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세요 기도!
'새벽에 드리는 기도는 간절함의 표현이다.' 이른 새벽에 기른 맑고 정한 우물물 한 접시를 떠 놓고 두 손 모아 '비나이다, 비나이다'했던 옛 성황당의 모습이 오늘날 개신교의 '새벽기도'로 모습을 바꾸어 온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비는 대상은 다르지만 '우물물'이 주는 깨끗함에 자신을 모습을 투영하며 자신도 맑고 순수한 모습으로 신께 간절함을 나타내는 행위자로서 새벽을 깨운다는 개신교의 '새벽기도'와 많이 닮아있다.
새벽에 드리는 기도는 남들이 잠들어 있는 시간,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기도의 자리로 나간다는 점에서 신에게 자신의 간절함을 보여줄 수 있음은 물론, 조용한 공간에서의 신과 일대일 교통 할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이 된다. 또한 새벽기도는 자신의 마음을 정리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기도 하다.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에게 자신만의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정도는 다르겠지만 자신의 마음을 정돈하고, 정돈된 마음을 신께 아뢰는 시간만큼 여유롭고 평화로운 시간은 없을 것이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새벽기도'이다.
그동안 별로 간절함이 없었던 걸까? 나에겐 새벽기도의 기억이 없다. 아침잠이 많은 탓에 새벽에 도저히 일어날 수 없어서라는 핑계를 달고 있지만, 직장인이건 집에서 놀고 있는 백수건 새벽에 일어난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직장인은 조금 더 자고 싶은 마음일 것이고, 나와 같은 백수는 늦게 잠드니 새벽 기도가 시작하는 '5시 30분'에는 도저히 깨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그 시간에 일어나는 것은 둘째치고 '새벽에 기도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도 몰랐다.'
그동안 새벽기도을 해야할 이유는 없었던 것 같다. 간절한 기도가 없어도 만사형통했으니 말이다. 순간순간 불어닥치는 드센 바람이 있기는 했으나 '기도'가 아닌 '기다림'으로써 지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세찬 바람이 지나가면 안도하며 '이 또한 지나갔구나' 하는 것이다.
7개월째 놀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도 아직까지 '새벽기도'를 해볼까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새벽 배송으로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볼까 하는 생각은 있었지만 정말 새벽 기도해봐야지 하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는 2019년 시작점에 '새벽기도'를 한번 생각해보게 됐다.
도저히 일을 하려야 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지난 주말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가 발톱에 상처를 입었다. 센터링한다고 힘을 실어 찾는 풀 스윙을 했지만 발의 안쪽, 인프런트가 아닌 '발톱'이 맞아 센터링이 된 것이다. 발톱으로 '센터링'을 올리게 된 내 엄지발톱이 정상일리 없었다. 그때만 해도 발톱이 빠진 것 같았지만 경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벤치로 나가지 않고 계속해서 무식하게 뛰었다. 다행히도 10분 안에 게임이 끝났고, 벤치로 돌아와 양말을 벗어보니 오른쪽 발톱 사이에서 피와 진물 섞여 나오고 있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뚝뚝 떨어졌다. 발톱은 곧 빠질 것 같은 통증이 왔다. 발톱도 아파 죽겠는데 내가 깔고 앉은자리 밑에는 누군가 먹다 남은 햄버거 케첩이 살짝 뜯긴 채 엉덩이를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엉덩이를 닦을 휴지 한 장이 없어 손으로 닦고 손을 비벼 말렸다. 차량에 올라타니 운동화를 신고 엑셀을 밟기 힘들었다 슬리퍼라도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마저도 없어 통증을 감내하며 조심히 집으로 왔다. 지금껏 소독하고 약 바르고 헝겊으로 둘러서 잘 치료하고 있었는데 최근 발톱을 한 번 더 찌었다. 처음 다쳤을 때와 똑같이 피와 진물이 섞어 나왔다.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가 엄지발가락 보호대를 샀다.
엄지발톱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상황인데도 그날 새벽 배송일을 나갔다. 추운 새벽인데도 운동화가 아닌 슬리퍼를 신고 나갔다. 그야말로 '슬리퍼 투혼'이었다. 하지만 그날이 바로 그날이다. 차사고가 났던 날 말이다. 결국 25톤 트럭과 접촉사고가 나고, 결국 차는 공업사에 입고되었다. 차는 이번 주 중 나오겠지만 차가 나올 때까지 새벽일을 하지 못하니 몸이 근질근질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새벽기도'이다.
새벽기도 시간을 대충 4:30 쯤으로 생각하고, 옷을 두텁게 갖춰 입고 밖을 나섰다. 한국에 교회가 정말 많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직접 교회를 찾으려고 건물들을 올려다보니 건물마다 교회가 있었다. 한 건물에 두 개의 교회가 있기도 했다. 하지만 불이 켜진 교회는 없었다. '내가 시간을 잘못 알았나?' 하는 생각은 하지 않고, '교회들이 새벽에 오는 사람들이 없어서 새벽기도를 접었구나'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교회가 불이 꺼져있는 것은 너무 이상했다. '그래. 교회 안에 켜진 불이 밖으로 비치지 않을 수도 있어'라고 생각하고, 교회를 순서대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그중 불이 켜져 있는 교회를 발견하면 그곳에서 새벽기도를 드리자'
하지만 새벽기도를 하러 음침한 건물 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왠지 꺼림칙하고 무서웠다. 특히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이 참으로 무섭다. 그 야심한 시간에 혼자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 원하는 층에 서면, 문이 열리기 직전 조마조마하다. 내 앞에 무언가 갑자기 나타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진짜 사람이라도 그 앞에 나타난다고 하면 기겁할 노릇이다. 하지만 담력훈련은 계속되었다. 다섯 교회를 모두 올라가 봤지만(1층에 있는 교회는 없었다) 모두 불이 꺼져있었다. 하지만 탐방을 하던 중 1층에 있던 교회 입간판을 보고 그제야 새벽기도 시간이 5:30 임을 알았다. 난 이 새벽에 바보같이 무얼 하고 있었는가? 시간을 보니 5:30까지 20분이 남아있다. 발이 닫는 곳으로 아무 생각 없이 걸었다.
5:20분쯤 되니 교회에 불이 켜진다. 모여있는 교회 6곳 중에 2곳만이 불이 켜졌다. 어떤 곳을 가야 할지 순간 망설여졌다. 아까 전에 생각한 것과 같이 순차적으로 돌아보다 불이 켜진 교회에 들어가겠다는 것이 오히려 쉬울 것이다. 하지만 두 곳의 불이 켜지니 어디로 가야 할까 고민됐다. 그래서 1분이라도 먼저 불이 켜졌다고 생각한 교회로 들어갔다.(사실 어디가 먼저 불을 켰는지 모른다. 그저 내가 먼저 본 것이다.)
작은 교회였고, 목사님과 성도 한 명이 앉아있었다. 나도 맨 뒷자리 왼쪽 사이드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이 많은 교회라면 익명성 뒤에 숨을 수 있으나 이곳은 목사님과 일대일로 눈 맞춤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 부담감을 아시는지 나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설교 하셨다. 앉아있는 다른 성도 한 명은 목사님의 설교에 맞춰 '아멘'으로 추임새를 넣었지만, 어떤 때는 설교와 상관없는 타이밍에 추임새를 넣어 슬쩍 고개를 돌려보게 했다. 설교 중에도 추임새인지 뭔지 모를 소리로 중얼중얼하기에 살짝 닭살이 올라왔다.
새벽기도의 묘미는 역시 홀로 하는 '기도'이다. 목사님은 설교를 짧게 끝내고 뒤로 걸어와 전등 스위치를 모두 내리고 기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찬양 경음악의 볼륨을 높였다. 그리고는 다시 앞자리로 가서 설교하던 강단 아내로 들어가 버렸다. 그곳에서 무릎 꿇은 것이다. 내가 필요했던 시간이 바로 이 시간이었다. 마음을 정리하고 신께 고백하는 이시간. 앞선 긴장되고 두려운 마음은 모두 가시고, 평안함이 맴돌았다. 설교와 기도는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내가 그 평안함에 압도되어 무려 '30분'을 기도했다. 생각나는 것들과 하고 싶은 말들을 모두 토로했다. 나 자신을 비롯하여, 아내, 가족, 친지, 친구, 미래 등등의 두서없는 기도였지만 간절한 마음이었다. 목사님은 알아들을 수없는 방언으로 기도를 했고, 설교시간 중얼거렸던 청년은 기다란 의자에 올라가 옆쪽으로 무릎을 꿇고 무릎 위로 이마를 떨궜다.
'저 청년은 어떤 간절함이 있어 새벽시간에 나와 저리도 애절하게 기도하는가?'
목사님과 그 청년의 기도소리가 나로 하여금 용기를 내게 했다. 나도 목소리를 냈다. 물론 나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로 말이다. 생애 첫새벽기도이다. 기도를 마치고 눈을 뜨니 내가 숙였던 자리에 '눈물 콧물'이 흥건했다. 뒤쪽을 돌아보니 작은 두루마리 휴지가 아닌 길다란 두루마리 키친타월이 있었다. 몇 칸을 떼어 가지고 와서 자리를 닦고 도망치듯 나왔다.
자라오면서 외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새벽기도를 지켜봤다. '그들의 기도 속에 분명 내가 포함돼었으리라.' 이제 나도 나만이 아닌,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하고 싶어 졌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조금 힘들겠지만 새벽기도를 해보니 '왜 새벽에 기도해야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