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함은 나의 것

아빠는 육아휴직 중

by gt

입학식을 이틀 남겨두고 알았다.

새 학기 학교 준비물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학식 이틀 전, 외종질 생일을 겸해 처갓댁 식구들과 식사자리를 했다.

외종질이 유치원을 입학하게 되어서 여러 가지 준비물을 다 챙겨놨다는 얘기를 했다.

그 말과 동시에 아내와 나는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다.

혹시 내가 잊은 사이에 서로가 준비했을지도 모른다는 간절함으로...

그 간절함은 곧 서로를 원망하는 눈빛으로 바뀌었다.

“선생님이...” 옆에 있던 처남은 차마 뒷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게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예비 소집일에 나눠준 서류뭉치를 찾아 새 학기 준비물을 찾아보고선 한 시름 놓았다.

입학식 날 담임선생님께서 새 학기 준비물을 상세히 알려주신다는 그 문장이 어찌나 고맙던지.

“그래 가지고 육아휴직 제대로 하겠어?”

아내의 말이 내 뒤통수를 간질거렸다.

입학식 전 날 어제의 실수를 만회하리라 다짐한 나는 초저녁부터 입학식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이리저리 분주하다.

‘옷은 뭘 입히지?’

‘교실은 어떻게 알려주지?’

‘10시에 입학식이니까 형이랑 같이 등교해서 학교를 둘러볼까?’

‘내일부터 방과후학교(특기적성) 수업이 있는데 준비물은 다 챙겼나?’

‘방과후학교 교실은 어디지?’

방과후학교가 끝나고 나면 아이가 교문으로 나오는 길을 못 찾을 텐데 교실 앞에 있을까?‘

수없이 내일을 시뮬레이션하며 좁은 집구석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입학생 준비 서류에서 본 입학을 하는 아이와 대화를 하며 초등학교 입학에 대한 마음을 준비시켜 주시길 바란다는 글이 떠올랐다.

선생님이 출석을 부르면 대답을 크게 하도록 지도를 부탁드린다는 말도 있었다.

학부모가 되니 선생님 말씀은 무조건 잘 들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우리 아이가 선생님께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에 온 신경이 쓰였다.

‘첫날부터 선생님 눈 밖에 나면 안 된다.’

부모로서 입학식 첫날 가진 가장 큰 두려움이었다.


15년 차 교사인 나는 개학 첫날 아이들과 만나 하루 수업을 하다 보면 아이들을 대충 파악한다.

개구쟁이 아이, 쑥스러움이 많은 아이, 적극적인 아이, 얌전한 아이, 소극적인 아이 등

난 그중 개구쟁이 아이에 가장 마음을 쏟았다.

왜냐하면 개구쟁이 아이들의 성향은 워낙 다양하고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3월에는 생활 지도를 주로 개구쟁이 아이들에 맞췄다.

개구쟁이 아이들을 지도하는 데 있어서는 주변 환경에서부터 순간의 감정의 변화까지 돌아봐야 이해가 가능했다. 그래서 3월에는 마음이 많이 분주했다.

마음이 분주하다 보면 예민해진 내 감정을 아이들에게 나도 모르게 드러내곤 했다.

내 경험에 비추어 내 아들이 교사의 마음에 부담이 되는 모습일까 걱정이 되나 보다.


자기 전에 누워 둘째와 초등학교에 대해 얘기를 나누며 연습을 해봤다.

괜히 첫째가 분위기를 잡으며 겁을 주려고 하길래 눈을 흘기며 옆구리를 찔렀다.

“예섬아, 내일 선생님이 아이들 이름을 다 부르실 거래.”

“선생님이 내 이름을 알아?”

“물론이지, 선생님은 모르는 게 없으셔”

“와, 대단하다. 근데 아빠도 선생님인데 왜 아빠는 모르는 게 많아?”

“어허, 아빠는 모르는 척한 거야. 네가 스스로 알게 하려고”

“아, 그렇구나.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면 어떻게 하면 돼?”

“큰 소리로 네! 하고 선생님을 쳐다봐. 노려보진 말고.”

“조예섬”

“네!”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얼굴이다.

“와, 씩씩하다. 됐어. 충분해. 이제 자자”

둘째는 긴장하고 열심히 한 덕분인지 오늘은 다리를 주무르지 않아도 잠에 빠져들었다.

첫째는 우리가 얘기하는 걸 듣다가 잠이 들었다.

아이들이 자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예쁘다가도 미안한 마음이 뒤따라 나온다.

둘째에게 집중하느라 첫째 아들에게 소홀해졌고, 그만큼 더 첫째에게 바라는 게 많아졌다.

첫째가 요즘 부쩍 혀 짧은 소리를 내며 엄마에게 파고드는 것도 그 이유가 아닐까?

내일은 예담이의 표정과 생활도 살펴야겠다.

'학교에서 30명 정도에게 쏟던 정성이면 아이 둘이면 완전 껌인데!'라고 생각해던 내가 어리석었다.

30명이고 100명이고 내 아들 2명에게 쏟는 정신적 노동강도는 그 보다 훨씬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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