’
‘집이 지저분해 보이네, 내가 먼저 청소해야지’
이런 류의 좋은 의도로 시작한 집안일은 점차 상대방에게 권리로 작용하는 것을 느낀 순간부터 속에서 짜증이 생겨난다. 처음엔 고마워하던 사람이 점점 그 배려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나서부터 ‘왜 나만?’이란 생각이 내 속에서 증식하기 시작한다. 그때부터는 불편한 마음 가득 안고 내 온 맘과 몸은 싸움 준비태세다.
보통 싸움은 내 안에서부터 시작한다. 빨래를 널며, 마른빨래를 개서 옷장에 집어넣으면서, 음식을 하고 있는데 식탁 정리를 하지 않고 소파에 누워서 스마트폰을 보거나 tv를 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내 속에선 이미 그 사람과 싸움이 시작된다.
차라리 바빠서 늦는다고 집에 없기라도 하면 기분이 이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았을 거다. 눈에 보이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더 짜증 나는 법이다. 짜증이 풍선처럼 내 속을 빵빵하게 채울 무렵 뭐라도 하나 얻어걸리면 ‘펑’하고 터지고 만다. 폭풍처럼 가족들에게 소리를 지른 뒤, 영문을 몰라 어디서부터 사과를 해야 하는지 헤매고 있는 아내와 자식들을 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죄책감들로 2차 짜증 폭발...
주부가 된다는 건 괜한 자책만 늘어나는 것 같다. 바깥일을 하는 사람이 집에 올 시간이 되면 마음이 분주해진다. 괜히 집이 더러운 것 같고, 설거지통에 설거지거리가 있으면 안 될 것 같고, 정리 안 된 아이들 방을 보고 아이들을 닦달하게 된다. 집안일은 왜 그리도 끝이 없는지, 하면 할수록 노동력은 저하되고 생산성 제로에 수렴하는지. 결국엔 집안일을 제대로 못했다는 자책이 들어 우울함이 극에 치닫고 있을 무렵 열심히 치운 것은 봐주지 않고 한 가지 못한 일에 대해 바깥일을 하고 온 사람에게 타박을 받게 되면 모든 것에 손을 놓고 싶어 진다.
주부로서, 중년 남자로서의 쓸모에 대해 좌절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울함은 깊어진다. 그래서 책을 읽는다. 나만의 생각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집에 혼자 있는 시간에 집을 깨끗이 정리하고 나면,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점이다. 그 시간에 책을 본다. 요즘은 <쓸모 인류>라는 책이 나의 상황과 어울리는 것 같아 골랐다. 이 책의 작가인 강승민 씨는 40대 중반의 어른이지만 아직도 흔들리는 자신의 모습에 마음이 헛헛해진 어느 때, 빈센트라는 한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삶에 많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작가는 ‘돌아보면 잘 산다는 것과 인간으로서의 쓸모에 대해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없다. 내가 만든 시간이 아니라 사회가 내민 시간표가 압박했다. 그 압박 속에서 성적을 올리느라 잠은 줄였지만, 정작 나의 쓸모를 찾느라 불면의 밤을 보낸 적이 없다.’고 고백한다. 쓸모없는 어른인 것 같아 더 자신을 채찍질하는 나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작가가 만난 빈센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실행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과 타인에 대한 매너’라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정한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고 하다 보면 분명 좌절하는 때가 온다. 그땐 타격이 크다.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내가 진정으로 뭘 원하는지 내 안으로 귀를 기울여 보아야 한다. 시간이 없다는 변명에 빈센트는 이렇게 대답한다.
“인간에게 시간은 늘 부족했어. 아버지 세대를 생각해봐. 당신들은 시간이 많았을까? 자식 키우기 위해 뼈 빠지게 일하느라 편하게 담배 한 대 피울 시간이 없었어.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이란 늘 그런 거야. 거기 휩쓸리느냐, 마느냐의 차이겠지. 사실 지금은 옛날보다 시간이 많아졌어. 노동의 시대가 지났으니까. 기계화와 인터넷 시대가 됐다는 건 그만큼 인간이 쓸 수 있는 시간이 늘었다는 거야. 그런데 이상하지? 요즘 사람들은 더 여유가 없잖아. 분명 시간이 많아질 기회였는데, 우리가 그 반대의 방향, 즉 조급한 쪽을 선택해서 그런 거야.”
빈센트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내는 빈센트가 하는 요리를 먹는 즐거움을 누린다. 지금 감정 상태인 나는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왠지 손해 보는 느낌이랄까? 빈센트의 대답은 이러했다.
"난 누군가를 위해 일부러 요리를 한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어. 그냥 나와 가족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자체가 즐거울 뿐이야. 전날 술을 잔뜩 마셔 만취했다고 해. 다음 날 속이 쓰릴 테고, 속풀이 해장국이 생각날 거 아냐. 그럴 때 누군가 직접 해장국을 만들어준다고 생각해봐. 어때? 감동 아냐. 바로 그 순간, 나는 누군가의 영웅이 되는 거야. 영화 <킹 아더>를 보면 이런 장면이 있어. 아더 왕이 라운드 테이블에 모인 사람들에게 이런 대사를 해. 'In serving each other, we become free! -서로에게 봉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우리는 더 당당할 수 있어!" 내겐 요리가 그래. 음식으로 남을 즐겁게 할 수 있어. 요리를 통해 내 삶은 더 당당할 수 있는 거야."
다시 나의 시간을 생각한다. 주부로서의 시간 말이다. 주부로서, 육아휴직을 한 30대 후반 남자인 나의 쓸모는 무엇일까? 이 시간이 나에게 어쩔 수 없이 주어졌다는 생각보다 이 시간에 가장 쓸모 있는 내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건 어떨까?
어쩔 수 없이 요리하기보다 나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가장 맛있게 요리를 하기 위해 신선한 재료를 구입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
내가 요리하는 동안에 상대방이 불편하지 않게 온전히 쉴 수 있도록 배려하고 그 반대의 상황에서 나의 쉼을 정당하게 요구하는 것.
‘오늘은 뭘 사야 행복할까?’ 고민하는 것보다 ‘오늘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를 고민하는 것.
TV 프로그램,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인 연예인 걱정, 진짜 삶을 철저히 숨긴 SNS 같은 남들이 만든 시간에 휩쓸리지 말고 나를 위한 시간을 쓰는 것.
나를 쓸모 있는 어른으로 만드는, 내 삶에 대해서 내가 당당할 수 있게 하는 가장 소중한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