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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t Oct 31. 2019

학부모 알림장 6호

안녕하십니까? 3학년 6반 담임입니다. 글쓰기를 하는 습관을 기르기 위해 수요일과 금요일 아침 활동 시간에 하기로 했습니다.(물론 집에서 따로 시간을 내어 써오면 더 좋습니다.)

아직 글쓰기 공책도 없어서 배움 정리 공책에 써서 제출하는 아이도 있는데 글쓰기 공책을 꼭 따로 사서 꾸준히 쓸 수 있도록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아이들이 글쓰기를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학교에서 지도를 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지도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1. 하루에 있었던 일 중에서 마음에 남아있는 한 가지 일을 정하기

2. 머릿속에서 다시 떠올려보며 학교에서 배운 감각적 표현을 살려 눈으로 보듯이 적어보기

3. 누군가, 내가 한 말을 쓸 때는 그대로 옮겨 적기

4. 글을 쓰는 주제로 좋은 일들 – 나의 고민, 억울한 일, 속상한 일, 화난 일, 싸운 일, 설레는 일, 자랑하고 싶은 일, 등등이 감정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혹시 아이들의 글을 읽으시면서 맞춤법이나 문법이 맞지 않는 부분이 보여도 고쳐주지 마세요. 중요한 것은 맞춤법이 아니라 아이들의 다양한 표현력입니다.

아이들이 자주 틀리는 말은 정리해서 가르치려고 합니다.

글쓰기를 지도하면서 아이들의 글을 보며 아쉬운 마음에 자꾸 가르치려 하는 제 모습을 봅니다.

제 욕심이겠지요. 그것이 행여나 아이들이 글을 쓰는 행위에 거부감이 생기게 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되고요. 한 편으로는 글을 쓰며 감정을 정리하고 무엇인가에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위안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도 있어 조바심을 내기도 합니다. 교육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지만 교육에는 참 정답이 없어서 어렵고 힘듭니다. 아이들 마음이 다치지 않게 가르치는 것에 더 노력해야겠습니다.      


요즘 온 책 읽기로‘한밤중 달빛식당’을 조금씩 읽으며 글을 요약하는 활동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글을 읽고 내용을 요약하는 것은 이제 익숙해져서 곧 잘합니다. 지난주에는 나쁜 기억을 잊으면 행복해질까? 잊지 않는 게 좋을까?’라는 주제로 간단한 방식의 토론을 진행했습니다. 토론 주제를 제시하고 곧바로 두 가지 생각 중에서 한 가지 생각을 정해 손을 들게 한 뒤 자신의 생각을 적어 서로 설득을 하고 토론이 끝나고 다시 손을 들게 하고 마무리하는 활동입니다.

처음에 손을 들었을 때는 아이들의 생각이 5대 21로 나뉘었습니다.

나쁜 기억을 잊으면 행복해진다.’쪽의 의견은 (5명)

“나쁜 기억을 잊으면 좋은 기억만 남아있기 때문에 행복해질 수 있다.”

“슬픈 기억은 떠오르면 계속 슬퍼지기 때문에 잊으면 좋다.”가 대표적인 논리였고


나쁜 기억을 잊지 않는 게 좋다’쪽의 의견은(21명)

“나쁜 기억도 그 일 덕분에 깨달음을 줄 수 있다.”

“잘못해서 부끄러웠던 기억을 잊지 않아야 다음에 똑같은 잘못을 하지 않을 수 있다.”가 대표적인 논리였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주장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하기 위해 여러 예를 들었고 토론이 끝나고 다시 손을 들어서 확인해봤더니 나쁜 기억을 잊지 않는 게 좋다쪽의 주장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처음에 자신이 정했던 주장을 아무도 바꾸지는 않았습니다.

예전에는 ‘나쁜 기억을 잊지 않으면 좋다.’란 주장에 저도 기울었겠지만 요즘은 조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악플에 의한 마음의 상처로 힘들어하던 가수이자 배우인 한 여성의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만일 악플 때문에 받은 상처를 그녀가 두 잊을 수 있었더라면 그렇게 모질게 삶을 도려내진 않았을 테지요.

 끝까지 ‘나쁜 기억을 잊으면 행복해진다.’란 자신의 처음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5명의 아이들의 심정도 이해가 갑니다.

 토론에 많은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친구들이 주장하는 얘기를 잘 들으며 각자의 생각이 많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책에서 주인공 연우가 나쁜 기억을 팔면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그것에 대해 고민할 때 여우가 선택은 당신의 몫이라고 한 말이 생각납니다.

아이들은 어떤 기억을 가지고 어떻게 성장해갈까요?

선택은 아이들의 몫이겠지요.

우리들은 아이들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어떤 말로 도와줄 수 있을까요?  

     

잠시 제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지금과 마음의 상태가 너무나도 달랐던 예전의 제가 지향했던 모습은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착하다는 이야기가 듣기 좋았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상처되는 말을 들어도 참았고,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감정을 숨겼습니다.

하지만 감정이 잘 숨겨지지는 않더군요.

마음으로 계속 상처 준 사람과 다투고 있는 제가 한심하기도 했습니다.

 한 번은 말을 너무 듣지 않는 아이가 있어서 너무 힘든 적이 있었는데

그 아이를 훈육하는 도중에 그 아이를 마구 때리는 상상을 하는 저와 마주했습니다.

마음에 병이 난 것 같았습니다.

 '교사를 그만둬야하나?'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그제야 제 마음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자신에게 왜 그랬을까요.

저는 너무 단점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뒷머리는 흰머리였고, 손과 발에는 땀이 너무 많이 나는 다한증이라 항상 발 냄새에 민감해졌고 누군가와 손을 잡을 일이 생길까 항상 손수건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말을 심하게 더듬어서 정말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말을 걸지도하지도 않았습니다.

대인기피증도 생겼고요.

저에겐 나쁜 기억입니다.

사춘기 시절엔 너무나 감정이 예민해져서 많이 울었던 것 같습니다.

그 기억을 잊고 매일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제 단점을 좋은 사람이라는 칭찬으로 감추고 싶었나 봅니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저는 제가 정말 하고 싶은 것, 말하고 싶은 것, 거절하고 싶은 것을 참는 것, 화를 내야 할 때 내지 못해서 마음에 병이 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해야 행복한지 모르고 살아온 것이 아닐까?

 제가 그렇게도 좋은 사람에 집착하게 된 이유가 제 깊숙이 자리 잡은 단점에 대한 상처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너무 안쓰러웠습니다.

자신을 다그치며 비난하던 말들을 걷어내고 가만히 마음 속을 들여다보니 웅크린 채 숨어있던 어린 내가 있었습니다. 힘들게 버텨준 저를 진정으로 위로해주고 싶었습니다.

그 누구보다 저를 사랑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좋은 사람이 되기보다 내가 먼저 행복하고 나와 함께 다른 사람도 행복할 수 있는 좋은 선택을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그제야 마음이 참 평온해졌습니다.

제 마음이 평온해지니 아이들을 대하는 제 모습도 달라졌습니다.

제 마음을 돌보니 이상하게도 다른 사람의 마음도 더 잘 헤아리게 됩니다.

단점인 줄 알았던 제 예민한 감정이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제 나쁜 기억을 대하려 선택한 방법이 저를 더 아프게 했지만 멀리 둘러 와 보니 그 선택도 지금의 저를 있게 한 소중한 나입니다.      

며칠 전 아이들이 말한 것이 떠오릅니다.

“왜 선생님은 화를 안 내요?”

그 아이의 말에

"화를 내지 않고도 충분히 좋은 선택은 많아." 하고 웃었습니다.

아이들 얘기를 듣고 ‘내가 이젠 정말 평온해졌구나.’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을 잘 가르치고 돌보려면 제 마음부터 돌보아야 함을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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