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육아휴직 중
막내가 겁에 질린 듯 나에게 달려오며 나를 벽 삼아 숨는다.
“아빠, 형이 때려요.”
“왜?”
“태권도 띠 가지고 놀다가 형 눈에 맞았어요.”
뒤따라오던 예담이가 울면서 소리를 지른다.
“예섬이가 진짜 세게 띠를 휘둘렀단 말이에요.”
그렇다. 여기는 아들 둘 있는 집이었다.
이런 상황은 아들 둘 키우는 집에서 아주 일상적인 모습이다.
보통 나이 어린 남자아이들의 싸움은 놀이에서 시작한다.
주로 몸으로 하는 놀이를 즐겨하는 남자아이들의 싸우게 되는 과정은 이렇다.
① 상대방의 몸 건드리기(대개 손으로 시작하지만 주변의 다양한 물건을 활용하기도 한다.)
② 힘겨루기(물건을 들었을 경우 휘두르며 서로의 용기를 견주어 본다.)
③ 힘의 강약 조절 또는 타격 부위 조절 실패로 인한 감정 손상
④ 싸움 시작 또는 놀이 끝.
보통 이런 일이 반복되면 나도 슬슬 짜증이 밀려온다.
아이들의 싸움을 해결하는 방법은 쉬운 방법과 힘들고 인내심이 필요한 방법이 있다.
쉬운 방법은 소리 지르기이다.
아빠의 복식 호흡에서 나오는 샤우팅은 남자아이들이지만 얼어붙게 만든다.
하지만 이 방법은 행동을 멈추게 하는 데는 효과가 있지만 감정 조절에 실패하면 아이들이 자는 모습을 보며 눈물로 속죄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물론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지 못해 해결하지도 못한다.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속상하고 문제가 해결되지 못해 답답하다.
힘들고 인내심이 필요한 방법은 우선 끓어오르는 화를 참고 아이들을 불러 앉게 한다.
상대방 때문에 어떤 점이 속상한지 물어본다.
그 말에 충분히 공감해준다.
내가 상대방에게 잘못한 행동이나 말을 무엇인지 물어본다.
잘못을 얘기할 때는 바로 훈계하지 말고 그냥 들어준다.
자기들도 다 아는데 부모가 2절까지 하면 더 열 받는다.
어떻게 하면 자신의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지 물어보고 얘기를 들어준다.
또는 상대방이 어떻게 해주면 좋을지 얘기하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대방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한다.
바른 방법이 무엇인지는 분명히 알고 있지만 내 몸과 마음 상태에 따라 아이들을 훈육하는 방법을 달리 선택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할 뿐이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데 예섬이는 형에게 사과를 했는데 받아주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며 식탁으로 왔다.
예담이를 불러 물어보니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동생이 자기 스마트폰을 해서
정작 자기가 사용할 시간이 줄었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순간적으로
“이럴 거면 주말에도 스마트폰 하지 마!” 하고 말할 뻔했다.
예담이는 속상했는지 속에 담아놨던 이야기를 쏟아냈다.
다행이었다. 아이가 입을 닫는 건 한 순간이다.
“예섬이가 너무 미워요.”
“세게 때리고 싶은데 엄마, 아빠가 있으면 못 때리게 하니까 너무 짜증이 나요.”
“이따 저녁 먹고 예섬이 괴롭히는 그림을 그릴 거예요.”
요즘 부쩍 동생을 미워하는 예담이를 보니 스마트폰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예담아, 미움이 네 마음을 잡아먹게 그냥 두면 안 돼.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면 그 사람이나 부모님한테 얘기를 해서 내보내야 하는데 미움을 그냥 두면 처음에는 작았다가 야금야금 네 마음 전체를 먹어버리는 거야.
그래서 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밖에 안 남아.”
예담이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아빠도 예전에는 쉽게 짜증을 내는 예섬이가 너무 미웠어.
그 미워하는 마음이 너무 커져서 잘못한 게 있잖아.
그 일로 예섬이에게 사과한 뒤로 예섬이를 이해하려고 하니까 별로 안 미워지더라.
아빠가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게 너무 싫었거든. 너도 미워하는 게 힘들지?
방에 들어가서 마음 좀 정리하고 나와서 밥 먹을래?”
엎드려있던 예담이는 고개를 흔든다. 마음이 좀 풀렸나 보다.
“이 순두부찌개 진짜 맛있다. 스트레스받을 땐 매운 게 최고지.”
“그럼 이따가 라면 끓여주세요.” 예담이가 말했다.
“그건 안 돼!” 나는 단 칼에 거절했다.
그래도 예담이를 최고 사랑한다는 엄마가 말했다.
“그래, 예담아 밥 먹고 이따가 배고프면 라면 끓여줄게.”
저녁 먹고 나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잘 노는 두 아들.
밉다가도 다행이다.
“아빠, 예담이 형아 가요.” 예섬이가 또 뛰어 온다.
“일러라. 일러라. 일름보!” 예담이가 소리친다.
이것들이 또 시작이다.
이제 못 참는다.
“야, 너네 좀 떨어져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