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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정 시인 Sep 25. 2023

엄마 집에 CCTV 한 대 놔 드려야겠어요

지난 금요일이 아버지 제삿날이다. 아버지는 추석을 딱 일주일 앞두고 돌아가셨다. 아버지 제삿날이 돌아오자 엄마는 계속 재촉했다. 


“너 아버지 제사에 오지? 니 동생도 바빠서 못 온다고 하고, 오빠만 온다고 하는디 너라도 와야하지 않것냐? 그래도 아버지 제산디...”


상황 봐서 가겠다고 대답했다가 아무래도 엄마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아서 꼭 가겠다고 말을 바꿨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에 시골집에 가기 위해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았다. 시골 가는 길은 두 길이 있다. 하나는 버스가 다니는 정식 코스이고 다른 하나는 일제강점기 때 산길을 뚫어놓은 신작로가 있는데 은산에서 집으로 바로 넘어가는 지름길이다.  


언젠가부터 산길에 나 있는 지름길로 다니게 됐다. 다만 지름길을 선택했을 경우 큰 도로에서 벗어나서 산길을 10분 정도 가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산길은 완전 구불구불한 고갯길인데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길이다. 초보운전자는 절대 도전할 수 없는 험한 길이라고 보면 된다. 


길옆에는 밤나무 산이 조성되어 있어서 가을에는 길바닥에 알밤이 제법 많이 쏟아져서 바퀴로 깔고 지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차를 세워 길바닥에 떨어진 밤을 주웠다가는 절도죄로 몰릴 수 있어서 절대 길바닥에 떨어진 밤을 주워서는 안 된다. 그래도 큰길에서도 가깝고 또 부여 IC에서 가깝다는 장점 때문에 주로 이 산길을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평소 같지 않게 시골집 가는 길이 엄청 험난했다. 산길로 접어든 시간이 저녁 6시쯤이라 해가 산마루를 막 넘어가던 시점이었다. 고갯길에 접어들기 전 평지를 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햇빛이 너무 강해져서 전혀 앞을 볼 수 없었다. 워낙 길이 험한 터라 평소에도 30킬로 이상을 밟지 않는데 상황이 그렇다 보니 속도를 최대한 줄여서 10킬로 정도로 한 오십 미터를 더 가다가 그 자리에 정차했다.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상태에서 그 상태로 운전을 하다가는 사고가 날 것이 뻔한 상황이었다. 


잠시 정차한 후에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에 맞은편에서 차가 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하는 수 없이 옆으로 살짝 비켜줬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옆으로 비켜서 잘 지나갔다. 마주 오던 차는 햇빛이 비치는 반대 방향이라서 운전에 아무런 방해를 안 받는 것 같았다. 마주 오던 차가 지나간 후에 워셔액으로 차장을 한 번 닦은 후에 겨우 겨우 천천히 햇빛이 비치는 구간을 지나갈 수 있었다. 


어렵게 햇빛 구간을 지나쳤지만 언제 어디서 다시 강한 햇빛이 다시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차를 돌릴 수도 후진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이었다. 그래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가던 길을 계속 가는 쪽으로 결정했다. 어렵게 집에 도착했는데 집안 분위기가 완전 초상집이었다. 아니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싶었다. 


엄마는 세상이 무너진것처럼 초조한 모습이었다. 먼저 도착해서 제사 준비를 하고 있던 오빠한테 연유를 물었더니 엄마가 아끼던 패물과 명절 때 쓰려고 찾아둔 현금을 모조리 도둑맞았다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이 조그만 시골 동네에서 또 그런 일이 생겼나 싶어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엄마는 짐작가는 사람이 있다고 분명 그 사람 소행일 거라고 단정했다.


“아니 며칠 전에 그것이 갑자기 일부러 부여에 가서 사 왔다면서 핸드폰 가방을 하나 사다 주더라. 내가 돈을 준다고 해도 안 받고 갑자기 왜 여수를 떠나 싶었어.”


“엄마!~ 그래도 눈으로 보지 않았으니까 함부로 의심하면 안 돼요. 만에 하나 그 사람이 범인이 아니면 어떡할 건데?”


엄마의 의심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다. 그전부터 동네에서 물건이나 돈을 분실했다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몇 번은 도둑질을 하다가 현장에서 잡히기도 했고 또 몇 번은 의심은 가지만 증거가 없어서 넘어간 경우도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그 사람을 공개적으로 따돌리는 바람에 타 도시에 나가 한 2년 여 정도를 살다가 다시 고향에 돌아왔다.


엄마는 그 사람을 의심했다. 하긴 그 이야기로 치자면 나도 스무 살 무렵에 그 집 딸한테 월급을 세 번씩이나 연속으로 도둑 맞은 아픈 기억이 있다. 도둑맞고도 말을 못한 것은 내가 그 집에서 더부살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부살이 처지라서 혼자 끙끙 앓았다가 결국엔 덫을 놔서 확실한 증거를 잡은 후에 그 집을 나와 한동안 독서실에 살았던 기억이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마을에서 누군가 물건을 잃어버리면 당연히 그 집을 먼저 의심했다.


엄마는 현금을 잃어버린 것보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광산에 다니면서 처음으로 해 준 쌍가락지를 잃어버린 것에 대한 속상함이 더 컸다. 평생 고이고이 간직해 온 얼마 안 되는 패물을 다 잃어버렸으니 엄마 마음이 온전하기 힘들 것 같았다. 무엇보다 치매 초기 증세가 있어서 약을 타 드시는 중이라 먼저 엄마 마음을 진정시켜 드리는 것이 급선무였다. 


“엄마!~ 그냥 액땜했다고 생각하세요. 만약에 그걸 안 잃어버리고 자식들 중에 누구 하나가 잘못되었거나 아니면 엄마가 쓰러져서 병원에 눕는 일이 생겼으면 어쩔 뻔했어요. 그러니까 액땜했다고 생각하고 싹 잊어버리세요. 이 세상에 와서 무엇 하나 내 것이라고 주장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어요. 내 몸조차도 죽을 때는 다 자연에 돌려주고 가잖아요. 그러니까 엄마가 잠깐 보관했던 것을 다시 자연으로 돌려줬다고 생각하세요.”


엄마를 달래 놓고 집 주변을 살펴봤더니 아랫집과 그 아랫집에는 CCTV가 다 설치되어 있었다. 앗! 우리 집은 대문도 없는 데다 문도 안 잠그고 평생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집들은 이미 보안에 신경을 쓰고 살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다. 이제는 잃어버릴 물건도 없지만 가장 소중한 우리 엄마가 혼자 계시다가 다칠 수도 있으니 이제라도 CCTV를 설치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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