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게 사는 게 늘 옳은 것은 아니다.
새해부터 안 좋은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 난 그냥 뭔가를 하면서 열심히 살고 싶을 뿐인데 왜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생기는지 알 길이 없다. 누군가에게 하소연한다면 '연초 액땜'이라고 생각하라고 조언할지도 모르지만 연이어 일어나는 사건은 다시금 움츠러들게 한다. 집 밖으로 뛰쳐나온 게 고작 두 달밖에 되지 않는데 말이다.
지난번에는 새벽 배송 중 어린 청년들과 시비 붙었던 일에 더하여 오늘은 차사고까지 일어났다.
새벽 배송은 도로가 한산하여 교통혼잡이 없다는 게 장점이지만 대신 어둡다는 게 단점이 된다. 특히 주차난으로 양옆에 줄지어 세워놓은 어둡고 비좁은 골목을 차량으로 들어가게 되면, 차를 도저히 돌릴 수 없어 후진으로 조심스레 나와야 하는 경우도 많고, 어둠 속에서 사람이 갑자기 보이거나 튀어나오는 경우도 있으니 최대한 주의를 살펴야 한다.
사고가 났다면 대부분 좁은 지형과 부주의가 원인이 되어 사고 나는 게 대부분일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도 조심히 운전해야 하겠다고 항상 생각했다. 더군다나 구입한 지 1년밖에 되지 않는 아직 사고가 전무한 차량이다. 그러니 새 차로 새벽을 달린다는 게 차주 입장에서 얼마나 조마조마하겠는가? 하지만 조심해서 운전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차가 더럽혀지는 것은 참아 넘기고, 배달일을 하는 것이다.
이번 주 일요일 새벽.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사고가 났다. 간선차량(지역 간 물품을 싣고 오는 25톤 대형 트럭 내지 트레일러) 이 늦어지면서 물품을 지역별로 분류하는 작업도 늦어졌다. 보통 빠르면 새벽 3시 반쯤 물건을 싣고 배송지로 향하는데 그날은 4시 반이 되어서야 물품을 옮겨 싣고 배송지로 출발하게 됐다. 마음이 급했다. 마감시간인 7시까지 배송 완료를 할 수 있을지를 걱정했고 나뿐 아니라 모든 배달자들이 동일한 걱정으로 속도를 올렸다. 하지만 내 급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25톤 트럭이 내 앞을 막아선 채 천천히 물류창고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 경사만 빠져나가면 2차선이 나올 테니 앞질러 가야겠다'라고 생각하고 나도 천천히 가는 트럭의 꽁무니를 따랐다. 마침내 여분의 차선이 보였고, 잽싸게 차선을 이동하여 25톤 트럭을 앞지르려 했다. 하지만 평지에서 속도를 내는 센스 있는 기사님의 판단으로 앞지르기를 포기한 채 차를 세웠다. 그리고 트럭이 내 앞으로 우회전을 해서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25톤 트럭기사는의 긴 차량이 꺾어지는 회전의 순간에 백미러를 보지 않았다. 육중한 트럭의 뒷면이 우회전을 하며 내 차량 왼쪽을 치고 간 것이다. 순간 '빵!!!!!!!!!!!!!!' 경적을 울렸다. 하지만 트럭이 그냥 가는 것이 아닌가? 황당한 나는 트럭의 뒤를 쫓으며 계속해서 경적을 울렸고, 그래도 자신은 모르는 양 계속 갈길을 갔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다시 한 차선으로 좁혀진 트럭 뒤를 따라가며 경적을 울리다가 이차선이 나오자마자 트럭 옆으로 차를 붙이고 못 들을 수 없을 만큼 경적을 눌러댔다. 그제야 트럭을 세웠고, 난 세워진 트럭의 앞을 막아섰다.
트럭기사는 영문도 모른 채 '저 사람이 왜 저러나?' 하는 표정을 하고 있어, 멍하니 날 보고 있는 기사를 향해 '기사님이 내 차량을 박고 그냥 가셨어요!!!!'라고 간단히 상황을 알려주었다.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의 트럭기사는 내가 무슨 차를 박고 가냐며 차에서 내릴 생각도 하지 않고 운전석에서 창문을 열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난 다시 따져 물었다. "왜 백미러를 안 보십니까?" "기사님이 제 차를 박고 그냥 가셨으니 내려서 제 블랙박스 확인해 보시죠?" 이제야 사고를 직감한 듯 차에서 내려 내 차로 향했다. 먼저 사고의 흔적을 찾았다. 왼쪽 앞 범퍼 라인이 오른쪽에 비해 조금 틀어지고 흠집 자국이 사고를 알렸다. 25톤 트럭과 접촉사고 난 것 치고는 경미한 부상이었지만 사고는 사고였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트럭기사는 블랙박스를 두 번에 걸쳐 확인하고 나서야 자신의 잘못임을 깨닫고, 보험사를 부르자는 내 말에 보험 말고 현금으로 하면 안 되겠냐고 나에게 간청했다. 이유는 화물을 싣는 대형 트럭의 경우 보험처리 절차가 복잡하고 현금으로 처리하는 것보다 더욱 비싸다는 것이었다. 난 꼭두새벽부터 일어난 사고였음과 서로 고의가 아님을 알기에 기사가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했다. 트럭기사의 전화번호를 받고 연락이 되는지 확인한 후 트럭의 차 넘버와 사고 흔적을 카메라에 담았다. 얘기해보니 트럭기사는 출근하여 바로 운행 길에 오른 찰나였고, 나 또한 배송을 시작하려는 찰나였다. 이쯤에서 마무리 짓고 일요일이 지나고 월요일쯤 차량 견적을 받아 트럭기사에게 알리고, 차량 수리를 맡기면 끝나는 상황이었다. 보험을 부르지 않고 사고를 처리하는 게 찝찝하기는 했지만 새벽부터 일하는 노동자들끼리 더 큰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그리고 나 또한 급한 마음에 트럭을 앞지르려고 했던 것이 조금은 미안하게 느껴졌음이 상대 노동자에게 연민을 갖게 했다. 이 날은 배달도 늦어져 7시에 끝내야 하는 배달을 8시 반까지 이어지게 만들었다. 물론 그날은 늦은 간선차량과 더 늦은 분류로 인해 예외상황이었지만 말이다.
오늘 아내와 함께 차량 견적을 내러 공업사에 들렀다. 견적을 내서 금액을 알려줄 요양이었다. as기사는 차량 상태를 살핀 뒤 앞 범퍼를 바꿔야 한다며 말했다. 금액은 80만 원 정도 될 것이라고 했다. 생각보다 비싼 금액이었다. 또다시 트럭기사가 받을 충격을 생각했다. 하지만 망가진 차량은 내 차량이기에 제대로 수리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대략적인 금액을 알리려 트럭기사에게 전화했다. 하지만 운행 중인지 전화를 받지 않아 문자로 수리 비용을 알렸다. 어떤 보탬도 없이 수리기사가 말한 내용 그대로를 말이다. 그리고 바로 문자를 확인한 트럭기사에게 전화가 왔다. 80만 원이라는 금액 때문인지 목소리가 한껏 상기돼 었었고, 언성도 높았다. 난 차분하게 문자상에 적은 금액은 온전히 수리기사가 말한 예상 견적비용이라고, 비용이 부담된다면 보험 처리하시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때 기사에게 생각지도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내 거 블랙박스 확인하니까 내가 당신을 친 게 아니고 당신이 나를 쳤더구만!"
순간 당황했지만 적반하장의 트럭기사의 말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대응했다.
"지금 제 블랙박스 영상을 문자로 보내드릴 테니 제 블랙박스 영상과 기사님 트럭 블랙박스 영상을 다시 한번 확인해보시고 보험 처리하시죠? 보험회사에서 잘잘못 가려줄 겁니다"
트럭기사의 말도 안 되는 역공에 순간 이게 뭔 소린가 싶어 집에서 블랙박스 영상을 핸드폰으로 담아온 걸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바로 영상을 보냈다. 이후 트럭 기사로부터 아무런 답이 없었다.
오가는 전화와 문자로 모든 상황을 목격한 아내도 황당해하며 나와 마찬가지로 분노 게이지를 올렸다.
"그 트럭기사가 당신을 만만하게 본거 아니야? 순진하게 생겨서"
내가 선한 인상이라는 건 이미 오래전부터 듣던 말이기에 특별히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는 또 다른 쨉을 날렸다. "당신이 허술해 보여서 기사가 저러는 것 아니야?" 이 또한 맞는 말이지만 아내의 말에 살짝 빈정이 상했다가 다시금 트럭기사의 괘씸함으로 초점을 맞췄다.
사고 즉시 보험을 부르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지만 그때는 가해 차량이긴 하지만 나와 같이 새벽에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로서 트럭기사에 대한 안쓰러움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바보같이 책임을 뒤집어쓰고 있었고, 아내는 못내 속상해했다.
차량을 공업사에 맡긴 후 집으로 돌아오니 전화벨이 울렸다. 낯선 목소리였다. 트럭기사가 속해있는 회사의 담당 직원이었다. 보험으로 처리했으면 이렇게 번거로울 일이 없었을 텐데 생각하며 상황설명을 다시 했다. 트럭기사의 적반하장 태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 회사 간부도 영상을 봤단다. 그리고 차량을 치고 도주하는 듯한 회사 트럭의 모습도 봤다고 했다. 그러면서 또다시 보험이 아닌 현금 처리를 말한다. 트럭기사가 얘기한 그대로였다. 이미 차를 입고시키고 견적을 요청한 상태라고 말했고, 정확한 견적은 내일 나온다고 말했다. 그리고 비용이 과하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 말할 것 없이 보험 처리하자고 말했다. 담당자는 다시 한번 트럭기사의 실수와 잘못된 말을 사과하며 전화를 끊었다. 이후 또 다른 직원에게 전화가 왔다. 이 사람 역시 80만 원은 비싸 보인다며 의심의 말을 한다. 이 금액은 공업사에서 얘기한 그대로이고 좀 더 정확한 견적은 내일 나오니 기다리시라 말했다. 내일 최종 견적을 받아 알려주겠다고 했고, 그 직원은 자신이 최종 담당자니 자신이 모든 처리를 돕겠다고 했다.
상대의 모든 상황과 처지를 이해하고 받아주려 했는데. 같은 노동자로서의 그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했던 나는 한순간 '바보'가 돼있었다. 이때 하나의 사건이 떠올랐다. 운전병으로 복무하던 시절 일어난 사고였다.
운전병으로 복무하던 시절 최근 사고 차량과 비슷한, 아니 그보다 몸집은 조금 작지만 나름 큰 트럭을 운전했다. 군대에서는 '2.5톤 샵 차(두돈반 샵 차)'라고 불렀다. 이 차량은 트럭과는 다르게 화물칸이 있어 다양한 짐들과 5~6명의 정비인원들이 탑승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군 차량이다. 이 차량은 정비대 소속으로 탱크(전차, 장갑차, 자주포) 수리 차량이었다.
매일매일이 반복되던 탱크 수리 출장을 마치고 복귀하는 길, 이제는 오가는 이 길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는 '일병'을 달고 있었다. 내가 운전하는'2.5톤 샵 차' 뒤에 탑승하고 있는 같은 정비대 소속 선임, 후임들이었고, 이들은 운전하는 나를 위해 온갖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함께하는 훈련 중 운전병은 야간 운전을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지휘관들이 빨리 잠을 재운다. 한 텐트에서 잠자는 모든 전우들도 지휘관의 명령을 받들어 한 목소리로 운전병의 조기 취침을 권하며 따뜻하게 잘 수 있도록 핫팩이나 따뜻한 물을 넣은 수통을 건네어 숙면을 취할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간식을 챙겨주며, 식사도 제일 빨리 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아마 자신들의 생명과도 직결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리라. 이렇게 몇몇 훈련과 탱크 정비 파병을 수차례 함께 한 전우들로서 그날도 안전한 귀가를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앞선 흰색 엘란트라 차량이 급정거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신호를 늦게 확인한 듯했다. 뒤 따라오는 나는 500m가량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내가 운전하는 2.5톤 샵 차의 경우 브레이크가 유압식이 아닌 공기를 채워 사용하는 에어 프레셔 방식이었다. 쉽게 말해 차를 세우기 위해 유압식이 브레이크를 한 번만 밟으면 되는 것에 반해 이 차량은 에어를 충전해서 사용하기 위해 브레이크를 펌프질 하듯 여러 차례 밟다 떼었다 하며 차를 서서히 세워야 하는 것이다. 아마도 전시를 대비해 차량 수리가 용이하게 만들어진 이유였을 것이다. 따라서 이런 공기주입식 브레이크를 장착한 차량은 차 간 거리를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브레이크를 여러 번 밟아 차를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선 흰색 엘란트라 차량이 급정거를 한 상태이다. 사제 차(일반 차량)였다면 충분히 세우고도 남은 거리지만 시속 80으로 다리고 있던 나는 차를 세우기 위해 브레이크 페달을 벌써부터 푸시하기 시작했다.
이 찰나의 순간 '브레이크의 딜레마'가 내 몸에 달라붙었다.
'내가 급 브레이크를 밟는다면 뒤에 타고 있는 6명의 정비병들이 정비 공구들과 함께 날아갈 것이고, 브레이크를 조금 천천히 밟는다면 앞선 흰색 엘란트라 차량과 충돌할 것이다.'
정말이었다. 그 찰나 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전쟁을 위해서 강철로 만들어진 군 차량. 거기에 덩치는 어찌나 큰지 80킬로의 속도에 일반 차량이 치이면 살아남을 수 없음을 아는 그 순간, 그리고 결코 안락하지 않은
딱딱한 정비 화물칸 안에서 각 잡고 앉아있는 선임 후임들이 급브레이크로 인해 이리저리 날아가는 장면을 떠올린 그 순간, 난 어느 한 곳도 포기할 수 없었다.
브레이크 에어를 급하게 밟지도 그렇다고 천천히 밟지도 않는 선택을 했고, 일정한 간격으로 브레이크를 밟아 나갔다. 결국 차량이 멈출 때쯤 돼서 아슬아슬하게 엘란트라의 뒷 범퍼를 박았다. 거의 차량이 멈출 무렵이었다. 시속 5킬로 정도의 속도로 충돌했던 엘란트라 차량은 뒷 트렁크가 사라진채 이미 '티코'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운전석 문이 열리고 한 백발의 노인이 내렸다. 그리고 2.5톤 차량 뒤에서도 전우들이 허리를 구부정하게 하고 들릴 듯 말 듯 신음소리를 내며 화물칸에서 내렸다. 얼굴과 팔, 다리에 상처를 낸 채 말이다. 그 정비 화물칸에서 심하게 나뒹굴었다고 말했고, 온몸 이곳저곳을 찍히며 죽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때 갓 일병을 달고 사고를 냈던 나는 생전 처음 겪어보는 사고의 중심에 서 있었다. 엠블란스와 헌병대 차량, 경찰차량, 대대장 차량(1호차), 레커차랑의 총 5대의 요란한 소리의 차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내 나이 만 20세. 기적적으로 흰색 엘란트라 차량에서 나온 할아버지는 병원 진단 결과 큰 이상이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내 차량 뒤에 타고 있던 선임, 후임들은 얼마간의 의무실 치료를 받았으며, 내무반과 중대에서 죽다 살아난 경험을 무용담처럼 하고 다녔다. 난 내가 속한 수송부 수송관의 꼼수로 영창에 가지 않았다. 상대 차량 할아버지가 보험 합의를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왜 꼼수인가 하면, 난 만 20세로 보험적용을 받을 수 없는 나이었다. 하지만 21세인 수송부 선임이 운전한 것으로 바꿔치기하여 보험 합의금으로 사고 당사자 할아버지와 합의했다. 군 차량 모두가 보험가입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운전했던 차량이 '정비차량'이라서 보험이 가입돼있던 것이고, 나머지 트럭들은 보험가입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당시는 그랬다. 난 생각하기를 '전쟁이 났을 때 파손된 차량을 모두 보험 처리한다면 보험회사가 거덜 날 것이다.'
영창에 가지 않게 된 나는 한동안 수송부 선임의 갈굼에 시달렸다. 자신이 내 사고를 뒤집어썼다는 이유였다. 수송관은 그 선임에게 '군대의 사고 이력은 사회에 나가면 다 없어지고 남지 않는다'라고 설득한 것으로 전해 들었다. 갈굼은 당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선임은 전역했다. 전역하기 전 나에게 연락처를 달라고 하긴 했다. 사회 나갔을 때 조그마한 불이익이라도 있으면 널 다시 찾겠다는 협박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연락을 오지 않고 있다. 수송관의 말이 맞았다.
얼마 전 트럭기사와의 사고에서 군 시절의 사고 현장을 떠올린 건, 마음 약한 내 모습 때문이었다. 누구에게도 상처가 되지 않는 쪽을 택하는 모습이 어설픈 판단을 초래하며, 선한 생각이 모두를 만족시킨다는 생각은 늘 옳은 것은 아니었다. 군 시절 사고에 대해 지금까지 하고 있는 후회는 '그 찰나의 순간, 그냥 급브레이크를 밟을걸' 하는 것이다. 운이 좋았기에 망정이지 사람을 죽일 뻔했다. 한 번도 사고를 경험하지 못한 나는 앞선 엘란트라 운전자에게 가해질 충격보다 뒤에 있는 선후임들이 먼저 떠오른 게 사실이다. 그래서 브레이크를 급하게 밟지 못했다. 아내가 말하는 선함과 허술함이 바로 이것이다.
트럭기사에게 가졌던 연민으로 그가 원하는 대로 편의를 봐주려 했던 내가 뒤통수를 얻어맞으며 잠시 스무 살의 나를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