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욕심이 아닐 것이다.
"볼일보다 단상이 떠오르면 조용히 변을 끊고 나와 노트북 컴퓨터를 켠다." 이건 마치 작곡가가 악상이 떠오르면 그걸 잊지 않기 위해 생각났던 시점부터 바로 음을 흥얼거리며 잰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옮겨 적는 것, 가지고 다니는 핸드폰으로 녹음하거나 빠르게 필기구를 꺼내 음표 작업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것이 작가의 숙명이란 말인가?'
'변을 끊고 나올 수 있는 용기는 아무나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내 안에 있는 적폐 세력을 살려둔 채 그들과 질긴 싸움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는 다짐과 같지 않은가?'
'왜 이런 개똥 같은 소리를 하고 있냐면 제가 글 조회수 좀 올랐거든요'
생각나는 대로 내뱉어도 글이 되는 내가 무슨 진짜 작가라고 된 양 생각한 건지, 기분이 업되고 몸에 힘이 '빡' 들어가 있어서 그랬다. 사람의 착각은 무서운 거다.
어제 두 가지 나를 흥분시키는 일이 있었다. 하나는 브런치 글 조회수이며, 다른 하나는 새벽 배송 일의 단가가 올랐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사건이 나를 들뜨게 했다.
'싸이월드를 기억하는가?' 아직도 존재는 하고 있으니 많이들 기억할 것이다. 이는 내 대학시절과 고스란히 함께 했다. 지금 싸이월드의 인지도는 몹시 좋아 보이지 않지만 그 당시 '싸이월드'의 파급력이란 오늘날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과 견줄만했다. 아니 그보다 더 했다. 그 당시는 다른 플랫폼이 기억나질 않을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진정한 독재였다. 하늘 아래 비견할 만한 것이 없었다고 기억한다.
싸이월드가 사랑받는 디테일이 여럿 있었다. 하나는 자신만의 음악을 선곡, 배치할 수 있었고, 또 하나는 미니미 캐릭터와 갖은 꾸밈 거리로 자신의 방을 멋지게 장식할 수 있었다. 또 다른 디테일은 가족도 아닌 사람들에게 정말 가까운 '촌수'를 지칭하는 '일촌'을 지정하는 일과, '일촌'의 주변 사람들을 건너 건너 구경하고픈 '파도타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그 외 작은 사이즈의 홈페이지로 블로그와의 차별을 두기도 한 그 당시 싸이월드를 생각하면 그는 언제나 우리의 삶에 함께 있었다. 지금도 그때의 그 계정 그대로를 가지고 있지만 거의 들어가지 않으며, 때때로 과거의 사진을 찾아보는 등의 추억팔이를 위해 잠시 들린다.
그 당시 싸이월드에는 '방문자 수'라는 게 있었다. 느낌으로는 지금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또는 유튜브의 '조회수'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좋아요'를 누른다는 개념과는 다르며,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영상을 봤다는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지금은 이런 조회수가 돈이 되기도 하는 세상이지만 당시 싸이월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쩌면 돈보다 중요하다 여기는 '부심'정도는 챙길 수 있었다. 분명 그랬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센티해진 저녁이나 밤, 그리고 새벽에 '나만의 월드'에 들어가 전날에 올린 게시물들을 향한 타인의 관심을 기대하며 '방문자 수'를 확인하곤 했다. 그리고 그 숫자에 울기도, 웃기도 했다.(실제 눈물은 흘리지 않았지만 마음으로 울었다)
'그 방문자 숫자가 머라고...'
그렇지만 그게 나를 향한 '관심과 사랑'이라 생각했다. 그게 철없던 시절이라 그렇게 느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방문자 숫자가 적나라하게 비치고 있는 건 바로 '벌거벗은 나'였다.
그래서 그런지 방문자 수에 연연했었던 건 나뿐이 아니었다. 그 당시 요즘 말하는 '메크로'도 존재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메크로가 아닌 '방문자 조회수 프로그램' 정도로 불렸던 것 같다. 내가 한 번도 사용해보지 못한 메크로 따위를 기억하는 것으로 보아 이 달콤한 유혹에 널리 널리 퍼져 었었고, 그 강렬한 유혹의 손길을 붙잡는 자들도 많이 있었으리라. '대체 그 숫자가 대체 뭐라고...'
서설이 길어지지만 쫌만 더 하겠다. 그 당시 내가 방문자 수에 감동받을 만한 숫자를 생각해보면 '50' 정도였던 것 같다. 50명이 방문한 건지 아님 1명이 50번 들어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50이란 숫자는 나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10~20' 정도면 마음에 위안과 평화가 있었고, '30~40'정도면 '자존감 뿜뿜'이었다. 그리고 50 이상이면 감동의 도가니탕.
어제 새벽일을 가기 전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쓰고 여느 때와 같이 새벽일을 다녀와 잠이 들었다. 그런데 달콤한 아침잠을 깨우는 녀석이 있었으니 브런치 알림음이다.
'조회수가 1,000명을 돌파했습니다'
'응?' '뭐지?..' 하며 브런치 어플을 켜 이것저것 확인한다. '메인에 올라갔나? 거기에 올라갈 정도는 아닌데?' 메인을 둘러봐도 내 글은 보이지 않는다. '통계'창에 들어가 확인해보니 조회수 1,0000명을 넘어서 2,000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이건 문제가 있다. 대체 뭘까?' 유입경로를 보니 '기타'이다. '뭐지?' 이런 허튼짓을 어느 정도 하고 있자니 또다시 알림음이 울린다. '조회수가 3,000명을 돌파했습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내 글을 읽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하며, 싸이월드 방문자 50의 감동을 넘어서,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숨이 멎는 감동이라 해야 할까?(이건 오버다) 달리 표현할 말이 생각나질 않지만 '그래! 감동의 도가니탕을 원샷했다'라고 해두자.
아내가 퇴근하자마자 은근슬쩍 얘길 꺼낸다. 이때는 대수롭지 않은 척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제 새벽에 글하나 썼는데 알림 문자가 와서 보니까 벌서 조회수가 5,000이네' 아내가 볼 때쯤은 5,000을 넘어서 6,000으로 향하고 있었다. 힘을 빼려고 했지만 힘이 빠지질 않는다.
아내는 대체 이것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오류'를 찾고자 이것저것 만져보더니 포털 검색으로 조회수가 늘어난 것을 발견했다. 그러더니 하는 말. '명절이 다가오니 사람들이 시누이란 검색을 많이 하나보다. 어제 새벽 쓴 글 제목은 '없는 시누이 집들이'였다. 다음 포털에서 '시누이'를 검색하니 거짓말처럼 어젯밤 내 글이 떡하니 나온다. 사람들이 '시누이' 검색을 진짜 많이 하는 거였다. 순간 허탈해지며 바람 빠진 풍선이 된다.
그 단어 하나가 연관검색어로 떴는지 매시간마다 '띵동 띵동' 이제는 조회수 10,000명이 넘어섰다. 대세에 편승한 검색어 하나가 나를 헹가래 태웠다가 친구들 장난처럼 바닥으로 '털썩'하고 떨어뜨린다. 좋은 글로서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이 무색해지고, 댓글 하나 없는 조회수가 부끄럽다. 대학시절 '방문자 수'에 연연했던 모습이 재연되는 듯하여 살짝 민망해진다. "나이가 몇 갠데 아직 이런 숫자 따위에 연연하는가?"
달리 생각해보면 '그럼 글을 쓰는 이유가 뭐지?'생각해 본다. '일기는 일기장'란 말처럼 나 혼자 간직할 말이면 발행을 말고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작가의 서랍'속에 고이 모셔놓으면 될 일 아닌가? 하지만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글 써서 사람들과 공유하려 한다. '이유는 뭘까?' 내 글이 누군가에게 많이 읽히고, 사랑받고 싶다는 게 욕심이라면 이미 이곳 브런치는 '욕망의 숲'인 것이다. 순수하게 글을 쓴다는 건 대체 뭘까?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대충 내린 결론. 글을 쓴다는 건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하고 그 말에 공감이나 피드백을 통해 소통하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오늘 검색어 하나로 들뜨게 했던 일은 그냥 에피소드로 웃어넘기면 될 일. 이렇게 생각하니 시간마다 오는 조회수 알림 문자에 더 이상 신경이 쓰이질 않는다. 그래도 궁금해서 들여다보긴 하지만 말이다.
그보다 아내가 전해준 더 기쁜 소식.
"새벽 배송 단가가 올랐다고 문자 왔어"
오늘 새벽은 기대감을 더한다. 생계가 걸린 하루하루. 한 푼이라도 더 벌고자 새벽 노동자의 눈을 반짝이게 하는 현실감 있는 '단가 인상'이 조회수 '만(10,000)'보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