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쉬한 공기가 그리워
'삼한사미(3일은 춥고 4일은 미세먼지)'
요 며칠 살만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기쁜 마음이 드는 한편 이제는 그간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에도 기뻐해야 하는가 하는 현실에 슬픈 생각도 든다. 대기 지도에도 뚜렷이 나타나는데 중국은 저는 아니라고 발뺌하고 오히려 자신들에게 뒤집어 씌운다며 역으로 공격하니 참으로 통탄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지난주 몇 번에 걸친 '미세먼지 비상 저감조치'문자를 보며, 과연 효과는 있는 것인지? 이것이 정말 우리의 노력만으로 나아질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내 결론은 당연히 불가능하며, 인간의 이기심에 제동이 걸리지 않는 한 앞으로 더욱 회의적이라 본다. 안 그래도 삭막한 삶인데 비주얼까지 이래야 하나 싶다.
시기상조라 생각했던 '히말라야 공기 캔'을 사서 마시는 세상이 오고야 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아이템을 선점한다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것도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티브이 광고에서 볼 수 있으리라. 벌써 기능성 마스크 광고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생수를 사 먹게 된 멀지 않은 과거를 기억한다면 이제 휴대용 공기통을 매고 다니는 시대가 그리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너는 어떨 때 행복감을 느껴?"라고 나에게 묻는다면 난 자신 있게 "새벽에 창을 열고 차갑고 신선한 공기를 한껏 들이마실 때"라고 말할 것이다.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문답이다. 하지만 아무도 물어본 사람은 없다. 어쨌거나 분명 그렇게 생각했다. 신선한 공기를 한껏 들이마실 때면 이게 바로 내가 살아가는 이유 같았다.
살면서 그 어느 것에서도 이와 비견할만한 행복감을 느껴본 적이 없다. 의식하지 못한 채 자연스레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말이든 뭐든 있다면 그게 진심의 표현일 것이다. 그러면에서 보자면 창문을 열고 고개를 밖으로 내밀어 신선한 공기를 한껏 들이마실 때의 표정과 감탄사는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터져 나오는 표정이나 감탄사 보다 훨씬 더 크고 강렬하다. 숨 한번 쉬는데 이렇게 행복하다면 난 참 단순하기 그지없는 사람이다. 행복의 가능성이 무한대로 열려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무한대의 가능성이 이곳 한국에서 일지는 모르겠다.
산을 오르는 것은 힘들고 고되어 살짝 꺼리게 되지만 산의 프레쉬한 공기를 좋아한다. 특히 산에 있는 사찰에 들어가 아무 돌계단에 앉아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순간은 또 한 번의 행복의 정점이다. 또 때때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그 시절 냄새를 우연히 직면할 때도 있다. 어렴풋이 코 안으로 스며드는 옛 추억의 냄새는 신선하고 아니고를 떠나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어린 시절 골목 아이들과 뛰놀며 맡았던 냄새, '실내화 주머니를 무릎으로 차며 집까지 걸으며 맡았던 냄새가 아직까지 세상에 존재하다니'라고 놀라며 이 냄새는 돈을 주고라도 사서 보관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혼탁해진 세상에서 더 이상 맡을 수 없는 냄새라고 생각하던 것이 불현듯 코앞에 나타난다는 게 정말 놀랍고 신기하다.
이러한 냄새가 보존되고 다시 나의 곁으로 돌아올 수 있던 이유를 유추하자면 어린 시절 대자연의 품속에 있었기 때문이리라. 이때 맡았던 풀냄새며, 벼를 스치는 바람의 냄새며, 봄의 개구리 알의 냄새며, 계곡의 이끼 냄새며, 잠자리와 메뚜기가 뛰노는 냄새며, 귀뚜라미가 우는 밤의 냄새며, 동네 아이들의 자연과 함께 뛰노는 냄새들이 우리네 대자연이 가득 머금고 있다가 탁한 세상을 향해 다시금 크게 내뿜기 때문일 것이다.
앞전에 차갑고 신선한 공기만이 행복감을 느낀다고 했었지만 생각해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최근 새벽일을 하며 라디오와 다시 친구가 됐다. 특히 DJ 멘트가 적고 3,4곡을 연달아 내보내는 방송이야 말로 새벽 운치에 음악의 향을 더한다. 새벽에 어울리는 음악이 분명 따로 있겠지만은 어떤 노래가 흘러나와도 마음에 부합된다. 새벽에 듣는 트로트 마저 가사를 음미하게 하며, 때론 눈가를 촉촉하게 만들기도 한다. 한 번은 이스라엘 음악이라며 틀어준 DJ의 '장미가 가득한 저녁에'란 노래를 들으며 신기한 경험을 했다. 장미가 가득한 저녁의 경험이 없는 나로선 그 나라의 정서를 이해할만한 기억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목만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친 것이다. 뜨거운 어느 여름날 장미로 만발한 정원에 드리워진 검붉은 노을 속에 홀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나를 떠올렸다. 붉은 석양이 비치는 이스라엘의 민가 어느 좁은 골목길을 홀로 걸으며 텁텁한 여름 공기와 장미 향기가 어우러진 더운 냄새를 맡으며 묘한 기분 속을 빠져들게 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면서 또다시 행복감이 몰려왔다.
숨 쉬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나로선 앞으로가 큰일이다. 이젠 날씨보다 대기 예보에 더 민감해진 나를 발견한다. 대기질이 '좋음'이면 창을 열어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고 집 안에 그 공기가 충분히 들어와 머물게 하고, 또 대기질이 '최악'이면 문을 닫고 집안의 공기를 아껴마시며 검증되지 않은 집 내부 환기 시스템을 작동한다. 이제 숨 쉬는 문제가 내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버렸다. 물론 나만의 문제가 아니겠지만 단순히 숨 하나로 행복했던 나에겐 더욱 중요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