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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정 시인 Sep 26. 2023

내친김에 추억 털기... 나의 대전 입성기

1. 내친김에 추억 털기... 나의 대전 입성기


엄마가 최근에 패물과 현금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내 인생에서 다시 소환하지 않았을 기억이다. 그런데 갑자기 발생한 도난사건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퇴화되고 있던 나의 옛 기억을 소환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의 일이다. 상업고등학교 3학년 시절, 선생님의 추천으로 부여군의료보험조합(현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취업을 나갔다. 정식 직원이 아닌 임시직이라는 조건이 붙었었기 때문에 영 마음에 내키기 않았다. 당시 내가 나가고 싶은 직장은 어딘가에 있을 출판사였다. 출판사에 취업해서 나도 작가가 되어 보겠다는 나름 야심 찬 꿈을 가슴에 품고 살던 시절이다.


그래서 한 달 만에 의료보험조합을 때려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가 연말쯤 다시 의료보험조합에서 다시 오라는 제의를 받았는데 그조차 거절했다. 그리고 출판사에서 취업 의뢰가 들어오기만 손꼽아 기다리다가 결국 내가 취업한 곳은 규암면사무소 2층에 있던 온천개발사무실이었다. 당시 온천개발사무실은 부여 지역에 엄청난 이슈를 불러왔던 사업장이었다. 온천이 나온다는 소문에 인근 땅값이 천정부지로 솟구쳤기 때문이다.


그렇게 부여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한 나는 도회지로 나오고 싶어도 도회지에 일가친척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부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전에서 내려온 친구를 우연히 만나서  친구 추천으로 대전에 있는 해태음료에 취업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살 곳이 없었다. 그런 고민을 하던 중 먼 일가뻘 되는 동네 아주머니로부터 좋은 제의를 받았다.


그 아주머니 말씀으로는 애들 공부 때문에 대전에 사 놓은 집이 하나 있는데 방이 3개니까 자기 딸이랑 방을 같이 쓰면 된다는 것이었다. 단 방을 같이 쓰는 조건으로 할머니가 시골에 내려오시면  학교에 다니는  자기 딸 밥도 챙겨주고 도시락도 싸 주라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방 하나는 군대에서 제대한 후 막 대학에 복학한 오빠가 월세를 내고 사는 조건이었다. 사실 그때 그 아주머니의 제안은 나에게 무척 고마운 제안이었다.


부여 촌뜨기로 살다 보니 스물두 살이 될 동안 대전에 와 본 것이 한 번 내지 두 번이 전부였다. 그래서 대전 지리는 물론이고 버스를 어떻게 타는지도 모를 정도로 나는 말 그대로 촌뜨기였다. 그랬으니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고향에 함께 살았던 할머니와 고향 동생이 사는 집에 얹혀살 수 있게 된 것은 그야말로 행운이었다.


그런데 이런 행운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다. 회사에 잘 정착해서 부여에서 받던 월급의 두 배를 받으면서 나름 직장에 잘 적응하던 어느 봄 날이었다. 펌프가 있는 샘 옆으로 목련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시절이다. 내가 살던 집은 대전에서도 천동이라는 동네로 말 그대로 하늘과 맞닿는 언덕배기 중에서도 가장 꼭대기 집이었다. 겨울에는 연탄재를 뿌리지 않으면 도저히 그 길을 내려올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같이 살던 할머니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았다. 타지에 나와 직장 다닌다고 고생하는 나를 친 손녀 이상으로 챙겨 주셨다. 일부러 내가 퇴근할 시간에 맞춰 새로운 반찬을 만들어 금방 지은 따끈한 밥으로 밥상을 차려 주셨다. 또 가끔 내 또래 친손녀가 남자 친구를 데리고 집에 오거나 하면 그들이 사 온 음식들을 나눠 주시면서 친 가족처럼 불편하지 않게 배려해 주셨다. 그래서 내가 더부살이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깜빡 잊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께서 시골에 내려가 농사일을 도와야 할 것 같다면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손녀딸 도시락과 저녁밥을 부탁하셨다. 나는 그동안 할머니가 나에게 잘해주셨던 만큼 그 집 손녀딸을 살뜰히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할머니가 시골에 내려가시고 며칠 뒤, 내 월급날이 돌아왔다. 그때는 월급봉투에 현금을 넣어 주던 시절이었다.


월급을 타서 그 집 손녀딸이 좋아하는 고기도 한 근 사 가지고 집에 와서 저녁을 지었다. 그리고 같이 맛있게 밥을 먹고 혼자 부엌에 나가 설거지를 하고 방에 들어와  장롱 속에 넣어둔 월급봉투를 꺼내 적금 넣을 돈과 생활비를 분리해 놓기 위해 현금을 세어봤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딱 절반이 없어진 것이다. 집에는 그 집 손녀딸과 나 딱 둘 뿐이었다. 의심 되는 정황은 확실한데 증거가 없었다. 한 마디로 미치고 펄쩍 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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