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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영 Jun 22. 2019

작가와의 만남

생면부지의 작가를 알아가다.

팟캐스트를 즐겨 듣다 보니 하루에 여러 번 관련 홈페이지에 접속한다. 이때 우연히 '작가와의 만남'이란 이벤트 공지를 봤다. 그리 큰 배너도 아닌데도 눈에 잘 띄었다. 왠지 모를 궁금증에 그냥 신청했다. 생전이 이런 곳엔 가본 적이 없다. 더구나 어떤 작가인지도, 어떤 작품을 썼는지도 모른다. 단지 가면 정신적인 위안이라도 얻을까 해 일단 신청한 것이다. 감사하게도 참석 문자를 받았다. 직장인들을 배려해서인지 시간은 저녁 7시 반이었고, 혼자 가기 뻘쭘했던 나는 아내에게 같이 가자고 제안했으나 일로 피곤한 아내는 며칠을 고민하다 결국 거절했다. 


아내는 어떤 작가며, 어떤 작품을 썼냐고 물었지만 아는 바가 전혀 없어 대답해줄 수 없었다. 뒤늦게 작가의 이름을 검색하니 작가의 책과 인터뷰 동영상도 올라와 있었다. 대강 알아보려 동영상을 연 것이지만 30분이 넘는 인터뷰, 강연을 모두 봤다. 동영상 몇 편을 보고 나니 '작가와의 만남'을 해야 되나 싶었다. 혼자 가는 것도 뻘쭘한 데 갈까? 가지 말까? 동영상 몇 편으로 작가를 안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싶어 결국 가는 걸로 했다. 동영상의 내용이 다가 아니길 바랬다.


'작가와의 만남' 이벤트 공지에 질문사항을 올려달라고 했지만 작가에 대해 무지하니 "좋은 강연 부탁합니다"라고만 썼다. 적절한 문장이다.


시간에 딱 맞게 도착한 난 50명가량 앉아있는 홀에 들어왔다. 생전 처음 경험하는 '작가와의 만남'에 설레는 마음으로 앉을자리를 찾았다. 판매대의 높이 쌓아 올린 작가의 책들(공짜로 한 권씩 주는 줄 알고 잠깐 신났었다.)과 참석자들을 위한 간식, 그리고 경품 추첨을 위한 부스가 작게 마련되어 있었다. 이를 지나쳐 끝으로 이동해  자리를 잡았다. 앞에서 둘째 칸 왼쪽 끝자리. 우연이라도 작가와 시선을 맞추고 싶지 않을 만한 적당한 자리였다. 작가의 책 한번 읽어보지 못한 내가 맨 앞자리 중앙을 꿰차고 있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인터뷰 진행자와 작가가 등장했다. 뭔가 익숙했다. 유튜브에서 본 동영상과 똑같았다. 심지어 진행자도 동일한 사람이다. 오프닝부터 질문, 대답까지도 같았다. '다른 게 있겠지.  슬픈 예감이 틀릴 수도 있기를'  20분 정도가 동영상과 거의 흡사하게 흘러갔다. 이제 순서상 작가의 신간 축하와 낭독 밖에 남지 않았다. 두 개의 이벤트만이 집으로 의미 있게 돌아가게 할 수 있으리라.


오늘 만난 작가는 일명 '반전 작가'다. 공장 노동자였고 일을 마치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수많은 단편을 썼다고 했다. 결국 독자층이 형성되어 멋지게 출판까지 이뤄냈다. 특별하다고 해야 할까, 특이하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대단한 작가다. 작가의 데뷔 과정을 들으니 두 명이 생각났다. 허각과 고트 쿤스트. 허각은 환풍기 배관공으로 살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을 차지한 한때 인생역전의 아이콘이었다. 천재 프로듀서 코드 쿤스트가 생각난 이유는 쇼미 더 머니 777에서 심사위원으로 참가해 자신의 팀으로 우승하면 인생의 역작 100개가 넘는 비트가 담긴 usb를 선물로 주겠다고 하여 화제가 된 것이 작가와 닮았다. 하루에 한 편씩 500편을 갖고 있다고 해서 그리 생각했나 보다.


괴물이라 일컬어지는 작가는 소심해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소탈해 보이기도 하지만 내면을 쉽게 드러내는 스타일은 아닌 듯했다. 알듯 말 듯 오묘했다.


1년에 300편을 썼다는 엄청난 기록과, 특별히 오늘은 500편을 기념하며 축하 케이크로 모두가 축하해줬다. 그리고 유튜브 영상과는 다른 순서로 500편 기념 단편을 짧게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다. 그의 글을 1도 읽은 적 없었지만 그의 신작이 궁금하여 눈을 감고 집중했다. '입막음'이란 제목이 달린 낭독이었다. 반전작가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멍하니 듣고 있다가 결국 온몸에 소름이 돋게 된다.


재미를 떠나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을까?' '저 작가는 지금껏 읽은 책이 10권도 안된다고 하는데 어떻게 저런 글을 쓰지?' 내용보다 작가의 유전적 태생과 역량이 더 소름이었다. 저런 글이 1,2년 사이 500개나 나왔다고 생각하니 괴물이 아니고 무엇인가? 물론 본인 입으로도 모두가 좋은 글은 아니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질문했다. 소재를 어디서 얻는지. 어떻게 글을 쓰는지. 글을 쓸 때의 습관은 무엇인지. 나도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부끄러움에 수줍게 가만히 앉아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내가 진짜 궁금했던 건 이거였다. '책을 읽지 않고 깊이 있는 글쓰기가 가능합니까?'


마침 누군가 작가가 걱정된다며 자신이 보기엔 내용에 깊이가 없다고 직언을 하기도 했지만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진 못했다.(깊이가 없는 작가를 왜 보러 왔지?) 작가는 이 질문 아닌 질문에 독자들이 내 책을 찾지 않는다면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겠다는 생각지도 못한 답변을 했다.(괴짜다운 답변이다.) 독자가 찾지 않으면 안 쓰겠다는 말이 당연한 말이기는 하지만 자신감이었는지 불쾌감의 표현이었는지 알 수 없다.(딱히 기분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의미와 깊이도 나름일 거다. 재미만 추구한다고 해서 의미 없는 것도 아닐 테고, 의미와 깊이를 추구한다고 해서 다 좋은 글도 아닐 거다. 수많은 독자들이 찾는 글이라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짧은 낭독으로 소름 돋게 한 천재 작가의 상상력에 깊이를 담는 일쯤이야.


이 작가의 글을 한편도 읽어보지 못했지만 그동안 썼다는 500편의 제목을 띄운 화면을 보고서 두려움 없는 작가라는 게 눈에 보였다. 세상의 모든 소재가 작가의 것인 듯 도다. 민망한 제목들도 다수 보여 누군가에겐 금기시되는 주제도 수없이 써 내려가는 대담한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글만이 아니라 작가 자신에게도 반전이 있지 않을까 하는 괴상한 생각도 들었다. 순수하고 구수한 시골청년 같으면서도 작품을 말할 때 반짝이던 눈과 상기된 목소리를 기억한다.


생애 첫 작가와의 만남은 이렇게 생면부지의 작가와의 만남이 되었다. 앞으로 알아갈 날이 더 많은.


그에게서 배운 것 하나를 말하자면 굳이 의미 있는 결말을 만들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신은 글을 쓰다 말도 안 되게 끝내기도 한다는 거다. 생각해보니 이 말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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