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들

주간 에세이

by 루카형아

내가 사라지지 않는 수염 자국을 고민할 만큼 그녀도 깊게 패인 삶의 주름살을 어루만지고 있다.

인간은 가엾게도 더 늙고 병들수록 지나온 삶의 궤적을 예전보다는 유순해진 눈빛으로 바라본다.


적당한 이유를 부여하며 흘러온 시간을 어루만진다.

나는 그토록 거대해 마지않았던 나의 부모가 사실은 세상 앞에서는 유약한 존재였음을 어릴 적부터 알게 되었다.

부모가 세상의 전부였을 나이에도 나는 내 부모가 이 세상 앞에 스러져가며 고통의 비명을 외치는 모습을 몇차례 지켜보았다. 그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과정은 아니었음은 분명했다.


내 어머니는 내가 조숙해질 즈음에야 그 과정들을 일부러 의도하기도 하였음을 인정했다.

그 결과 나는 부모의 모습에 나의 삶을 지나치게 투영했다. 당신들의 가치판단에 매몰되어 내 시간을 염세 속으로 몰아갔다. 내 부모가 내게 행했던 것들에는 "고생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며 자란 아이는 왜곡되지 않은 삶을 살아갈 것이다"라는 공유된 의식이 내포되어 있었다.

여기서의 '왜곡되지 않은 삶'이란 단순히 도덕적인 의식을 준수함은 물론, 사회구성원으로서 충분히 기능할 수 있는 삶을 뜻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당신들은 아마도 죽을 때까지 아이의 몸에서 지워지지 않을 자국도 새기게 되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부모를 가엾게 여기기 시작하였다.


속된 말로 조금 이르게 조숙해졌는데, 부모가 내 심리적인 버팀목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언제나 나에게 온전히 자립의 의식만을 새기길 원했으나, 그것을 수용하기에 너무 어렸던 나는 자립의식을 세움과 동시에 내 삶에 지나친 연민과 불안을 더 하였다.



이제는 나보다 작아진 내 어머니를 바라본다.


약 이십여 년 전 그녀가 나를 담았던 시선에 이제는 내가 그녀를 담는다.

내 어머니는 그 누구보다 맑고 순수한 영혼이나 너무도 유약하며 폭풍 앞에 쉽게 휘청이는 가엾은 나뭇가지 같기도 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그녀의 눈에서 쉽게 휘몰아치고 빠르게 사라지는 감정의 체계를 읽기 시작하였고, 이제는 어느 정도 그녀의 영혼을 이해하고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녀 역시 이제는 서른을 바라보고 있는 아들에게 은근한 의지와 기대를 보내며 스스로의 영혼을 하나 뿐인 아들의 어깨에 기댄다.

나는 언젠가는 배우자를 잃고 혼자 살아가야 하는 그녀를 위해(흔한 기혼여성들이 그러하듯이) 이제는 한 인간이자 한 여성으로서 그녀가 삶을 대하는 연습을 하는 것을 돕고자 한다.

다행히도 나를 낳은 스물 일곱번째 해가 되어서야 그녀는 조금이나마 당신 스스로의 삶의 조각을 찾기 시작했다. 아마도 내가 경제적으로 약간의 자립을 실행했기 때문이었으리라.

나는 언제나 나로서만 존재하고 싶은 순간으로 다분했으나, 이제 나는 그녀의 하나뿐인 아들로서 그녀가 나에게 준 목소리와 눈으로 이 세상을 보고자 한다.

나는 내가 보는 세상을 언제나 그녀에게 건네주고 싶다.




그녀와 내 앞에는 거센 강물이 흐르고 있다.

나는 건너편에 있는 그녀의 손을 마주 잡고자 기꺼이 헤엄치기 시작했으나, 되레 두려움을 느끼고는 다시 되돌아와 멋쩍은 웃음과 함께 젖은 몸을 닦아내기 일쑤였다.

늙어가는 부모와 늙어가는 아들은 날이 갈수록 낯설어지는 각자의 모습을 바라본다.

나는 주름살이 깊게 패인 내 부모의 눈빛에서 아직까지도 강렬한 생명의 기운을 발견하며, 어쩌면 치기어린 젊은 내 모습을 그려낸다.


당신들은 이제는 성인이 된 거구의 아들에서 세속의 낡은 눈빛을 발견하며 치열하게 지나쳐 왔던 당신들의 젊은 나날들을 그려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의 시간을 지켜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함께 흘렀던 그 시간들을 부디 값지게 여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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