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생각한 것들 : 표현에 관하여
주간 에세이
요즈음 생각한 것들을 꺼내어 본다.
1. 먼저, 활용할 수 있는 언어의 양에 대해서.
전남대학교 철학과 박구용 교수가 어느 인문학 강의에서 던진 몇가지 문장으로부터 이 글을 시작한다.
모든 사람들이 느끼는 대표적인 어려움 중의 하나는 '나보다 언어의 용량이 적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하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교사의 수업을 청강하는 학생을 예시로 들어보자.
교수가 사용하는 언어가 이미 자신의 언어를 '하회'한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그 순간 교수의 말은 학생의 귀에 들리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누군가의 언어 사용이 나와 비슷하거나 혹은 부족하다고 느껴진다면 존경심 따위는 생기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내 언어의 총량을 늘려보는 경험을 통해 생각했던 것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고등학교 시절 읽었던 알랭 드 보통의 <뉴스의 시대>라는 책 어느 한 구절에는 '힐난하다'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당시 나는 살아가면서 '힐난하다'라는 표현을 처음 마주하였고 그 표현 자체로는 감히 해석하기 어려웠다.
나는 '이해하는 행위'의 본질은 낯선 개념을 마주하는 순간, 자신이 지닌 가장 하위층의 개념으로 치환해보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고등학생의 나는 '힐난하다'를 두고 그것을 '힐난하다'라는 표현 자체로는 결코 이해하지 못하였고, '비난하다' 따위의 가장 하위층의 유의어로 치환하여 본 개념을 이해했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람은 자신이 가진 언어의 총량을 늘리기 시작한다.
나는 상술했던 과정을 통해 '힐난하다'라는 표현을 나의 언어로 확보함으로써 맥락상의 흐름에 따라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이처럼 언어의 총량을 늘리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한 개인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언어, 내지는 글로 엮어내며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은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필수적인 능력임과 동시에 요즘의 젊은이들에게는 매우 결핍된 능력 중 하나다.
생각을 언어로 풀어내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자아를 세상 밖으로 꺼내놓을 수 있으며 조금 더 폭넓고 깊은 심연을 유영할 수 있다.
2. 표현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하여.
따라서 나는 타인을 바라볼 때 '자신의 주관을 표현하는 모습'을 중심으로 자세히 바라본다.
다소 거칠고 정돈되지 못한 언어로 가득하지만 그런 스스로를 기꺼이 감내하며 용기있게 표현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미처 생각을 언어로 변환해보는 과정에 익숙치 못하거나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을 꺼려하는 이들은 무책임한 정적으로 일관하거나 "~와 비슷한 느낌" 따위의 단순한 비유로 순간을 모면한다.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은 개개인의 삶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다. 따라서 나는 감히 많은 이들에게 용기내어 표현해보는 것을 권한다. 그로 인해 빚어내는 잦은 실수들조차 두려움 없이 안아보기를 바란다.
타인과 함께하는 낯선 자리를 마치고 오는 길엔 항상 그 순간에 있었던 감정과 생각을 곱씹어보며 돌아오는 버릇이 있다. 그렇지 못하면 금새 흩어지는 찰나의 순간이기에 기록하지는 못할망정 그 기억들을 사유의 단초로 삼아보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충분히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이들과의 자리를 마치고 오는 날에는 든든한 아군을 얻은 듯한 훌륭한 만족감, 내지는 성취감과 비슷한 감정이 밀려든다.
소통하면 함께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타인의 장벽 앞에서 기꺼이 문을 두드리며 천천히 자아의 영역을 확대하기 시작한다. 불편한 이방인이 되지 않으려면 기꺼이 상대의 표정과 어투, 의도와 감정을 읽어내야 할 것이다. 이처럼 타인의 관점을 살피는 일은 한 개인의 성장에도 매우 중요하다.
스스로를 성찰하지 않고, 그저 삶의 단순한 쾌락과 목적없는 단순 성취에 매몰되는 순간에는 거센 풍랑 앞에 있는 가련한 조각배처럼 스스로가 무력해지기 마련이다.
"돈 많이 벌기",
혹은 요새 내가 속한 지리멸렬하고도 좀스러운 이 집단의 특성을 반영하자면 "승진 빨리 하기" 따위가 최근에 주변 이들의 대화의 화두가 되는 대표적인 것들이다.(상술했던 단순 쾌락, 단순 성취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러한 목적의 대화는 대부분 목적과 맥락이 비슷한 결이라 매일매일 지겹고도 고리타분한 반복의 고리다. 그런 만남을 갖고나서 걸어오는 길엔 유독 고단하여 흐르는 구름을 자주 바라보고 무거운 숨을 내뱉기도 한다.
행위와 생각의 주체성을 상실한 채, 타인이 부여한 삶의 가치에 떠밀려 살아가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나 역시 그러한 집단 안에 소속되어 있지만 지독하고도 지저분한 폭풍에 휩쓸리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묻는 작업을 반복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