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유연한 꼰대가 되는 법

주간 에세이

by 루카형아

언젠가는 고착화된 자아와 그것에서 비롯된 편협한 자기 세계에 갇혀버린 우리의 기성세대를 바라본다. 나는 여기서부터 보다 색다른 사유를 촉발한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가며 새로운 세계에 대한 짙은 탐구심보다는 익숙한 자리에 더 연민과 애정을 드리우며 익숙한 풍경과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들에 더 손길이 닿는다.

내 아버지의 완고함에 대항하여 내 삶의 깃발을 세우고자 분투했던 내 청춘의 열렬함을 기억하기에 기꺼이 이 글을 써내리는 용기를 발현한다.


이제는 기성세대로 흐르는 내 젊음을 적당한 연민을 가지고 바라본다.

어쩌다보니 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경직된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활동하는 직장인이 되었다. 꽤 열심히 노력하지 않고 피동적인 사고로 일관한다면, 내가 그동안 외면하기를 서슴지 않았던 그 지독한 꼰대가 내가 되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 그래도 꼰대가 된다면 조금 더 유연하고도 말랑말랑한 사고를 갖는 꼰대가 될 순 없을까라는 고민을 한 적이 있다.

삶에는 정도와 정답이 없다는 생각을 다시금 내 가슴 속에 되뇌인다.

이것은 실현하기에 꽤 어려운 생각이다.

삶은 어쩔 수 없이 자기 중심적이고 나의 자아로 이룩한 나의 세계는 타인이 접근하기에 날이 갈수록 어려워진다.


세상은 더욱 자신의 취향을 굳건히 만들고 자신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에 중심을 둔다. 타인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스스로의 이데아를 확장하는 것이 요즘 '메타'인 것이다.

나는 그것을 해체하는 첫번째 발걸음으로 타인의 삶을 더욱 들여다보기로 결정했다. 타인에게 더 쉽게 질문하고 타인을 더 궁금해 할 것을 다짐한다.

가령 내 어머니와 아버지를 내 부모로만 이해하는 것에 국한하지 않고 한 사람이자 하나의 개체로 살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기로 한다. 용기내어 그들의 일생과 한 사람으로서의 당신들을 바라본다.

자기 세계에 대한 확신은 한 개인을 더욱 단단하고 대범하게 성장시킨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세계로부터 확보해낸 주체성은 나르시즘에 이르는 만함을 가져올 수도 있다.

보편성은 안전하지만 한 개인의 성벽을 결코 무너뜨릴 수 없고, 결국 우리는 그 안에서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지나친 보편성에 편승한 자아를 경계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유연한 꼰대'가 되는 것의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어딜 가든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라는 말은 낯선 환경에서 적응할 것을 요구받는 이의 귀에 쉽게 스치는 문장이다. 이것은 "어느 집단이든, 집단의 구성원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으로 쉬이 해석되나, 나는 이 문장에 때로는 지나친 자기 면책성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우리 일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이나, 우리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됨으로서 타인을 좋은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다. 이는 새로 만나는 낯선 타인은 물론 연인과 가족 사이의 관계에도 쉽게 적용할 수 있다.

사람들 사이에 엉겨붙어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이 세상에서 더욱 더 좋은 시간을 보내기로 한 이상, 더 멋지고 부드럽게 늙어가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먼 훗날 더 큰 경제적, 사회적 영예를 손에 쥐는 것보다는, 더 좋은 어른이자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꿈꾼다.



그렇기에 오늘도 기꺼이 용기를 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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