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교육의 딜레마 - 인생은 한 번뿐
"당신만 있는 게 아니야. 나도 있어."
이 말과 함께 아내의 쏘아보는 눈빛에 서운함이 가득하다.
새벽일의 장점은 모두가 잠든 사이에 어떠한 구애도 받지 않고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누굴 만날 일도 없으며, 뻥 뚫린 도로와 한 구석에 멈춰있는 자동차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배달하면 잘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변수는 늘 있는 법. 누군가와 시비가 붙는 일이 생겼다.
번지를 찾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다. 세상을 잘 만난 탓에 문명의 혜택을 한껏 누리며 핸드폰 하나로 어디든 빠르게 찾아갈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음에 감사한다. 이런 것들이 없었던 선사시대나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길을 헤매다 추위나 더위에 쇼크사를 당하거나 아니면 강도나 산짐승에게 해를 당할 것이 분명했다. 따라서 문명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을 찾는다면 단연 나를 꼽아야 한다.
하지만 문명의 은혜를 한껏 받았음에도 인지적인 저하로 인해 코앞에 있는 집을 놓고도 동네 한 바퀴를 크게 다시 도는 우매함 또한 지니고 있어 배달시간을 배로 연장시키는 특출 난 재주를 누구에게 자랑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지경이다. 물건을 들고 이 골목 저 골목을 뛰어다니는 나같은 사람은 원천적으로 택배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스스로 자각할 때가 많다. 하지만 운이 좋아 집을 바로 찾는 일이 발생한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택배일이 천직임을 온 천하에 떠들어 댈 수 있을 만큼 자신감이 차오른다.
하지만 그날은 천직으로 결단코 받아들일 수 없는 날이었다. 차를 한쪽 귀퉁이에 세워놓고 스티로폼 박스 2개와 종이상자 2개를 양손 가득 쌓아 올린 채 새 주소의 오름차순을 따라 오른쪽으로 움직였다가 다시 내림차순을 따라 왼쪽으로 움직였다. 지나가는 사람이 이런 나를 봤다면 '저런 사람도 택배를 할 수 있나?'하는 의구심을 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꿋꿋이 거리를 찾아 헤맸다. 짐을 일단 차에 실어두고, 주소를 찾은 다음 짐을 꺼내 가는 것이 오히려 효율적이라고 판단될 정도록 무식하게 짐을 들고 동네 한 바퀴를 강아지도 없이 혼자 배회했다.
이런 순간에도 새벽 택배의 장점이 한껏 발휘될 수 있다. 배달 차량을 길가 한쪽으로 세우고 비상등을 켠 채 움직이더라도 마주오는 차량이 거의 없기 때문에 오가는 차량에 불편함을 거의 주지 않는다. 하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물품을 한 아름 안고 왔다 갔다, 그러고선 물건을 내려놓고 핸드폰 지도를 한참 주시한 뒤 다시 물건을 들고 이곳저곳을 들쑤시며 비집고 다니고 있던 중 클랙슨 소리가 들려 차량 있는 쪽을 바라보니 한 카니발 차량이 자나 가지 않고 내가 세워둔 차량 뒤쪽에 서있다. '왜 지나가지 않을까? 설마 못 지나가는 걸까?' 하고 다시 유심이 보니 일부러 지나가지 않는 것임이 느껴졌다. 클랙슨 소릴 통해서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2002년 월드컵 거리를 방불케 정도로 '빵 빵빵 빵빵빵'을 연거푸 누르고 있었다. 충분히 지나갈 수 있을 꺼라 판단되는 데도 불구하고 크락션을 요란하게 울리며 서 있었다. 평상시 저 넓이에도 못 지나가는 운행자를 보게 되면 한마디 했을거라고 확신했다. '저 정도면 탱크도 지나가겠네.' 하지만 모두 나 같지 않으며 누군가에게는 어려울 수 있으니 빼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일단 물품을 길 가장자리에 내려놓은 채, 차량으로 가서 더 널찍 해 보이는 곳으로 이동시켰다. 하지만 내가 탑승하고 이동시키는 사이에도 월드컵 응원은 가실 줄 몰랐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무거운 짐을 들고 길을 헤매느라 누군가 하고 시비를 붙을 만큼의 체력과 여유는 없지만 소위 말해 '참 교육'이라는 게 필요한 시점임을, 그리고 그런 인간을 만난 것이 자명하게 드러난 지금. 그의 교화를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해야했다.
상대방 운전자는 차량에 타있는 내 옆을 창문을 내린 채 아주 천천히 지나갔고, 나 또한 운전자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왼쪽 창문을 내리고 운전자의 얼굴을 응시했다. 이때 들려온 한마디 "뭘 꼬나봐!" 순간 화가 올라온 나는 지나가는 그의 뒤꽁무니에 대고 회심의 사자후를 폭발했다. '야!!!!!!!!!' 앞서가던 차에 브레이크 등이 들어왔고, 그에 앞서 내가 먼저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상대도 내렸다. 얼굴을 보니 20대 청년이었다. 동승했던 친구도 함께 내렸다. 순간 2:1로 변했다. 난 40대 그들은 20대(10대가 운전 할리 없기에 20대라 한다. 그만큼 어려 보였다.)
남자들의 기싸움은 몸을 붙이는 걸로 시작된다. 상대에게 손발을 사용하지 않고 몸을 붙인 후 살기가득한 눈으로 얼굴을 노려본다. UFC의 계체량 측정 시 '파이트 포즈'를 잡는 것이 남자들 싸움의 전형이다. 어느 순간 선수 모드로 들어간 우리는 아무도 사진을 찍어주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한껏 포즈를 잡으며 명장면을 예고했다. 하지만 경기 내용은 그리 흥미진진하지 않았다. 격한 몸싸움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학창시절 친구들과의 말싸움 수준만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그들에게 '클랙슨 응원'이나 '뭘 꼬나봐'라고 했던 이유를 듣기는 고사하고 혈기 넘치는 20대 청년들과 쉴 새 없는 욕 난타전만 있을 뿐이었다. 순간 이러고 있자니 7시까지 마감해야 하는 택배가 생각났다. 난 말했다. 어차피 서로 치치도 못하고 말로만 할 거 이쯤 하자고 말이다.(표현은 이렇게 했지만 그 당시 말은 이것보다는 생동감 넘치게 했다.) 그들은 '존나 가오잡네'라고 하며 맞대응했지만, 먼저 돌아선 선배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더니 그들도 서서히 자신의 차에 올라탄다. 이때 새벽기도를 가시는지 한 노부부가 지나가다 마무리되는 훈훈한 모습을 보시며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새벽일을 하던 중 생각지도 못했던 시비로 말미암아 내가 지금 이 나이 먹고 어린애들과 뭐 하고 있는 거지?라는 자괴감이 올라오며 씁쓸한 마음이 한가득이었다. 나도 사랑하라고 가르침을 받는 종교를 가지고 있는데 오늘의 이 모습은 사랑이 넘치는 모습과는 전혀 거리가 먼 것임을 느끼고는 다시는 이러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다.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넘치는 젊은 혈기로 살아가는 저들은 누가 '릴랙스'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것이다. 나도 참지 못했던 건 마찬가지지만 저네들도 '참는 법'도 배워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함께 교차했다.
오늘의 무용담을 집에 오자마자 아내에게 털어놓으며, 만약 그들이 나를 쳤다면 그네들의 인생은 작살 난 것이라고 '세상의 법' 무서움을 강변했지만 아내는 철없는 남편을 보며 말했다.
"그럼 나는? 당신이 잘못되면 나는?"
"요즘 애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몰라?"
'그래. 아무리 세상의 법 무섭다고 한들 한순간의 젊은 객기로 내 인생 마감할 수도 있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틀의 시간이 흐른 후 오늘 검색에 1위에 올라온 무시무시한 사건
'암사역 흉기난동'
심지어 새벽에 배달을 하기도 했던 지역이다. 더군다나 그들은 10대 아이들이었다.
'40대가 돼서도 세상 무서운 줄 몰랐던 건 나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